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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화 요새를 아시나요?

LIFESTYLE

각종 재난으로부터 당신과 가족을 지키고 마침내 파라다이스로 안내해줄 초호화 대피소의 세계.

골프장을 중심으로 30여 채의 저택으로 둘러싸인 미국 마이애미의 인디언크릭빌리지

지하 14m에 둥지를 튼 배스티언 홀딩스 아파트 ⓒ Harry Norman Realtors

비보스 인디애나의 공용 거실 ⓒ Terravivos.com

“세상 어디에도 없는 궁극의 안전을 제공합니다. 지하에 있지만 5성급 호텔 시설과 비교해도 손색없습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부동산업체 배스티언 홀딩스(Bastion Holdings)는 조지아 주 사바나 지역 인근에 건설한 지하 아파트의 완공 소식을 알렸다.
과거 미군 훈련 시설로 사용하던 건물을 3년 전 인수해 개조한 곳으로 지하 14m에서 4가구가 거주할 수 있다. 핵 공격과 테러, 각종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이 아파트의 가격은 약 1750만 달러(약 200억 원). 내부 시설은 태양열발전으로 가동하며 기본 거주 시설 외에 영화관, 오락실, 의료 센터, 교실 등을 갖춰 장기 거주도 가능하다. 보안상 이유로 정확한 위치는 부동산업체와 주인 외에 아무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벙커’나 ‘요새’는 영화 속 주인공이 외계인 침공, 전쟁, 인류 종말을 피하기 위해 마련하거나 국가적 차원에서 설치한 특수 장치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최근엔 얘기가 좀 달라졌다. 지구 종말이라는 초인류적 문제를 차치하고도 안보 위협, 전염병, 기후 이변, 테러 공격, 대홍수, 대지진 등 초자연적이고 세계적인 재난이 만연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 경각심을 느낀 세계의 부호들은 안전한 대피소를 찾아 나섰고, 이를 겨냥한 고급 벙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적게는 억대에서 많게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비밀 요새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현재 두 번째 콘도를 건설 중인 미국 캔자스 주 컨커르디어 소재의 럭셔리 서바이벌 콘도(Luxury Survival Condo)는 2012년 1차 분양 완료 후 추가 문의가 쇄도했다. “밖에서는 약 7250kg 무게의 철문 2개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지하 주택입니다. 과거 미사일 격납고로 쓰던 곳으로 핵무기에도 견딜 수 있을만큼 내구성이 좋죠.” 럭셔리 서바이벌 콘도의 대표이자 건설업자인 래리 홀(Larry Hall)은 지하 15층 규모의 럭셔리 방공호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대 75명이 5년은 먹고살 수 있는 식량과 물자, 물 7만5000갤런을 담을 수 있는 수조와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정화 시설, 독립적 거주 시설은 기본이다. 수영장, 스파, 영화관, 도서관, 사격장, 인공 암벽뿐 아니라 애완동물 산책로와 수경 정원 등의 부가 시설을 살펴보면 여기가 지하 대피소인지 휴양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 이 콘도가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거주민에게 제공하는 수준 높은 경호 시설이다. 정문에서 항시 대기 중인 무장 경호원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640km 이내 지역을 여행할 경우 무장 차량도 이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분양가는? 1개 층 공간의 절반 크기 모델이 약 17억 원, 펜트하우스는 53억 원이 조금 넘는다.
한편 대표적 벙커 건설사 비보스(Vivos)는 고객층을 세분화해 시장 규모를 넓혀가는 중이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한 고속도로 인근에 설치한 지하 벙커 비보스 인디애나(Vivos Indiana)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 불리는 커뮤니티 셸터(community shelter)다. 80명이 최대 1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이곳에는 공용 거실과 다이닝룸을 중심으로 4인용, 6인용 스위트룸과 일반 객실 그리고 화장실 5개와 샤워실 2개가 있다. 냉장고에는 수십 가지 냉동 식품과 통조림 식품을 구비했다. 피트니스와 반려동물 센터는 한 장소에 모았다. 1일 숙박비는 성인 기준으로 약 42만 원. 이 벙커는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멤버를 모집 중이다. 신청자의 프로필과 내부 규정에 따라 나이, 성별, 직업, 출신지 등을 고려해 공동 대피소를 장기간 유지할 최적의 인원을 선발한다. 의료, 교육, 기술 등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전문 스킬을 갖춘 사람에겐 스페셜 할인 혜택도 부여한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요트, 이클립스 ⓒ Wikimedia Commons

대형 수족관을 갖춘 유로파 원의 침실 ⓒ Terravivos.com

비보스 그룹의 창립주이자 CEO 로버트 비치노(Robert Vicino)는 현재 독일 로덴스타인 지역에서 새로운 럭셔리 벙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축구장 43개 크기를 자랑하는 초호화 복합 시설 유로파 원(Europa One)이 그 주인공. 지진, 쓰나미, 핵폭발, 생화학무기 등을 견디는 이곳은 3중 방사능 차단 문을 넘고 시멘트 터널을 지나야 5km 깊이의 지하에 닿을 수 있는 구조다. 유로파 원의 현재 가치는 약 11억 달러(1조3000억 원)로 추산된다. 자체 물 공급 시스템과 발전기, 온도조절기와 환기장치를 비롯해 헤어숍, 유치원, 24시간 레스토랑, 펍, 극장, 채플 등 다양한 고급 시설을 갖춰 외부의 도움 없이 일정 기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이곳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관리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이곳 역시 비보스 심사위원의 엄격한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외부위험으로부터 철저히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적용했습니다. 실제 재난 상황이 닥치면 세계 각지로 헬리콥터를 파견해 입주민을 수송할 예정이죠.” 창업자 비치노는 세계 억만장자들에게 회원권을 판매 중이다. 그는 분양가를 공개하지 않았으며 몇몇 입주자는 이미 직접 고용한 건축가와 함께 자신의 공간을 꾸미고 있다.
이런 요새가 지하에만 묻혀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첼시 FC 구단주인 러시아 부호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의 요트 이클립스(Eclipse)는 군용과 맞먹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갖췄다. 길이 163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 요트에는 헬리콥터 착륙장 두 곳과 개인용 잠수함을 탑재했으며, 레이저와 방해 전파를 발사해 파파라치 사진 촬영과 도청을 차단하며 사생활을 보호한다. “러시아 정부와 군대의 능력을 믿지 못해 이 요트를 구입했다”는 그는 이 특급 대피소의 유지비로 하루에 1억2000만 원을 지불한다.
미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으로 알려진 미국 마이애미 주 비스케인 만의 작은 섬 인디언크릭빌리지(Indian Creek Village)는 저명한 인사들의 안전 가옥으로 꼽힌다. 약 90명의 주민이 30여 채의 고급 저택에 살고 있다.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경비대가 24시간 내내 제트스키, 보트를 이용해 경비 태세를 취하고 있다. 마이애미에서 가장 은밀한 지역인 이곳의 거주자로는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Carl Icahn), 프로 미식축구팀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전 소유주 노먼 브래먼(Norman Braman)을 비롯해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와 그의 아들인 작곡가 겸 가수 엔리케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등의 유명인사가 있다”고 밝혔다.
전쟁 중 설치한 지하 은신처는 이제 옛말이다. 오늘날의 보호소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첨단 기술과 고급 시스템을 갖춘 초호화 요새로 변모하고 있다. 어디선가 지구를 구할 ‘어벤져스’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민간 차원의 안전 비즈니스는 더 크고 다양한 규모로 등장할 전망이다. 개인의 안전과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부호들의 노력 또한 계속될 것이다.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