지성이여, 안녕(安寧)하라
지금부터 어려울 수도, 쉬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혹시라도 길을 잃거든 야니스 쿠넬리스의 이 한마디를 기억하면 된다. “나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라도 시(詩)의 귀환을 원한다.”
2005년 1월, 국제적으로 진취적인 활동을 선보이는 현대미술가에게만 문을 여는 영국의 미술관 모던아트 옥스퍼드에서 현대미술의 거장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수많은 작품 중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곳은 자그마한 세숫대야가 놓인 전시장 바닥. 물이 자작하게 담긴 옅은 핑크색 플라스틱 대야에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금붕어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 가까이 몰려든 사람들은 곧 ‘아!’ 하고 탄식 섞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실제 부엌에서 쓰는 날카로운 부엌칼이 금붕어 옆에 위협적인 각도로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곧장 동물 보호 단체 관계자들은 살아 있는 동물을 예술 작품에 사용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이 동물 학대의 섬뜩한 공포를 유발한다고 맹비난했지만 야니스 쿠넬리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삶과 죽음, 잔인함과 유약함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칼날 주변에서 멋모르고 헤엄치는 금붕어처럼, 인간도 자칫 치명상을 입고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실 그가 작품에 동물을 처음 사용한 건 그보다 훨씬 전인 1967년부터였다. “나는 예술의 전형적 소재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살아 있는 동물로 예술 재료의 범주를 확장하기로 마음먹었지요.” 그 말대로 그는 1967년에 살아 있는 새를 설치 작품에 포함시켰고, 2년 후에는 말 12마리를 로마의 한 갤러리에 풀어놓고는 일정 기간 사육했다. 사람들은 그의 아방가르드하고 전위적인 예술 행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그전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재료의 파괴는 데이미언 허스트가 소와 양을,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말과 비둘기, 다람쥐를 작품에 사용하면서 이제는 온전한 하나의 예술 매체로 자리 잡았다.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국내 최초의 개인전을 위해 난생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리스 태생의 야니스 쿠넬리스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재료에서의 자유로움’, 이것으로 미술사에 누구보다 큰 족적을 남긴 그는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적 예술운동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주요 인물이다. “아르테 포베라는 ‘가난한 미술’이란 뜻입니다. 철판이나 헝겊, 나뭇가지, 숯, 담요, 로프 등 일상 재료를 활용해 반(反)상업적 미술을 표방하면서 예술의 영역을 넓힌 운동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많은 이슈를 불러온 세숫대야에 위험하게 놓인 칼은 금붕어를 해치는 위협적인 재료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금붕어와 칼’이라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재료의 조합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언급하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시장에 풀어놓은 12마리의 말과 새도 마찬가지고요.”
이렇듯 특정한 경향을 넘어 독자적 양식을 이룬 야니스 쿠넬리스를 그간 모시고 싶어 한 국내 갤러리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1996년, 서울에 있는 두 주요 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 유치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다 그의 초대전이 무산된 적이 있다. A갤러리에서 그의 초대전을 준비 중이었는데, B갤러리가 몇 달 앞서 작품전을 개최하겠다고 나선 것. A갤러리가 문제 제기를 했지만 B갤러리는 끝내 개인 컬렉터들이 가지고 있는 야니스 쿠넬리스의 작품을 모아 ‘작품전’을 강행했고, 김빠진 A갤러리는 개인전 형식의 초대전을 포기했다.
