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아트 페어
겨우내 움츠렸던 뉴욕에 서서히 활기가 도는 3월, 미술계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듯 아머리 아트 위크가 시작된다. 아머리 쇼 외에도 위성 아트 페어와 대안 아트 페어 등 새로운 형태의 아트 페어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스프링 브레이크 아트 쇼에 출품한 비주얼 파일러츠의 ‘Luminessenz’, Curated by A. Moret / ⓒ Samuel Sachs Morgan
인디펜던트 아트 페어에 참가한 모던 인스티튜트의 작가, 니컬러스 파티의 작품 / ⓒ Etienne Frossard
스프링 브레이크 아트 쇼의 출품작. 박태주의 ‘Digital Being’, Curated by Peter Gyn / ⓒ Samuel Sachs Morgan
아머리 쇼(The Armory Show)는 스위스의 아트 바젤(Art Basel), 영국의 프리즈(Frieze), 프랑스의 피악(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로 꼽힌다. 아머리 아트 위크(Armory Arts Week)는 바로 이 아머리 쇼가 열리는 시기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간에 아머리 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아트 페어가 맨해튼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져 미술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올해로 22회를 맞이하는 아머리 쇼는 3월 3일부터 6일까지 모던과 컨템퍼러리 부문으로 나눠 허드슨 강가의 부두 92(Pier 92)와 94(Pier 94)에서 개최한다. 뜨거웠던 2015년 미술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역대 최대 규모로 전 세계 36개국에서 204개의 갤러리가 참여할 예정. 아트넷 뉴스의 책임 편집자 벤저민 제노키오가 디렉터를 맡았고, 특별 프로그램인 ‘아머리 포커스(Armory Focus)’에서는 아프리카의 작가들을 조명한다. 아머리 쇼와 함께 널리 알려진 페어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트 쇼(The Art Show),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위성 페어인 스코프(Scope), 퍼스(Purse), 볼타(Volta) 등이 있다. 1989년 설립한 아트 쇼는 미국아트딜러협회(Art Dealers Association of America)에서 주관한다. 참가 자격을 협회 멤버로 제한해 규모는 작지만 아머리 쇼 못지않은 쟁쟁한 갤러리들이 참여하며, 몇몇 갤러리는 아머리 쇼와 아트 쇼에 모두 참여하기도 한다. 출품작은 피카소부터 허넌 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른다. 아머리 쇼와 연계해 개최하는 볼타는 부스별로 한 명의 작가에게 집중해 소규모 개인전처럼 구성하는 것이 특징. 스코프는 바젤과 마이애미에 이어 뉴욕에서 열리며, 퍼스도 이들과 어깨를 겨루는 위성 페어다.
아트 온 페이퍼에 출품한 웨인 화이트의 작품 ‘FOE’ / ⓒ Art on Paper
영상 작품이 주인공인 무빙 이미지 아트 페어의 전시장 / ⓒ Moving Image New York
다양한 종이 매체를 소개하는 아트 온 페이퍼의 전시장 / ⓒ Art on Paper
작지만 색다른 미술 시장
또 한 가지 아머리 아트 위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등장한 대안적 형태의 아트 페어다. 창조적 에너지가 넘치는 뉴욕에서는 스스로를 차별화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기존의 획일화된 아트 페어와 달리 특정 매체를 중심으로 접근하거나 갤러리가 아닌 큐레이터가 직접 부스를 운영하고, 주최 측과 참가자를 아우르는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도 한다. 아트 온 페이퍼(Art on Paper), 무빙 이미지 아트 페어(Moving Image Art Fair), 인디펜던트 아트 페어(Independent Art Fair), 스프링 브레이크 아트 쇼(Spring Break Art Show) 등이 그 대표주자다.
아트 온 페이퍼는 2015년 처음 열려 올해 2회째를 맞는다. 브루클린에 기반을 둔 아트 마켓 프로덕션(Art Market Production)에서 설립했는데, 종이 매체 중심의 페어라는 점에서 첫해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단순히 종이로 제작한 작품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감을 받은 작품까지 선보인다. 브루클린 미술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지역 작가와 미술인들의 연계를 도우며 프로모션을 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상 작품만 소개하는 무빙 이미지 아트 페어는 첼시의 워터프런트 터널(Waterfront Tunnel) 이벤트 공간에서 열린다. 오래도록 미술 시장의 변방에 머무른 사진이 이제 당당히 주요 매체로 대접받는 반면, 영상 작품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어 아트 페어에서 만날 수 있는 영상 작가도 빌 비올라(Bill Viola)를 포함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빙 이미지는 영상 작품을 아트 페어라는 역동적인 환경에서 선보인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인 미드나이트 모먼트(Midnight Moment)와 연계해 3월 한 달간 매일 밤 자정에 타임스스퀘어에서 작품을 상영하기도 한다. 시간 예술이기도 한 영상 작품을 감상하려면 긴 호흡과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특색 있는 페어다. 실제로 판매도 이루어지는데, 작품을 구입하면 감상용과 보관용 두 버전을 진품 증명서와 함께 소장할 수 있다.
2010년 아트 딜러 엘리자베스 디(Elizabeth Dee)와 대런 플룩(Darren Flook)이 설립한 인디펜던트 아트 페어는 운영 방식을 차별화해 성공한 경우다. 새로운 참가자는 설립자와 기존 참가자들의 협의하에 초청되며 갤러리뿐 아니라 독립 큐레이터, 비영리 공간도 참여할 수 있다. 주최 측과 참가자는 계약을 통한 일시적 관계가 아니라 페어 전반의 운영 상황을 공유하고 협의하는 일종의 콘소시엄이다. 따라서 구성원 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한 기획력이 돋보이고 작품의 실험성이 두드러진다. 올해는 트라이베카에 있는 스프링 스튜디오에서 3월 3일부터 6일까지 40여 개국의 갤러리와 비영리 공간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다.
스프링 브레이크 아트 쇼는 2013년 젊은 예술 기획자 앤드루 고리(Andrew Gori)와 앰브르 켈리(Ambre Kelly)가 설립한 이래 매년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파격적인 페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갤러리가 아닌 큐레이터가 각각의 부스를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점. 주최 측이 제시한 주제에 맞춰 큐레이터들이 전시 기획안을 제출한 뒤 선정된 참가자가 전시를 연다. 말하자면 아트 페어이자 일종의 팝업 전시인 셈이다. 올해의 주제는 ‘Copy Paste’로, 3월 2일부터 7일까지 펜 스테이션 건너편의 유서 깊은 우체국 건물에 들어선 모이니핸 스테이션 스카이라이트(Skylight at Moynihan Station)에서 열린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무명 작가부터 첼시 갤러리의 유명 작가까지 다양한 작가의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모든 작품을 온라인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에 올려둔다. 올해는 100여 명에 달하는 큐레이터가 참여한다.
대중을 유혹하는 전시의 장은 뮤지엄에서 비엔날레로, 그리고 다시 아트 페어로 끊임없이 확대되어왔다. 한편에선 시장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미술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한 작품 거래 장소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대안적 형태로 진화해가는 여러 아트 페어의 행보가 꽤 반갑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황진영(큐레이터, Jin Coleman Art Advisory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