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벽으로, 현대사진의 공간 이동
예술이 아니라며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던 사진은 어떤 과정을 통해 미술관에 입성한 것일까? 현대사진의 개념을 바꾸고 그 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 전시와 작가, 그리고 사진의 인생 역전사가 펼쳐진다.
현대미술이 사진을 수용하면서 사진전이 크게 늘었다. 미술관이나 상업 갤러리도 사진을 중시하는 추세고, 현대미술가 중에는 사진을 작품에 적극 활용하는 작가도 많다. 사진과 현대미술의 교집합이 점차 커지면서 사진이 점유하는 전시 공간도 넓어졌다. 미술관 전시는 예술 작품과 만나는 배타적 통로로, 오랫동안 사진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떻게 미술관에 들어오게 됐을까? 현대미술과 보조를 맞추며 현대사진을 가꿔나간 전시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보몬트 뉴홀이 쓴 < Photography 1839–1937 >의 표지

<인간 가족>전을 위한 축소 모형을 손보는 MoMA의 사진분과 디렉터 에디워드 스타이컨
ⓒ Wayne Miller/Magnum Photos

베허 부부, Winding Towers, 젤라틴 실버 프린트, 1966-1997
ⓒ 2010 Hilla Becher

카를 안드레, Forty-Ninth Steel Cardinal, 1974

앤디 워홀, Campbell’s Soup Cans, 32개의 캔버스에 합성 수지 안료, 각 50.8×40.6cm, 1962
ⓒ 2015 Andy Warhol Foundation / ARS, NY / TM Licensed by Campbell’s Soup Co. All rights reserved.
사진의 미술관 입성 초읽기
193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보몬트 뉴홀(Beaumont Newhall)이 기획한 <사진 1839-1937>전은 미술관에서 사진을 비중 있게 다룬 첫 전시다. 그런데 이 전시는 사진 발명 100년에 초점을 맞춘 역사전 성격을 띠어 다소 아카데믹할 뿐 아니라 문화사적 관점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사진을 다루면서 가장 주목받은 전시는 1955년에 같은 미술관에서 열린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전이다. MoMA의 사진 분과 디렉터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기획했으며 규모나 성과, 파급력 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이 전시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먼저 사진의 전통적 유통 방식을 살펴야 한다.
미술관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동안 사진은 주로 인쇄 매체와 친숙했다. 사진첩이나 앨범, 책 등의 인쇄 매체는 사진과 만날 수 있는 가장 보편적 방법이었다. 사진은 태생적으로 복제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전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다수의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사진은 예술로 ‘전시’되거나 컬렉션에 속하지 않고, 복제 이미지로 ‘배포’됐으며 도서관에 ‘고서’의 자격으로 보존됐다. 1930~1940년대에 들어 인쇄 매체의 시대가 열린다. < life >와 < look > 같은 화보 잡지는 TV가 없는 시대에 포토저널리즘의 황금기를 열어준 대표적 인쇄 매체다. 포토저널리즘의 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컸다. 인쇄 매체의 힘을 일찍이 알아본 스타이컨은 <인간 가족>전을 그런 관점에서 기획했다.
이 대규모 전시에는 총 273명의 사진가가 참여했다. 기획자는 전 세계에서 약 200만 장의 사진을 모으고 주제별로 1만 장의 사진을 선별해 분류한 후 그중 503점을 골랐다. 나이와 성별, 인종과 국적에 상관없이 ‘박애주의’에 대한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스타이컨은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순간을 한자리에 끌어모았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전시의 반향은 컸다. 미국의 도시와 유럽, 러시아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린 순회전에 1000만 이상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대중적으로 성공했지만, 전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일방적 휴머니즘, 지나친 낙관주의, 통속적 감상주의 등이 전시를 비판한 주요 표현이다. 나아가 전쟁의 당사자가 그 참화를 은폐하려는 시도이자 속임수라는 극단적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전시의 형식도 문제였다.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마거릿 버크-화이트(Margaret Bourke-White),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처럼 다큐멘터리와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과 무명의 사진가를 망라했지만, 정작 사진가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았다. 사진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도였다. 사진의 진열 방식도 마치 잡지의 페이지를 넘겨보는 듯한 형식을 취했다. 나아가 모더니즘 사진이 중요하게 여기던 파인 프린트, 즉 고품질 인화를 무시하고 거친 복제 이미지로 전시를 구성했다. 결국 스타이컨에게 중요한 것은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조명하기보다, 사진의 복제력을 활용한 사회적 기능의 극대화였다. 그의 의도는 대중적 성공으로 이어졌지만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겨둔 문제적 전시로 남게 됐다.
<인간 가족>전에 대한 반대급부는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과 MoMA의 새로운 사진 디렉터 존 사코스키(John Szarkowski)가 기획한 <뉴 도큐먼츠(New Documents)>전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은 사진집이지만 어떤 전시보다 현대사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뉴 도큐먼츠>전 역시 <미국인들>의 영향으로 기획했다. 전시가 아닌 사진집의 반향이 컸다는 점은 20세기 중반에는 여전히 전시보다 책이 사진의 유통을 지배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또한 사진집이 자율적 예술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사진은 ‘아직’ 미술관으로 들어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로버트 프랭크가 1954년 구겐하임 재단의 기금을 받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촬영한 사진을 담았다.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보편적 시각의 산물이 아니라 주관적 시각에 따라 해석한 이미지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현대사진의 시금석으로 평가된다. 로버트 프랭크라는 외국인(스위스인)의 눈에 비친 미국인의 모습은 낯설고 기이했다. 국가에 대한 과도한 자부심, 과거(서부 개척 시대)에 대한 향수, 소비문화, 인종차별 등 ‘내부자’의 눈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모습을 사진에 적나라하게 담으면서 프랭크는 미국 문화의 비판자 역할을 떠맡게 됐다. 그래서 첫 출간 예정지인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1958년에 먼저 선보였다.
Art & Project/Depot VBVR Gift. ⓒ 2015 Gilbert & George
길버트 & 조지(Gilbert & George), The Red Sculpture Album, 11개의 C-프린트와 글로 구성한 아티스트 북, 38.5×50.5cm, 1975

