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팟캐스트
출퇴근길 지하철 안,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졸지 않으면 대부분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다들 게임만 하고 있을까? 책이 사라진 자리에,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가 들어왔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팟캐스트는 아이팟(ipod)과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의 합성어로 인터넷망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1인 방송국이라고 보면 된다. 비디오와 오디오 모두 가능하지만 제작 비용과 편의성을 고려해서인지 오디오 방송의 수가 훨씬 많다. 팟캐스트를 아이튠즈나 애플의 기기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안드로이드폰, MP3 등 다양한 기기로 들을 수 있다. 관심 있는 채널의 구독 신청을 해놓으면 자동으로 최신 콘텐츠가 업데이트되고,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다운받아서 들을 수 있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은 아니지만 각자 편한 시간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광고도 없어 집중도가 높다. 시사, 교육, 유머, 음악 등 종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팟캐스트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책 관련 팟캐스트,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의 인기가 두드러진다. 아이튠즈 팟캐스트 인기 차트에서도 책 관련 팟캐스트가 대부분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대형 출판사에서 제작하는 대표적 팟캐스트로 위즈덤하우스의 <이동진의 빨간 책방>, 창비의 <라디오 책다방>, 문학동네의 <채널1-문학 이야기>가 있으며 아동 . 청소년 문학 전문 출판사 푸른책들, 북스피어의 <르 지라시>, 다산북스의 <책으로 트다>, 휴머니스트의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등 잔칫상처럼 풍성하다. 책이라는 큰 주제는 같지만 출판사마다 다른 스타일로 접근해 독자들을 유혹한다. 위즈덤하우스의 <이동진의 빨간 책방>은 2012년 5월에 가장 먼저 시작한 팟캐스트로 아이튠즈 오디오 팟캐스트 인기 차트 2위에 랭크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회당 누적 다운로드 횟수가 평균 10만 정도에 달한다. 1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소문난 독서광인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메인 MC이며 게스트로 출연했다가 아예 고정 패널로 눌러앉은 소설가 김중혁 씨까지 합세해 유쾌한 이야기의 장을 펼친다. 워낙 죽이 잘 맞아 코미디 만담을 나누는 것 같지만 ‘내가 산 책’, ‘책 임자를 만나다’ 등의 코너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깊이와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수요일에 업데이트한다.
왼쪽부터 진행자 김두식 교수와 소설가 황정은
창비에서 운영 중인 <라디오 책다방>은 <욕망해도 괜찮아>의 저자 김두식 교수와 소설가 황정은 씨가 함께 진행한다. 시인이 직접 시를 읽어주는 ‘밖으로 간 시’, 독자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상담해도 괜찮아’ 등의 다양한 코너로 구성했다. 황혜숙 창비 인문사회 분야 팀장은 “책다방만큼 고정적으로 게스트를 초대해 책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는 없어요. 신경숙, 박민규, 천명관 등 문학 작가뿐만 아니라 홍세화, 진중권, 김종대 등 인문사회 분야 저자까지 다양하게 모시고 있습니다”라고 <라디오 책다방>의 장점을 설명했다. 보름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횟수를 늘릴 정도로 꾸준히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지난 7월 처음 시작한 문학동네의 <채널1 – 문학 이야기>는 비교적 후발 주자에 속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평론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가 단독으로 진행한다. 첫 방송에서 스스로 밝혔듯 새벽 2시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느낌이다. ‘문학의 단상’, ‘문학의 만남’, ‘이달의 책’까지 크게 세 코너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에 관한 진중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를 웃음기 없이 건조하게 들려주는데 오히려 더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소설가 김영하, 영화감독 박찬욱,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등 화려한 게스트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한 달에 1회 업데이트하다 보름에 한 번씩으로 변경했다. 이처럼 출판사에서 앞다투어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멀티미디어의 소비문화가 확대되면서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날로 어려워지는 출판 환경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했고, 책과 독자 간의 거리를 좁히는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책 전문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왕인숙 위즈덤하우스 소셜마케팅 실장의 말이다. “온라인 카페가 문학과 독자의 거리감을 좁히고 책을 좀 더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팟캐스트는 좋은 작가와 뛰어난 문학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학동네 조연주 부국장은 출발은 늦었지만 오래 고민하고 준비해왔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책 읽어주는 라디오’를 콘셉트로 내세운 EBS 라디오를 제외하면 현재 공중파 TV나 라디오에서 책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모두 사라졌다. 책에 대한 담론이 형성될 수 없는 상황이다. 팟캐스트는 더 많은 독자를 만나고 싶은 출판사와 책에 대한 양질의 정보에 갈증을 느끼던 독자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합작품인 셈이다. 책 관련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 이들은 대부분 원래부터 책을 꾸준히 읽고 좋아해온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에 달하는 방송을 책에 대한 관심 없이 집중해서 듣긴 쉽지 않은 일이다. 스마트폰에 뺏긴 독자들의 시선을 되찾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듣는 팟캐스트를 선택한 출판사의 흥미로운 시도는 다행히 성공적으로 보인다. 오프라 윈프리의 북클럽에 등장한 책이 다음 날 베스트셀러에 오르듯, 인기 팟캐스트에서 언급한 책의 판매율도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자사 책을 홍보하는 마케팅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누구나 책을 즐길 수 있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다. 출판사에서 만든 팟캐스트는 지금도 순항 중이지만, 앞으로 기존의 책 애호가를 넘어 새로운 독자까지 끌어들여 책에 대한 활발한 이야기를 생산하는 창구가 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리의 방송을 듣는 일 자체가 책을 읽는 것에 준하는 체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가 하는 모든 말이 그대로 책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을 듣는’ 경험을 하게 하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설명에 팟캐스트가 인기를 얻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담겨 있다. 귀로 듣는 책, 나만을 위해 누군가 책을 읽어주는 황홀한 경험이 가능한 것이 팟캐스트다. 이제 책에 대한 재미있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팟캐스트를 가장 먼저 들어보면 되겠다.
에디터 고현경
사진 제공 문학동네, 위즈덤하우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