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과 영감의 원천
현실과 간격을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워크숍이 열린 프랑스 뇌빌 보스크 샤토포름.
갑작스럽고 뚜렷한 깨달음 혹은 자각을 뜻하는 ‘에피파니(epiphany)’. 누구나 이런 자극과 깨달음이 항상 충만한 삶을 꿈꿀 테다. 하지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어디 그게 마음처럼 쉬운 일인가. 넘쳐나는 휴대폰 메시지와 이메일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헤엄치는 가운데 또 다른 세상 한편에서는 “창의성을 펼쳐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현하라”고 외친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구현해내는 작업은 예술 영역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최첨단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경쟁해야 하는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와 혁신이 요구된다. 어쩌면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그 행렬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 매몰돼 살다 보면 ‘에피파니 순간’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수년 전 이전 회사에 근무할 때,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고성(古城)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 수도원으로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창밖으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 3박 4일간 고립되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연극 같은 모의 협상 연습을 했다. 비 내리는 아침, 통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원형 회의장에서 미팅이 이어질 때였다. 워크숍을 시작하면서 “평상시 쓰지 않던 두뇌 회로를 써보자”고들 했는데, 정말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 같았다.
업무의 20%를 자기 계발 혹은 창의적인 곳에 쓰게 하는 구글의 ‘20% 타임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제도는 지금의 구글로 발전하는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직원들이 현재 몰두하는 업무에서 반강제적으로(?) 벗어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기업이 제도로 뒷받침한 것이다.
최근 경상도에 위치한 소위 사유(思惟)와 사색(思索)을 위한 장소로 유명한 수목원에 다녀왔다. 잘 정리된 자연 속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시간은 항상 매여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본의 기업인이자 경제학자인 오마에 겐이치는 사람이 바뀌는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을 달리 쓰고, 사는 곳을 바꾸고, 교류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 즉 과거와 다른 환경, 다른 시각으로 살아야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다. 사는 곳이야 쉽사리 바꿀 수 없지만, 현실과 분리된 시간은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다. 한 발만 물러나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글∙사진 황성혜(한국존슨앤드존슨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