Credit Photographs Courtesy of The Artists
미칼린 토마스(Mickalene Thomas), Portrait of Lili in Color, C-프린트, 10.2×12.7cm, 2008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Joe, NYC, 젤라틴 실버 프린트, 35.8×35.3cm, 1978(현상), 1992(프린트)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암스테르담 스테렐레이크 미술관에서 열린 볼프강 틸만스의 개인전 전경
Photo by Gert-Jan van Rooij

Jaroslav Rossler, Still Life With Small Bowl, 젤라틴 실버 프린트, 22.54×23.81cm, 1923

라이트 박스를 활용한 제프 월의 개인전 전경
Photo by Gert-Jan van Rooij
예술로 진화한 현대사진의 스펙트럼
<뉴 도큐먼츠>전은 <미국인들>이 출간되고 10년이 지난 1967년에 열렸지만, 사진을 둘러싼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시 서문에서 사코스키는 전통적 다큐멘터리 사진이 ‘삶을 개혁하고자’ 한 반면 새로운 다큐멘터리는 ‘삶을 이해하고자’ 한다고 그 차이점을 분명히 밝힌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다이앤 아버스,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로 각자 스타일엔 다소 차이가 있다. 아버스는 쌍둥이, 난쟁이, 양성인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프리들랜더와 위노그랜드는 거리의 일상을 찍었는데, 전자는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에, 후자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었다. <인간 가족>전이 인간은 ‘하나’임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이 전시에서 인간은 ‘여럿’이다.
사코스키의 의도는 스타이컨과 명확히 달랐다. 스타이컨이 사진을 감정에 호소하는 보편적 언어로 다루고자 했다면, 사코스키는 사진을 미학적 언어로 간주했고 사진의 모더니즘 미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 원칙에 따라 그는 작가들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각 작가의 고유한 미학적 특성을 부각했으며, 책보다 전시가 모더니즘 미학의 특성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1970년대 무렵부터 갤러리도 사진을 수용해왔다. 로버트 프랭크 같은 다큐멘터리 작가의 사진이 ‘예술 작품’처럼 거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MoMA 같은 소수의 미술관만 사진을 취급할 뿐 대다수 미술관은 여전히 사진을 냉소적으로 대했다.
사진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미술관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대지미술이나 퍼포먼스 작가는 기록을 위해 사진을 활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자료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자료로서의 사진이 현대미술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것은 개념미술의 맥락에서 정당화된다. 그 전조는 에드워드 루샤(Edward Rusha)의 ‘26개의 주유소’(1962년)나 댄 그레이엄(Dan Graham)의 ‘Homes for America’(1966년)에 나타나고 있었다. 두 작품은 모두 전통적 도큐먼트 사진을 책의 형태로 발간함으로써 미술의 고전적 전시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고, 텍스트를 수반하지 않은 사진의 ‘우둔함’을 강조했다. 사진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모더니즘 미술을 지탱하는 미술관이라는 제도에 대해 회의적이던 초기 개념미술의 전략과 잘 맞았다. 회화와 조각의 미학적 형태를 버리고 개념을 선택한 그들에게 사진은 그 개념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매체였을 뿐이다.