이번 우손갤러리 개인전은 1969년 당시 로마의 한 전시장을 마구간으로 바꾼 야니스 쿠넬리스의 놀라운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그는 이번 전시 준비를 위해 오픈 한 달 전부터 경상북도 청도의 한 작업실에서 스태프들과 작업에 열중했다. 한국이라는 낯선 환경을 경험하며 거기에서 얻은 영감과 현지 재료를 모아 설치 작업에 사용했다. 이번 신작 중 특히 한국 현대미술사에 이슈로 남을 거대한 스케일의 쌀자루 작품은 우리에게 재료란 결국 ‘무게’로 정의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만남을 통해 얻은 현지의 재료로 작품을 제작하는 건 나에게 매우 중요한 작업 스타일입니다. 난 내 작품을 ‘1막짜리 연극’이라고 불러요. 낯선 땅의 다른 문화 속에서 세상과 관람객을 소통하게 하는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알지 못하는 다른 문화를 알아가고 흡수하고 소통하기 위해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야니스 쿠넬리스. 그리스인이며 이탈리아 작가인 그와 예술일 수도, 예술이 아닐 수도 있는 것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볍씨를 담은 부대 위에 묵직한 H빔을 얹은 작품 ‘무제(2013)’.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기하학적 철제 빔과 비정형적인 부대, 농촌과 도시의 대조를 통해 삶과 예술, 자연과 문명 사이의 경계를 돌아볼 수 있다.
우선 갤러리 2층에 있는 ‘쌀자루’ 작품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사용한 쌀이 총 4000kg, 그러니까 4톤이란 말인데, 한국적인 소재로 쌀을 선정한 이유는 뭔가요? 정확히 말하면 쌀은 아니에요. 2월 말까지 전시가 이어지는데 쌀을 사용하면 나중에 못 쓰게 된다고 해서 볍씨로 바꿨어요. 전시가 끝난 후 다시 기증할 수 있도록요. 볍씨를 사용한 이유는 경북 청도 작업실에 처음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것, 그리고 한 달을 머물면서 제일 많이 본 것이 바로 논의 추수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쌀의 나라, 쌀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볍씨를 담은 부대 위에 장정 몇 명이 달라붙어도 도저히 들 수 없을 같은 묵직한 H빔을 얹었죠. 이렇게 재료의 대비 효과를 즐기는 이유가 있나요?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기하학적 철제 빔과 비정형적인 부대, 농촌과 도시의 대조를 통해 삶과 예술, 자연과 문명 사이의 경계를 돌아볼 수 있으니까요. 차가운 낡은 코트를 뜨개실로 엮어 H빔에 걸어놓은 작품도 그래요. 서로 이질감을 일으키는 철과 코트를 사용해 가난함과 부유함으로 나뉜 구조화된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보여준 것이죠.
금붕어와 칼, 볍씨와 철제 H빔 등 작품에 사용한 재료는 ‘물성의 대비’라는 공통점이 있죠. 또 하나, 당신이 즐겨 사용하는 옷, 신발, 천, 석탄, 곡물, 철, 공업 재료가 모두 미학적이지 않다는 점도 비슷해요. 반미학적인 대신 그것들이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나요? 당신의 초기 작품 중에서 여성의 하얀 슬립에 커다란 콘트리트 단추를 붙여놓은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슬립은 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혹시 첫사랑의 것? 작가는 작품에서 사생활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쓰인 재료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느냐가 아니라 이 작품이 관람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저에게 중요한 건 그 슬립을 어떤 사람이 입었느냐가 아니라, ‘누군가 입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낡은 것, 헌것, 남이 사용한 것. 어떻게 보면 버려질 수 있는 재료들을 보고 ‘유레카’라고 환호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해요. 아르테 포베라 초기에 말이에요. 그리스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의 패배를 목격한 영향이 있을 거예요. 소수자 입장에서 승자와 패자, 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보며 과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힘을 키웠어요. 돈을 좇기보다 삶의 본질을 생각하는 예술 활동에 매진한 것도 그 때문이고.
어릴 적 경험한 전쟁이 재료뿐 아니라 그동안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나요? 솔직히 전쟁이 끝나긴 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아요. 제가 경험한 전쟁에 관해 묻는 거라면, 분명 전쟁의 트라우마는 아주 강하게 남아 있고, 죽을 때까지 거기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그 트라우마가 지금 작업에 영향을 끼치나요? 글쎄, 잘 모르겠어요. 전쟁의 기억을 싹 잊을 정도로 기쁜 삶의 순간도 있지만, 아직도 밤에 전쟁 꿈을 꾸다가 울면서 깨어나기도 합니다.
