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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동행

LIFESTYLE

건축가는 부다페스트의 유서 깊은 건축을 찾아 떠났고, 미술평론가는 모네의 흔적을 좇아 파리로, 클래식 애호가는 오페라의 배경인 시칠리아로 향했다. 지적 감수성을 흠뻑 충족시키는 그들의 여행을 통해 취향에 따른 여행의 기술을 배운다.

때 묻지 않은 지중해의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섬, 시칠리아

모디카의 가리발 디 오페라 극장

모디카 성 조르조 성당

하늘·태양·대지의 노래, 시칠리아
이탈리아 최남단의 지중해 섬 시칠리아에서 생산하는 네로 다볼라 와인의 검붉은 컬러와 ‘블러드 오렌지’라 불리는 오렌지는 태양의 세례만큼이나 강한 에너지를 드러낸다. 제주도의 13배가 넘는 거대한 섬으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 남동부의 작은 도시 모디카(Modica)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으로 시칠리안 바로크 양식의 보석이라 불린다. 시칠리안 바로크는 로마 스타일보다 로맨틱하고, 나른한 남국의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모디카의 저녁 골목길을 산책하다보면 오페라 하나가 절로 떠오를 것이다. 시칠리아 섬에 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비극을 다룬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다. ‘촌스러운 기사도’라는 뜻으로 이 섬에서 태어난 대문호 조반니 베르가(Giovanni Verga)의 원작 소설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우리에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성난 황소> 첫 장면과 <대부 3>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오페라의 간주곡으로 익숙하다. 주인공 청년 투리두의 세레나데 ‘시칠리아나’는 방언으로 쓰여 이탈리아 북부 출신 테너는 제대로 된 맛을 내지 못한다. 시칠리아 섬 출신으로 마리아 칼라스와 황금 콤비를 이룬 세계적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가 늘어지는 사투리의 느낌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 오페라는 단 1막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부활절 일요일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합창곡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는 오렌지 생산지로 유명한 시칠리아의 부활절 아침을 묘사한다. 장엄한 부활절 행진 합창곡은 성모마리아와 예수그리스도의 성상을 꺼내 들고 마을을 천천히 한 바퀴 도는 시칠리아 특유의 풍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특히 모디카 지역의 성상 행진, ‘마돈나 바사 바사’는 시칠리아 내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바사(vasa)는 시칠리아 방언으로 입맞춤이라는 뜻. 예수 그리스도의 성상이 성당을 떠나면 곧이어 성모 마리아상이 반대 방향으로 출발하는데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애타게 찾으며 온 마을을 한 바퀴 도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성모는 성당 앞으로 돌아와서야 아들의 성상과 마주치고 입맞춤 두 번, 즉 ‘바사 바사’를 보낸다. 모성애와 끈끈한 가족애가 우리와 닮았다. 이탈리아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냈다고 평가받는 오페라 <카벨레리아 루스티카나>. 시칠리아의 하늘과 태양, 대지를 노래하는 성대한 한 편의 시칠리아 목가라고 할 수 있다. 시칠리아, 특히 모다카를 여행한다면 이 오페라와 함께해보라. 시칠리아 특유의 풍광과 서정이 더욱 배가될 테니.
– 글·사진 황지원(클래식 음악 평론가)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마르모탕-모네 미술관

‘수련’ 연작이 전시된 오랑주리 미술관

비교할 수 없는 모네의 천국, 파리
지난겨울 인상주의 전시회가 유독 많이 열렸다. 그중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와 <모네 빛을 그리다>, <반 고흐 인사이드>전이 성황을 이뤘다. 인상주의 화가, 특히 모네의 인기는 국내에서 여전히 뜨겁다. 모네의 진품 한 점이라도 걸린 전시회는 빅 히트를 기록하고 영상으로 구성한 디지털 전시까지 흥행할 정도다. 모네와 제대로 만나고 싶다면 파리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모네와 만나는 행복한 경험의 장으로서 파리를 둘러보는 것이다. 여행 코스는 비교적 단순하다. 파리 시내에 있는 미술관 세 곳과 파리 교외의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을 둘러보면 된다. 미리 모네의 삶과 그의 그림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모네를 만나는 여행이 놀랍도록 감동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먼저 인상주의 미술의 보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시작한다. 이곳에는 모네의 젊은 날, 즉 혹독한 가난 속에서 그린 대표작이 가득하다. ‘정원의 여인들’, ‘생 라자르 역’, ‘양귀비가 핀 들판’ 등이 발길을 붙든다. 동료 화가 카유보트가 팔리지 않는 모네의 그림을 많이 사주었는데 이후 프랑스 정부에 작품을 기증했고, 오르세 미술관이 이 귀한 작품의 소장처가 되었다.
다음 목적지는 파리 서쪽 불로뉴 숲 인근에 자리한 마르모탕-모네 미술관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다. 모네의 상속자인 둘째 아들 미셸이 아버지의 작품을 모두 기증한 덕분. 모네 전시실은 이 넓은 미술관 지하 1층 전체를 차지한다. 이 전시실을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인상주의라는 말이 유래한 근원인 ‘인상-해돋이’다. 이외에도 ‘눈 속의 기차’, ‘수련’ 등 그가 평생 소장한 여러 작품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모네와 만나는 세 번째 목적지는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이다. 파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센 강변의 작은 마을로 모네는 1883년부터 43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후반기 대표작인 ‘수련’ 연작, ‘루앙 대성당’ 연작, ‘포플러나무’ 연작 등을 모두 이곳에서 그렸다. 모네가 실제로 살던 저택과 정원, 지하통로로 길을 건너가야 하는 물의 정원 이렇게 세 곳이 필수 관람 코스다.
그가 사용하던 가구와 색색으로 칠한 방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그가 숨을 거둔 침실에서 내려다보는 정원에는 사시사철 꽃이 만발한다. 모네는 전 세계의 꽃을 모으려는 듯 꽃의 종류를 늘려갔고, 나중에는 온실을 크게 지어 계절에 상관없이 꽃이 자라 만개한 모습을 즐겼다. 물의 정원은 수련이 개화하는 시기인 6월에서 8월 사이가 가장 아름답다. 모네가 잠들어 있는 작은 성당도 꼭 들를 것. 성당 뒤 작은 묘지에 모네의 가족묘가 자리한다.
마지막으로 가볼 곳은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모네의 말년 대표작 ‘수련’ 연작이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정면에 있다. 2개의 타원형 방으로 이뤄져 방 전체를 둘러보면서 필생의 역작을 감상할 수 있다. 동쪽 방은 아침 햇살 아래에서 감상할 수 있는 ‘수련’을, 서쪽 방은 노을이 지는 붉은 햇살 아래에서 감상할 수 있는 ‘수련’을 배치했다. 세계 예술의 중심이라는 오랜 명성만큼 깊고 풍성한 이야기를 간직한 파리. 전 미술관에서 모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파리에 비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모네를 사랑한다면 이번 봄, 모네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 글·사진 김태진(미술 평론가)

