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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재능

LIFESTYLE

‘연기하는 자막’이란 평을 들은 번역은 물론, 개사까지 능한 뮤지컬 작곡가 이지혜를 만났다.

이지혜 작곡가는 몇 번이고 문자를 보내왔다. “지난주까지 끝내야 한 곡을 못 끝내 정신이 없어요.” “우와, 옷까지 협찬받아주시는 줄 몰랐어요.” “얼굴이 퉁퉁 부었는데 사진은 정말 괜찮을까요?” 인터뷰가 끝난 뒤엔 금방 만들었다며 올가을 올릴 새 뮤지컬 곡을 하나 보내기도 했다. ‘작곡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늘 점잖을 빼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다소 부산스러웠는데, 알고 보면 그 부산스러움은 그녀 자신을 이끄는 어떤 동력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날 때부터 DNA에 ‘활력’이 콕콕 박혀 있는 사람.
그녀는 2004년 국내에서 뮤지컬 <아이 러브 유>(개사)로 데뷔했다. 이후 10년 넘게 수십 편의 작품에 참여하며 국내 뮤지컬계에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맨 오브 라만차>(2005년, 개사), <폴 인 러브>(2006년, 작곡), <프로듀서스>(2006년, 번역), <첫사랑>(2007년, 작곡), <미녀는 괴로워>(2008년, 작곡), <금발이 너무해>(2009년, 번역), <위키드>(2012년, 번역), <아리랑-경성 26년>(2013년, 작곡) 등이 대표작인데, 작곡 외에 외국 오리지널 팀의 대사를 우리 정서에 맞게 고치는 번역과 외국 곡을 차지게 우리말로 바꾸는 ‘개사(改詞)’ 능력까지 갖추어 뮤지컬계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뮤지컬계에 작은 파란을 일으킨 그녀도 자신이 훗날 뮤지컬 음악을 할 거라곤 일찍이 알지 못했다. 심지어 성악을 전공한 후 이따금 오페라 무대에 선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자랐지만, 그게 음악적 관심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훗날 그녀가 국내의 번듯한 음악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어려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축적해온 음악적 토양 때문인데, 이 얘긴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옛 속담으로 대충 정리해두자.
여하튼 그녀는 (남들과 반대로) 음악대학 진학 이후 점점 음악에 빠졌다. 대학 졸업 후엔 좀 더 큰물에서 놀고자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 대학 뮤지컬창작과에서 공부를 이어갔는데, 어찌나 감각이 좋았는지 뮤지컬 〈팔세토(Falsettos)〉로 토니상을 받은 유명 작곡가 윌리엄 핀 밑에서 인턴 생활을 했고, 졸업도 하기 전 잘나가는 뮤지컬 전문 에이전트와 계약해 <셰익스피어: 더 리믹스>(브로드웨이), <똑딱>(오프브로드웨이) 등의 작품을 위한 곡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장래가 촉망받는 신인 작곡가에게 주는 상도 받았다. <렌트>로 유명한 천재 작곡가 조너선 라슨을 기념하는 ‘조너선 라슨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화려한 뉴욕 라이프는 딱 거기까지였다. 유명 극작가 마샤 노먼의 <잘 자요, 엄마(Night, Mother)>나 <드림랜드(Dreamland)> 같은 꽤 신경 쓴 작품에서 작곡가가 갑자기 바뀌거나 제작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자 문제까지 터졌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간 한국 뮤지컬계와 함께하는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미국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회의감이 몰려올 즈음 단호하게 한국행을 결심했다. “사실 그 시절 한국행을 택한 덴 이런 이유도 있었어요. 뮤지컬을 볼 때 미국 관객이 웃는 지점에서 우리 관객도 웃게 하겠다는 목표였죠. 그게 번역과 개사로 가능하거든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뮤지컬계에선 그런 움직임이 적었는데, 제 데뷔작 이후 그런 일이 늘어 기분이 좋아요. 지금은 저도 작곡과 개사 그리고 번역 일을 일일이 구분 짓지 않고요.”
