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함과 소통 불가 사이
식석갓세, 섯씨구, 냠냠. 현시대를 둘러싼 언어 일탈. 그 현상을 짚어본다.

1, 2 마치 암호같은 언어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SSG닷컴 광고.
TV 광고에 등장한 배우 공유와 공효진이 대화한다. “싯슷기 솩 가세.”, “섯씨구.” 또 다른 광고에선 인기 그룹 트와이스의 멤버들이 서로 “냠냠냠냠 냠냠?”이라고 대화한다. 이 모습을 본 시청자의 머리위엔 물음표가 뜬다. 분명 한국어임에도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화면 아래 자막이 달리긴 한다. 하지만 그걸 보면서도 대사와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유통업계에서 초성과 신조어를 사용하는 마케팅이 증가하고 있다. 자막이 없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를 내뱉으며,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인상’을 남기는 데 집중한 광고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광고는 신세계의 온라인 몰 SSG닷컴의 ‘쓱’이다. 이들은 2016년 영어 SSG를 ‘쓱’으로 읽는 광고를 내보내며 대중의 관심을 모았고, 인기를 얻어 지난가을엔 배우와 감독을 그대로 쓴 시리즈 광고 2탄까지 내놓았다. 두 번째 광고는 본격적으로 언어를 가지고 놀며 더욱더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번엔 자음의 초성과 중성을 모두 ‘신세계’에서 따온 ㅅㅅㄱ로 바꿔, ‘신선하네’는 ‘식석갓세’로, ‘얼씨구’는 ‘섯씨구’로, ‘믿음이 확 가네’는 ‘싯슷기 솩 가세’라고 발음한다. 이런 방식은 ‘SSG어’ 혹은 ‘쓱어’라 불리며 유행을 선도했다.

3 독특한 말투로 강한 인상을 남긴 LF몰의 냐 광고 시리즈.
4, 5 롯데면세점의 영어 이니셜 LDF를 따서 만든 냠 캠페인.
이뿐이 아니다. 패션 브랜드 LF의 온라인 쇼핑몰 LF몰도 LF라는 이름이 마치 한글 ‘냐’처럼 보인다는 데서 착안해 ‘냐’ 광고 시리즈로 대중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롯데면세점의 ‘냠’도 마찬가지. ‘롯데 듀티 프리(Lotte Duty Free)’의 영어 단어 첫 글자를 딴 LDF에서 D를 받침처럼 내리면 한글 ‘냠’처럼 보이는데, 광고에 나오는 모든 대화를 오로지 ‘냠’으로만 표현했다. 냠은 LDF의 줄임말인 동시에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뜻의 ‘냠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롯데면세점이 “친근하고 중독성 있는 키워드로 2030 세대를 공략하겠다”며 내세운 ‘쇼핑을 맛있게 사다 냠’ 광고는 ‘쓱어’와 마찬가지로 ‘냠어’라 불린다.
이 같은 광고를 본 필자는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유행한 ‘도깨비나라 말’을 떠올렸다. 도깨비나라 말은 문장의 음절마다 ‘ㅅ(시옷)’과 ‘모음’을 합친 음절을 덧붙이는 게 규칙이다. ‘바보’는 ‘바사보소’로, ‘밥 먹었어?’는 ‘바삽 머석어섰어서?’라고 발음한다. 지금은 읽고 쓰기조차 어렵지만 당시엔 굳이 하나하나 해석하지 않아도 단번에 말이 통했다. 그 시절 도깨비나라 말을 쓴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말로 서로의 비밀을 주고받기 위해서였다. 한데 이는 일단 규칙만 알면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어 점점 널리 퍼져나갔고, 너 나 할 것 없이 도깨비나라 말로 대화해 끝내 비밀유지가 불가능해지며 결국 하나의 놀이가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20여 년 전 유행한 우리만의 비밀 언어가 이제는 광고로 제작되어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린 셈이다.
