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아 관장의 컴퓨터 게임 가라사대
넥슨컴퓨터박물관의 최윤아 관장은 원래 미술교육학 전공자다. 컴퓨터는 물론 게임의 ‘ㄱ’ 자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 2년 동안 컴퓨터와 열심히 씨름했고, 결국 컴퓨터 게임의 흑마술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봄, 넥슨은 총 150억 원을 들여 제주도에 아시아 최초의 컴퓨터박물관을 개관한다고 밝혔다. 지하 1층, 지상 3층(2445.68㎡) 규모의 박물관은 그간의 ‘보는’ 전시에서 탈피, 관람객이 직접 전시된 게임기 등을 플레이할 수 있으며 ‘오픈 소스(무상으로 공개하는 소스 코드)’ 개념을 도입해 누구나 쉽게 전시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 유저들은 넥슨의 소식에 모두 열광했다. 하지만 개중 몇몇은 의문을 제기했다. ‘(온라인) 게임 회사가 왜 (컴퓨터) 박물관을 만드는 걸까?’ 또 ‘온라인 게임의 아카이빙(데이터 보존)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하려는 걸까?’ 그리고 ‘이 모든 걸 총괄하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군거렸고, 급기야 박물관이 개관하던 7월 누구보다 먼저 제주도를 찾는 열정을 보였다.
“온라인 게임을 하려면 컴퓨터가 필요하고, 컴퓨터는 인류의 삶을 가장 빠르게 변화시킨 매체입니다. 흔히 대한민국을 IT 강국이라고 하는데, 지금 컴퓨터 관련 박물관을 만들지 않으면 역사를 보존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최윤아 관장은 개관식에서 박물관을 설립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크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디지털 아카이빙이 전무한 대한민국에서 컴퓨터 박물관 운영이 쉽지 않은 일임을 피력했다. 그리고 실체 없는 온라인 게임을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컴퓨터박물관이라며 심심한 관심을 부탁했다.
사실 그녀는 미술계의 인재였다. 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했고, 문화관광부에선 교육사업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또한 여러 미술관에서 교육팀장과 대표 등을 거치며 미술계와 오랫동안 인연을 쌓았다. 그래서 처음 넥슨에서 박물관 관장 자리를 제안했을 때 고민했다. 컴퓨터 게임이라는 테마 공간으로 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살펴보니 게임은 현대미술과 유사한 측면이 많았다. 스토리와 배경이 있고, 캐릭터가 있는 종합 문화 예술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관장을 맡기로 했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갔다. “현대미술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 우리에게 깨달음을 줘요. 원래 예술은 인간이 본능에 따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됐죠. 게임도 이와 비슷해요.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새로운 개념과 공간이 그 속에 있죠. 게임에선 제가 3인칭 관찰자가 될 수도, 1인칭 주인공이 될 수도 있어요. 게임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녀는 87학번이다. 교양 과목이던 ‘MS-DOS’를 대학에서 가장 어려운 수업으로 여기던 바로 그 세대다. 복잡한 명령어를 넣어 고작 ‘가갸거겨고교’ 같은 간단한 글씨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봤지만 사실 그게 전부였다. 당시 그 프로그램들이 대체 어떤 것에 도움이 되는지 몰랐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온라인 아카이빙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제게 물어요. 미술 쪽을 전공했는데, 컴퓨터랑 안 맞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전 미술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미술관학(박물관학)도 공부했어요. 아직 박물관에 관해 서툰 부분도 있지만, 점점 일이 손에 익고 있죠. 사실 저 자신이 기계에 이렇게 흥미를 보이며 감격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1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아시아 최초의 컴퓨터박물관으로 컴퓨터와 게임의 발전사를 전시하고 있으며, 추억의 게임 갤라가(GALAGA)부터 최신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오큘러스 리프트까지 다양한 기기와 게임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2 1층 Special Stage
3 각종 게임기가 전시된 3층 Hidden Stage
올해 그녀의 목표는 넥슨의 인기 게임인 ‘바람의 나라’ 복원이다. 1996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바람의 나라’는 지금도 인기 있는 게임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콘텐츠를 계속 업데이트해 서비스 초기 버전과 비교하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박물관은 오는 4월 넥슨 창립 20주년에 맞춰 ‘바람의 나라’의 원형을 복원,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온라인 아카이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생각이다. “온라인 게임 아카이빙은 유저의 경험을 가장 중요시해요.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죠. 저희는 앞으로 ‘바람의 나라’ 복원 과정을 모든 이들에게 공개할 생각이에요. 그걸로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화의 플랫폼이 완성된다면 박물관의 역할로서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녀는 앞으로 넥슨컴퓨터박물관을 단순히 옛날 기계를 나열하는 공간이 아닌, 관람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넥슨컴퓨터박물관의 매력적인 아카이브를 둘로 나눠 소개했다.
그중 첫 번째는 1972년 출시한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부터 최근에 나온 3D 게임기를 모두 시연할 수 있는 2층의 ‘ncm 라이브러리’이고, 두 번째는 세계 최초의 마우스 ‘엥겔바트 마우스’를 비롯한 초기의 다양한 컴퓨터 기기를 시대별로 만날 수 있는 ‘오픈 수장고’다. “우리같이 온라인 게임이 발달한 나라에서 디지털 아카이빙이 없다는 건 창피한 일이에요.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아카이빙이 그 분야의 힘을 대신한다고 볼 수 있거든요. 앞으로 넥슨컴퓨터박물관이 디지털 아카이빙의 첫 단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넥슨컴퓨터박물관은 매년 39억 원의 운영비를 예상하고 있다. 투입 인력만 20~30명이다. 하루 예상 관람객은 600여 명. 책정된 입장료(성인 1인 8000원 기준)로 계산하면 연간 24억 원의 수익이 나오지만, 소장품 구입비나 기타 운영 비용을 잘 따져보면 매년 16억씩 적자다. “단기적 수익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운영하는 거죠. 또한 우리 박물관은 타깃이 확실히 정해져 있어요. 3040세대에 PC를 갖고 놀던 친구들이 메인이죠. 그들이 자녀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그와 관련된 전문 직종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의 자녀가 이곳에 왔을 때, 최소한 공대에 가기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아무도 공대에 안 가잖아요. 우리나라를 키운 게 바로 그 산업인데 말이죠.” 온라인 게임 강국으로 불리는 한국의 1등 게임 회사가, 컴퓨터는 물론 컴퓨터 게임의 역사까지 조명한다는 점에서 넥슨컴퓨터박물관과 최윤아 관장의 오늘은 조금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문의www.nexoncomputermuseum.org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이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