그럼 지금부터 그녀가 국내 뮤지컬계에서 번역과 개사로 얼마나 큰 성과를 이뤘는지 한번 알아보자. 그러니까 지난 몇 년간 “대본 잘 나왔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인기리에 공연한 3편의 뮤지컬 <위키드>, <맨 오브 라만차>, <벽을 뚫는 남자>(2013년)는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그녀의 감각 그대로 우리말을 입혔다. 일례로 <위키드> 오리지널 팀의 내한 공연 당시엔 단순 번역이 아니라 ‛연기하는 자막’이란 평을 듣기도 했다. 지금도 웹에서 <위키드> 공연 관련 후기를 검색하면 번역 얘기가 거의 절반이다. “뮤지컬 가사 번역은 우리말로 좋은 노래가 돼야 하는 게 핵심이에요. 당연히 한국어를 잘하는 게 중요하죠. 물론 원작의 의미를 쉽게 전달하는 걸 놓치지 않는 것도 필수고요.”
사실 번역을 하면서 우리 정서에 꼭 맞는 단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어도 한국어지만, 극에 활력을 불어넣을 대사를 찾아 넣으려면 ‘예능감’이 필수다. 예컨대 그녀는 <위키드>에서 글린다가 부르는 ‘파퓰러(Popular)’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영어 단어를 사용했다. 파퓰러 대신 ‘대중적’이란 단어를 썼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느냐는 얘기. 또 ‛원더풀(Wonderful)’도 ‘잘났네~’라고 번역하면 느낌이 안 와 그대로 뒀다. 그런가 하면 ‘대박!’이나 ‘진~상’ 같은 우리의 생활 속 언어 역시 극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은어나 이모티콘 사용이 과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정확한 지점을 짚어준 재치 있는 번역이라는 점엔 이견이 없었다.
이렇게 번역과 개사 능력이 뛰어난 그녀지만 본업인 작곡 작업 또한 허투루 하지 않았다. 한 예로 2007년 그녀는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을 아련하게 그린 뮤지컬 <첫사랑>으로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평 중 하나가 “대중의 입맛만 신경 쓰지 않고 극 중 캐릭터와 드라마를 잘 살렸다”는 것. 다시 말해 흥행 여부에만 연연하지 않고, 좋은 곡을 소신껏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2009년 무대에 오른 고궁 뮤지컬 <대장금>에선 고궁이란 시대적 공간에 머물지 않고 랩이나 타악기 등의 악기를 고루 사용해 큰 이슈가 됐다. 그녀는 이 작품을 계기로 현대극과 시대극을 구분 짓지 않는 비범한 작곡 능력을 꾸준히 선보였는데, 이후 조정석이나 홍광호, 리사, 박은태, 최재림, 양준모 같은 훌륭한 배우가 모두 그녀의 작품에 한 번 이상 출연한 경우도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기억나는 작품은 <벽을 뚫는 남자>예요.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극이 모두 음악으로 이뤄져 있는데, 공연이 올라가는 전날 밤까지 배우들과 계속 씨름하며 가사를 수정한 탓에 지금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죠. 결국 제 ‘욕심’이 과해 그렇게 만든 건데, 즐거웠기에 후회는 없어요.”
인터뷰를 진행한 8월 5일 현재, 그녀는 9월 초 선보일 뮤지컬 <무한동력>에 쓰일 창작곡 2곡을 제때 완성하지 못해 걱정이다. “사실 매번 이렇게 괴로워도 작곡을 그만두는 건 또 어렵더라고요. 아무리 골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해도 곧 쾌감에 파묻혀버리니까요. 제 곡이 무대 위에 올라 누군가의 ‘공명’에 의해 많은 이에게 전해질 때의 그 희열은 결코 잊을 수 없거든요.” 그녀는 이번에도 대중의 입맛에만 연연하지 않는 놀라운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뮤지컬의 대중적 관객을 포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뾰족한 메시지가 담긴 음악을 선보이는 그녀의 신작이 기대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패션 스타일링 에디터 김지수(kjs@noblesse.com) 사진 김태선 헤어 & 메이크업 포레스타 의상협찬 자인 송, 로베르 끌레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