작품 ‘수련’이 탄생한 물의 정원

모네가 실제 살던 저택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

원기둥 위의 가브리엘 대천사 상

도시 전체가 고색창연한 박물관,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를 관통하는 도나우 강은 독일 남부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등 7개의 나라를 거쳐 흑해로 흘러가는 아주 긴 강이다. 부다페스트는 예로부터 도나우 강의 진주로 불렸다. 강변 언덕 위에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면 이러한 표현에 동감하게 된다. 운치 있는 다리와 강변에 세운 유서 깊은 건축물, 강변을 따라 느릿느릿 이동하는 전차 그리고 강에 떠 있는 하얀 배들이 낭만적인 풍경을 그린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 서쪽의 부다(Buda)와 오부다(Obuda), 강 동쪽의 페스트(Pest)가 1873년 합병한 도시다. 귀족과 부호가 모여 살던 부다 지구는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이 자리한 역사지구, 페스트는 호텔과 쇼핑센터 등이 밀집한 상업지구다. 부다페스트 풍경의 구심점을 이루는 건축은 부다 성, 세체니 다리, 그리고 페스트 지역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이다.
부다 성에는 국립미술관과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도서관 등 문화와 관련된 많은 기관이 들어서 있다. 14세기 성터 남
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을 세웠고, 40년이 지난 뒤 고딕 양식으로 증축했는데 50년이 더 흘러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뀐다. 이를 위해 유럽 전역에서 예술가와 장인들이 헝가리로 몰려들었다. 그 뒤로도 수차례 파괴되었다가 중축과 개축을 반복하며 왕궁을 세운 1910년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1541년 이래 왕이 살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도나우 강변을 따라 걷다 거대한 국회의사당에 시선이 멈춘다. 1880년 헝가리 의회는 페스트 지역에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해 국회의사당을 짓기로 하고 건축 공모전을 열었다. 유명한 건 축가 오토 바그너를 비롯해 19명의 건축가가 경합을 벌인 결과 부다페스트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임레 슈타인들(Imre Steindl)이 선정된다. 착공한 지 19년 만에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정작 건축가는 눈이 어두워져 완공을 보지 못하고 1902년에 세상을 떠났다. 부다페스트 시가지의 중심에는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가 있다.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로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앞선 구조역학과 교량 건설 기술을 보여주는 현수교로 마치 사슬을 엮은 것처럼 보여 세체니(사슬) 다리라 부른다. 1849년 개통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 중 하나이자 초현대식 다리로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 중 하나로 꼽혔다. 이 다리를 건설하면서 부다와 페스트가 합병해 부다페스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다리를 전쟁이 끝난 뒤 복구했는데 헝가리가 공산화한 시기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1989년 바로 이 다리에서 수십만 명의 부다페스트 시민이 자유를 외치며 헝가리 공산 정권을 도나우 강물에 떠내려보냈다.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를 새로운 미래로 연결하는 뜻깊은 다리이기도 한 셈이다. 100년이 넘은 지하철도 건축적으로 의미 있게 둘러볼 만하다. M1 노선은 오페라극장, 영웅의 광장, 세체니 목욕장 등 부다페스트의 명소를 연결하는 지하철로 1896년에 완공해 런던에 이어 두 번째고, 유럽 대륙에서는 최초의 지하철이다. 예스러운 멋을 간직한 부다페스트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 글·사진 정태남(재 이탈리아 건축사)

부다 성의 야경

부다페스트의 또 다른 명소로 꼽히는 어부의 성채

에디터 | 김윤영 (snob@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