서울 삼성동과 동대문에 지점을 낸 신세계 잡화 스토어 ‘삐에로 쑈핑’도 대중의 향수를 자극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피에로 쇼핑’이 맞지만, ‘삐에로 쑈핑’으로 쓰며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다. 삐에로 쑈핑의 유진철 브랜드 매니저는 오픈 기자 간담회에서 “지금은 쇼핑이라고 발음하지만 과거 1970~1980년대 영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엔 ‘쑈핑’이라 불렀다”며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잡화점을 만들고자 했다”고 삐에로 쑈핑이라는 독특한 명칭의 근원을 밝혔다.
국립국어원은 “초성을 사용한 말은 문법적으로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빠르게 퍼져나가는 줄임말이나 초성은 일상에서도 사용 빈도가 높다. SNS나 메신저에서 ‘응’은 ‘ㅇ’으로, ‘오케이’는 ‘ㅇㅋ’로, ‘축하해’는 ‘ㅊㅋ’로 줄여 쓰는 사례는 비단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한글자음과 모음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써서 ‘멍멍이’를 ‘댕댕이’로, ‘명작’을 ‘띵작’으로 쓰는 한글 사용이 등장한 지 오래며, 온라인에선 신조어를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신조어 능력 평가까지 유행하고 있다.
최근엔 초성어나 줄임말을 쓴 광고 외에 제품도 다양하게 출시된다.
현대 H몰의 생활용품 PB 브랜드는 물건을 보고 ‘괜찮네’라고 말하는 데서 자음만 따온 ‘ㄱㅊㄴ’를 브랜드 이름으로 내놨다. GS편의점이 판매한 칭다오와 짜장 불닭볶음면 패키지는 ‘짜불따오’라는 줄임말로 대중의 시선을 붙잡았고, 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긴다는 뜻의 ‘호캉스’에 이어 기나긴 추석 연휴와 바캉스를 합친 ‘추캉스’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사실 필자는 이처럼 신조어나 언어 파괴 마케팅이 꼭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안 그래도 SNS나 메신저 등을 통해 신조어가 무분별하게 퍼지는 시대에 광고나 마케팅까지 언어 파괴를 부추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광고는 공신력이 있는 매체이기에 발음하기도 어렵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언어가 거름망 없이 확산될 우려가 크다. 그 때문에 적지 않은 이들이 결국 이것이 소통의 단절을 야기할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일각에선 신조어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 사고가 얕아지고, 소통 방법이 왜곡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긍정적 반응도 있다. 대중은 중독성이 있는 데다 참신하고 기발하다며 이런 언어유희에 흥미를 보인다. 유통업계에 퍼진 신조어 열풍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중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단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광고와 독특한 문구를 접한 대중은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점점 화제성을 높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하며,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매출 상승 효과를 낸다는 마케팅 전략이 성공했다는 평이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한 매체를 통해 “요즘 사람들은 사는 게 무료하고 희망이 없어 말초적인 자극으로 즐거움과 위안을 얻으려 한다. 그런 요구가 디지털과 소셜 네트워크 환경과 만나 신조어를 즐기는 문화로 퍼졌고, 상업적으로 번졌다”고 현 상황을 짚으며 “언어유희를 통해 새로운 문화 자산이 생겨나기도 한다. 가령 ‘밀당’, ‘꿀잼’, ‘심쿵’ 등은 이전엔 없던 문화 현상을 나타내는 단어다. 놀이는 놀이대로 즐기되 일상에서는 제대로 된 언어를 쓰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간 수많은 신조어가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물론 지금의 현상 또한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이전의 도깨비나라 말이 지금은 제대로 읽기조차 어려운 것처럼 또 다른 유행이 찾아와 곧 지나갈 거라는 얘기다. 그 때문에 이러한 흐름이 무분별한 언어 파괴일지, 흥미로운 언어유희일지는 받아들이기 나름 아닐까. 놀이는 놀이대로 즐기되, 일상에선 제대로 된 언어를 쓰는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백아영(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