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담긴 한 문장
지식생태학자, 교수, 작가, 명강사 등 유영만을 수식하는 단어는 여럿이지만, 그가 꿈꾸는 세상은 단 하나다.

연구실에서 만난 유영만 교수.
직업상 매달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흔한 미팅 자리에서 오가는 피상적 인사치레가 아닌 마음 깊이 공감하는 그런 이야기. 그들이 실타래처럼 풀어놓은 역경과 극복 과정을 꼭꼭 씹은 뒤 이런 인생이라면 꽤나 멋진 것이 아닐까 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인터뷰이의 눈빛, 몸짓, 숨소리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는 탓일지, 아님 인간관계 속에서 필연적 부분일지 잘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은 찰나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받곤 한다. 그럴 때면 이불 속에 꽁꽁 숨어 나 스스로 다시 단단하게 그들을 마주할 시간을 기다린다. 유영만 작가를 알게 된 것도 한동안 그런 시간을 보낼 때였다. 여느 때처럼 서점 매대를 돌아보던 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라는 제목에 시선이 멈췄다. 사람을 느끼는 것은 상대적인 일인데, 이토록 단호하고 단정적으로 정의해놓은 문장이 참 신선하고 멋져 보였다. “작년 12월, 한 해를 돌아보며 저를 괴롭힌 10명의 사람을 떠올렸어요.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부터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내는 사람, 과거만 들먹이는 사람 등 인간관계를 좀먹는 유형을 정리해 브런치에 글을 올렸죠.” 반면교사라고 했던가. 이 글은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들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많은 이의 공감을 얻어 62만 뷰라는 조회 수를 달성했다.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를 포함해 무려 87권의 책을 펴낸 그는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각 분야의 지식인이 명강의를 뽐내는 프로그램 tvN
<어쩌다 어른>, CBS TV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교단을 포함한 수많은 강단에서 마음을 울리는 강연을 주관한다. 촌철살인의 문장과 여운이 짙은 강연 덕에 그를 추종하는 팬도 여럿. 그가 글을 쓰고 연구하는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618호에서는 서점에 온 듯 짙은 책 내음이 풍긴다. 사방은 빼곡한 책과 그의 활약을 증명하는 갖가지 사진으로 둘러싸여 있고 채 꽂히지 못한 책은 바닥과 책상 위에서 순서를 기다린다. “제 연구실에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공을 물어요. 제가 쓴 책도 그렇고, 여기 있는 책도 경영학, 국문학, 심리학, 역사, 철학 등 분야를 넘나드니까.” 박학다식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1 유영만 교수의 캘리그라피.
2 책장을 가든 메운 그의 저서들.
그가 몸담고 있는 교육공학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성과를 토대로 교육의 효율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찌 보면 피도 눈물도 없이 냉철한 이성과 두뇌만으로 인간을 계산할 듯싶지만, 유영만 교수의 철학은 좀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공학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즐겁게 학습할 수 있을까’에 가깝다. 이는 그가 연구하는 지식생태학(Knowledge Ecology)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지식생태학은 수많은 생명체가 저마다 관계 맺음으로 공존하는 자연 생태계 원리를 인간의 지식 창조 과정에 차용한 학문이다. 즐거운 학습을 통해 건강한 지식이 창조, 공유되고 활용·소멸되는 과정을 연구하고 선순환을 통해 조직과 사회는 좀 더 나은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그가 불특정 다수를 위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도 그 연구의 일환인 셈. “교수가 되기 전 모 대기업 인재 개발원에서 몇 년간 근무했어요. 당시엔 논리적 설명을 늘어놓는 지루한 강의가 대부분이었죠. 재미도, 감동도 없는.(웃음) 어느 날 제가 직접 체험한 것을 토대로 강의를 했더니 청중이 진심으로 재미있어 하며 공감하더라고요.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느낀 거죠.” 그는 대중에게 좀 더 진심 어린 말을 전하기 위해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결국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아닌, 나가서 행동하고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 교단에 있으면서도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와 네팔의 안나푸르나, 투르드 몽블랑 등정에 이어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 레이스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참가비를 포함한 비용만 약 800만 원이 드는 비싼 도전이었지만, 값진 경험을 얻었다. “반 이상 왔는데 이러다 죽겠다 싶더군요. 준비도 참 열심히 했는데, 결국 중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윈스턴 처칠의 명언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가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이후로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를 절대로 쓰지 마라’는 명언을 전파하고 있어요.(웃음) 제가 책상에만 앉아 있었다면 이 한계를 체감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대중이 그에게 감동받아 어제와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선동가에 가깝다.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등 SNS 활동을 활발히 하며 소통하는 이유도 그런 모습에서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도 성적과 성취보다는 실험과 도전, 실패를 거듭해보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결국 그가 수많은 책을 읽고 우리말 공부에 힘을 쏟는 이유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다. 책마다 빼곡한 인덱스로 차곡차곡 저장해둔 단어와 문장이 그의 생각을 풍부하고 적확하게 만든다. 문득 활자 매체에서 재미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밀란 쿤데라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돼요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첫 줄부터 막히잖아요. 그럼 책을 덮어요. 안 읽는 거죠. 결국 개념 정립이 안 되고 또다시 책과 멀어져요. 이런 사람들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한 문장씩 찾아보면서 책을 읽어야 해요. 어느새 지식이 쌓이고 재미가 붙을 겁니다. 우리 신체 중 뇌는 늘 편안한 상태예요. 뇌를 허기지게 하기 위해 뇌가 불편해하는 지식을 자꾸 넣어 혼란에 빠뜨려야 해요. 그래야 뇌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는 요즘 언어와 관련한 세 권의 책을 동시에 집필 중이다.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언어적 사고를 길렀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연구실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책을 읽거나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다. 누군가를 한평생 위로해줄 인두 같은 한 문장을 찾기 위해서.
에디터 김민지(mj@noblesse.com)
사진 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