개념미술로서 사진이 전시장을 장악한 의미심장한 사례로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조각’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를 꼽을 수 있다. 1960년대부터 독일의 공장 건축물을 기록해온 부부에게 사진은 투명한 매체였다. 그들은 1930년대 독일 사진의 전통에서 미학과 방법론을 끌어왔다. 첫 번째는 알베르트 렌거-파치(Albert Renger-Patzsch)나 카를 블로스펠트(Karl Blossfeldt)의 신객관주의 사진이 원칙으로 삼은 객관적이고 정교한 재현, 두 번째는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가 독일인의 초상을 신분과 계급에 따라 분류하면서 제시한 유형학적(typological) 방법이다. 이 두 원칙에 따라 베허 부부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했다. 재현의 정확도와 정밀도를 극대화하는 한편 부드러운 광선 조건에서 촬영을 진행해 콘트라스트를 낮추고 질감을 풍부히 표현했다. 또한 대상의 왜곡을 피하고자 수평 앵글을 사용하고, 가급적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대상을 기록하기 위해 정면에서 촬영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은 유형별로 분류, 함께 묶인다. 같은 유형에 속하는 냉각탑, 물탱크, 발전소 등의 피사체는 형태도 유사해 반복의 효과가 더욱 부각됐다. 1970년 <익명의 조각들>이라는 사진집의 평문을 쓴 미니멀리즘 작가 카를 안드레(Carl Andre)는 베허 부부의 사진이 반복과 수열성(數列性), 규칙성, 정형성을 특징으로 한 후기 미니멀리즘 성격을 띤다고 진단했다.
‘그림’이 된 사진
도큐먼트와 아카이브의 성격을 바탕에 깔고 있는 베허 부부의 ‘사진 조각’은 독일의 다른 사진가에게 하나의 모델이 됐다.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베허 부부에게 수학한 토마스 슈트루트(Thomas Struth),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같은 작가는 부부의 사진을 공부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고, 현대사진의 성격을 다변화시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전시의 형식이다. 베허 부부 이후 현대사진은 책과 결별하고 전시장 벽면을 고수한다. <인간 가족>전이나 <뉴 도큐먼츠>전에 걸린 사진과 비교할 때 그들의 사진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대형 카메라를 사용한 덕분에 사진의 물리적 품질은 매우 뛰어나며 사진의 크기 또한 수미터를 넘는 초대형이 대부분이다. 관람자는 벽에 걸린 이 대형 사진 앞에서 압도당한다. 이런 전시 형식은 책장을 넘기면서 사진을 감상할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프랑스의 평론가 장-프랑수아 슈브리에(Jean-François Chevrier)는 이를 ‘타블로 형식’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관람자는 벽면에 걸린 사진을 일대일로 대면하면서 풍부한 심미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전통적 이젤 회화가 관람자와 만나는 방식이었다. 요컨대 사진은 타블로 형식으로 책에 실린 독해 이미지가 아니라 비로소 감상용 작품으로 다가온 셈이다. 일례로 토마스 루프는 ‘포트레이트’ 연작을 원래 24×18cm의 작은 크기로 제작하다 1986년부터 210×165cm의 대형 크기로 인화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벽에 걸 수 있도록 계획한 셈이다. 뒤셀도르프 출신 독일 작가뿐 아니라 사진을 ‘그림(picture)’으로 이해하는 제프 월(Jeff Wall)이나 장-마르크 뷔스타망트(Jean-Marc Bustamante)도 그 점은 같다. 그들에게 사진은 기계적 방식으로 제작한 그림이다.
1970년대 이후 사진이 현대미술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전시의 역할은 매우 컸다. 결국 전시는 사진을 미술로 인정하는 우회적 방법이었다. 사진이 책을 버리고 벽을 선택한 근저에는 현대미술의 논리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현대미술 작품은 전시의 형태로 더는 벽면을 고집하지 않으며, 미술관이라는 폐쇄적 공간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설치미술이나 오브제 미술은 공간 전체를 활용하기도 하고, 대지미술의 확장으로 장소 특정적 미술이나 공공 미술은 미술관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나아가 미디어 아트나 인터넷 아트는 고전적 전시 방식을 넘어 새로운 소통의 형식을 찾아나가고 있다. 이미 벽면을 정복한 사진도 다른 소통 방식을 모색해야 할 때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글 박평종(미학, 사진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