전시 오픈 한달 전부터 경북 청도 작업실에 머물며 거기에서 구한 재료로 이번 ‘무제’시리즈 작품을 완성했다. 국내 최초로 대구 우손 갤러리(053-427-7736)에서 열리고 있는 야니스 쿠넬리스 개인전은 2014년 2월 18일까지 이어진다.
다시 작품의 반미학적 이야기로 돌아가보면요, 아방가르드하고 전위적인 예술로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을 흔들어놓으셨죠. 저도 예술이 항상 고급스러워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뭔가요? 제게 아름다움이란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가 그린 성모마리아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전까지 성모마리아는 해골처럼 마른 볼품없는 모습이었는데, 티치아노는 성모마리아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했지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성모마리아를 예쁘게 그렸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티치아노가 그전에 어떤 화가도 성모마리아에게 시도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표현법을 혁명적으로 시도한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아름다움이 우리의 문화와 생활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예술에 대한 계몽의식이 다른 작가보다 몇 배는 높은 것 같아요. 예술이 어떤 도덕적인 테마를 사람들에게 주입하거나 설명하는 수단은 물론 아니에요. 그렇지만 예술은 하나의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보여주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일인의 교육법이 그래요. 어떻게 하라는 식의 교육이 아니라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게 예술가가 염두에 둬야 할 자세죠.
2001년까지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하셨죠? 로마에서 작품 활동으로 바쁘지 않으셨나요? 예전에 백남준 작가는 독일에서 교수로 계실 때 과대표 학생에게 전화로 강의하고, 다시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강의했다는 일화를 들어본 적이 있거든요. 독일에 집이 있어서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언제나 교수실 문을 열어놓고 아무나 들락날락하게 했죠. 저는 학생들한테 뭘 가르치기보다는 학생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깨닫게 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학생 스스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었죠.
당신의 획기적인 작업 스타일이 데이미언 허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 한국의 이불 작가까지, 전 세계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건 알고 계시죠? 영향을 미쳤다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그것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그리고 제가 그때 왜 그것을 해야 했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좋아요. 다시 묻죠. 왜 사람들이 경악하는 그 작업을 시도하셨어요?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것은 아트 페어나 갤러리에서처럼 빨갛고 동그란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예술은 돈만 있으면 쉽게 사서 벽에 거는 장식품의 수준을 넘어서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예술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어야 하지요.
미술 시장의 시스템을 부인하는 것처럼 들려요. 경매 때마다 신문을 도배하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제프 쿤스의 작품 가격도 당신에겐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것 같네요. 난 시장을 믿지 않아요. 가격이란 아주 정치적인 것이거든요. 제프 쿤스가 은행에서 태어난 작가라면 고흐는 감자 캐는 농가에서 태어난 작가라고 할 수 있어요. 작품이 얼마에 판매되느냐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무엇을 믿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저는 인간에게서 나온 것, 석탄, 돌, 침대, 노끈 등 보잘것없는 삶의 파편들을 믿어요. 그래서 앞서도 말했지만 저는 재료를 재료(Material)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무게(Weight)라고 부르죠. 도덕적 무게, 존재의 무게, 삶의 무게….
미술 사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로, 당신이 생각하는 현대미술가는 어떤 모습인가요? 현대미술은 단순히 현대미술로만 존재할 수 없어요. 현대가 있기 전 모더니즘이 있고, 그전에는 네오클래시즘이 있었으니까요. 작가는 그 역사의 흐름을 파악해 동시대에 잘 정리하고 발언해야 합니다. 그래서 현대미술가는 저 밑바탕에 지성이 뿌리박혀 있어야 해요. 깊이 뿌리내린 지성을 이미지화하는 사람이 현대미술가 아닐까요?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