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경이 가는 길
최나경은 이제껏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다고 했다.
최나경은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플루트를 입술에 갖다 댔다. 그걸 불기 전엔 “뭘 불어드릴까요?”라고 사근사근 묻기도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제24번’을 연주했다. ‘또로록’ 하는 플루트 소리가 지하 스튜디오에 울렸고, PC를 만지던 사진가와 스태프 서너 명이 연주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휘파람 소리처럼 이어지는 하모니의 연속. 형이상학적 분위기가 감도는 즉석 연주는 약 5분간 이어졌다. 그리고 5분 후의 세상에서, 그녀는 일상의 얼굴로 다시 돌아와 생글생글거렸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묘한 연주였다.
최나경은 그런 사람이었다. 유년기 시절부터 이미 ‘비일상적’ 삶을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늘 옆구리에 리코더를 끼고 살았다. 그러면서 동요, 대중가요, 드라마 주제곡 할 것 없이 모두 리코더로 불어댔다. 물론 나중엔 음계가 모자랐다. 그러다 찾은 게 바로 플루트였다. 그녀는 세 살 때부터 배운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습은 단 한번도 스스로 해본 적이 없지만, 플루트를 손에 쥔 후론 연습 벌레가 됐다. 플루트는 화음을 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플루트의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소리에 점점 빠져들었다.
대전 출신인 그녀는 이후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서울 유학을 결심했다. 먼저 예원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음악가가 되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서울예술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미국 최고의 플루티스트 줄리어스 베이커(Julius Baker)에게 극찬을 받으며 만 16세에 미국 명문 커티스 음악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커티스 음악대학을 졸업하곤 줄리아드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선 세계적 플루티스트 제프리 케이너(Jeffrey Khaner)의 지도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22세엔 18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에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인 신시내티 심포니에 부수석으로 입단했다. 그녀의 입단은 한국인 관악 부문 ‘최초’이자 ‘최연소’라 더 화제가 됐다. 이후에도 그녀는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 활동을 병행하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연자 콩쿠르’와 ‘야마하 영 아티스트 콩쿠르’ 등의 세계적 대회에 나가 줄줄이 우승했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한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저희 집은 외할아버지와 엄마, 외삼촌까지 모두 음악을 하셨거든요.”
그녀의 비일상은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2012년 봄, 그녀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터뜨렸다. ‘한국인 최초’이자 ‘동양인 최초’, ‘최연소 수석’이라는 긴 타이틀을 얻으며 112년 전통의 빈 심포니에 입단한 것이다. 당연히 콧대 높은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빈의 정서상 자국 연주자를 먼저 뽑아야 했지만, 그녀의 실력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245명의 경쟁자를 모두 누를 만큼 뛰어났다. 실제로 그녀는 오디션 당일 몸살이 심해 모든 걸 내려놓고 연주했으나, 오히려 그런 진정성이 심사위원을 감동시켜 “완벽한 오디션(perfect audition)”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빈 심포니에서 활동한 시간은 사실 그녀에게 생각만큼 큰 행복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 수석 주자로 지낸 1년간 인생 최고와 최악의 순간을 모두 경험했다. 빈 심포니엔 그간 세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연주 경험을 쌓은 그녀조차 감지하지 못한 ‘텃세’가 존재했다. 그녀는 오케스트라에 입성해 한동안 ‘여왕’ 대접을 받다가, 어느 날부터 현지인 여성 플루트 부수석의 극심한 텃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면서 결국 재계약을 묻는 단원 투표에서 탈락해 1년 만에 빈 심포니를 떠나야했다. 조용히 지나갈 법도 한 이 일은, 영국의 저명한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빈 심포니의 인종과 성 차별 의혹을 제기하며 음악계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의 일에 대해 말을 아꼈다. “뭐 별수 있나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요. 저와 친한 빈 심포니 친구들은 지금도 이렇게 말해요. 그간 빈 심포니 수석이라 네 음악을 좋아한 게 아니라 빈 심포니 수석 이전에도, 지금도 늘 네 연주를 좋아하고 지켜보고 있다고요.”
최나경은 지금도 빈 인근에서 지내며 솔리스트와 게스트 수석 오케스트라로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빈 심포니에서 나온 후 빈 심포니 시절 친하게 지낸 악장, 비올라 수석, 첼로 수석과 함께 직접 플루트로 편곡한 모차르트 오보에 콰르텟을 연주해 <모차르트 플루트 4중주>라는 음반도 냈고, 지난해엔 빈 심포니 수석들과 함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협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최근 몇 년 사이 프랑스 리옹과 보르도, 독일 카를스루에, 일본과 국내 오케스트라까지 모두 10개가 넘는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자리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제안을 모두 거절한 상태다. 지금이야말로 소속된 악단 없이 온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빈 심포니에 있을 땐 하루가 리허설과 공연으로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지금은 진정 음악을 즐기며 연주하고 있어요. 이따금 여행도 떠나고,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도 하죠. 가끔은 세계적 지휘자 파보 예르비(Paavo Jarvi)에게 ‘호출’을 받아 여러 국제 음악 페스티벌에도 참가하고요.”
최근 최나경은 그간의 눈코 뜰 새 없던 연주 활동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이 진정 내야 하는 목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플루티스트로서 그녀의 꿈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연주 실력이 좋아도 단 한 사람에게 작은 영향도 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간 연주자로 살면서 그 길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렇게 공들여 일궈낸 음악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를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연주를, 예술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니까요.”
그녀는 장르나 청중을 가리기보다 ‘예술’이라는 더 큰 장르 안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마음에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비록 플루트는 피아노나 바이올린보다 레퍼토리도 적고 악기의 발전이 더딘 편이지만,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있고 그 발전의 선두에 그녀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만 보면 그녀는 최고의 오케스트라에 있던 시절보다, 지금 오히려 더 큰 음악인으로 성장해 있는 것 같다. 여성스러우면서도 때론 강하고 매서움을 발산하는 반전이 있는 플루트의 매력. 앞으로도 그 매력을 최나경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스타일 에디터 김지수(kjs@noblesse.com) 사진 이영학 헤어 & 메이크업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의상 협찬 김서룡, 나인 웨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