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최정화를 증명하다

LIFESTYLE

최정화는 지금껏 늘 자신의 직업을 ‘AAA(Always Almost Artist)’라 소개해왔다. 해석하자면 ‘항상 거의 예술가’쯤 되겠다. 그러나 문화역서울 284 개인전을 치른 지금, 그는 작가로서 자신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가져도 되겠다.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지금도 여전히 사회에 ‘짬뽕 미학’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이 시대 꼭 필요한 작가 최정화를 만났다.

문화역서울284 전시장에서 만난 최정화 작가

문화역서울284 광장에 설치한 꽃‘ 의 매일’은 서울역 노숙자와 쪽방촌 사람들이 함께 협업한 작품이다.

문화역서울284 전시에서 소개한 ‘꽃궁’

문화역서울284 전시에서 소개한 ‘꽃의 속도-폐허’

10월 12일 일요일 낮, 44년 만에 서울역 고가도로를 시민에게 개방했다.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준공 행사 당시 테이프 커팅식을 위해 올라간 이후 단 한 번도 보행 공간으로 개방한 적이 없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많은 시민이 찾아 서울역 주변 곳곳을 바라보고 그 귀한 경험과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그런데 그 풍경 한편에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색다른 광경이 있었으니, 문화역서울 284(이하 문화역서울)에서 열린 최정화 작가의 개인전 <총천연색>이다.
총천연색 싸구려 플라스틱 소쿠리는 최정화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번에도 그는 옛 서울역사 광장의 기존 가로등 8개를 중심으로 빨강, 초록 소쿠리를 7m 높이로 번갈아 쌓아 올린 소쿠리탑 ‘꽃의 매일’을 설치해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가 창조하는 플라스틱 신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산업사회의 아이러니한 풍경을 연출한다. 동시에 예술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술이고 우리 모두 예술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정화는 대부분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을 진행할 때 그 지역의 주민과 협업한다. 맞다. 작가의 작업은 분명 사회적 기능도 포함한다. 최정화는 유독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다. 어김없이 이번 서울역 프로젝트도 누군가와 함께했다. 그런데 이번엔 구성이 좀 독특하다. ‘꽃의 매일’을 만든 주인공은 바로 서울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노숙자와 쪽방촌 주민이다.
옛 서울역사의 또 다른 주인이자 소외된 이웃인 노숙자들의 참여를 통해 이 시대 예술이 갖춰야 하는 ‘함께함’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의도를 숨긴, 누가 봐도 무척 최정화스러운 이 아이디어는 물론 최정화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과의 협업은 전시를 보는 관람객에게 전시의 또 다른 중요 포인트가 무엇인지 알려줘요. 공간에 물리성과 사회성이 함께 존재한다는 걸 관람객은 잘 인지하지 못하거든요.”
최정화는 그래서 문화역서울 전시장 내부도 알차게 채웠다. 형형색색 소쿠리를 연결해 만든 조명 ‘알케미’, 황금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여러 캐릭터의 불상 ‘레이디스 앤 젠틀맨’, 갖가지 청소 도구를 모아 꽃꽂이하듯 설치한 ‘청소꽃’, 플라스틱병 뚜껑을 전시장 바닥에 가득 채운 ‘꽃의 만다라’ 그리고 그가 1989년 설립한 가슴시각개발연구소에서 선보인 그야말로 잡다한 소장품 컬렉션과 더불어 미술, 디자인, 공예, 수집 등 문화 예술 전 장르를 어우르는 융합적·복합적 전시를 선보였다. 문화역서울을 찾은 이들은 그동안 멀리서 봐온 난해하고 고고한 현대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총천연색 작품을 ‘하하’, ‘호호’ 즐기며 그 시간을 맘껏 누렸다.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아이콘’이라 불리는 최정화 작가를 만나 국내 최대 규모의 이번 개인전을 통해 증명하려 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여자대학교의 복합 문화 공간을 위한 레노베이션 공사 현장에 설치한 아트 펜스 ‘천개의 문’. 1000개의 문을 활용한 이 프로젝트는 특히 해외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2010년 시드니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숨 쉬는 꽃’. 빨간색 연꽃을 형상화한 가로 12m 규모의 이 작품은 장소에 새로운 공간성을 부여한다.

2012년 홍콩 복합 쇼핑 아트 센터 K11에 설치한 작품 ‘Love Me!’

문화역서울 전시에 대한 반응이 무척 뜨겁습니다. 전시장 곳곳에서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네요. 이번 전시는 대중에게 큰 호평을 받은 것 같은데, 선생님이 보기엔 어떤가요? 다른 미술관과 비교할 때 문화역서울은 마치 ‘섬’ 같은 곳이에요. 단도직입적으로 강남 사람들이 쉽게 안 오잖아요. 사람들은 미술을 갤러리가 모여 있는 삼청동이나 조용한 미술관에 가서 우아하게 즐기지, 서울역까지 오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 전시는 일반 관람객에게 입소문을 좀 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은 걸로 봐서. 사실 제 전시는 원래 미술인 빼고는 다 좋아해요.(웃음)
한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니 약간 낯설어요. 솔직히 저는 대중에게 작가로서 인정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미술계에서도 저를 작가가 아닌 디자이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외국 미술관에서 저를 초대하면 “아, 축하해요” 이러면서 정작 한국에서는 저를 부르지 않죠. 그 때문에 지금까지 제 전시나 제 작품 그리고 저를 제대로 다룬 해석도 많지 않아요. 지명도나 활동에 비해 저를 다룬 텍스트(비평)가 많지 않은 편이죠. 아마 한국에서 자주 놀지 않아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선생님은 지명도에 비해 비주류에 속하는 작가죠. 그런데 잘나간다 싶은 해외 작가 중에도 그런 작가는 많잖아요. 많죠. 그런데 그들은 비주류처럼 보이지만 주류죠. 물론 주류인 것 같지만 비주류인 작가도 많아요. 근데 저는 소위 주류 작가라 하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정받는 그 테두리 안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빠져나오기란 어렵잖아요. 전 그에 비해 언제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서 좋아요.
선생님의 작품에는 근대화를 겪은 한국에 자생적으로 생긴 거리의 문화가 드러나 있습니다. 진짜와 가짜, 작품과 상품,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흩뜨리고 교란시키고 또 그 간극을 즐기는 것이 선생님의 작업인데, 이번 전시에서 지난 수년간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역사 구석구석의 특성을 살린 작품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이었어요. 미술과 인테리어, 영화 무대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하신 저력이 드러난 거겠죠? 아무래도 영향이 있겠죠. 작품과 디스플레이, 인테리어 등이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흐르는 이번 전시는 어떤 작품 한두 개를 나열하기보다 ‘최정화를 전시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전시예요. 제 생각과 신념, 의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흐르고 있죠.
회화과를 졸업하셨는데 지금 하는 작업은 그것에서 많은 부분 벗어나 있습니다. 1986년과 1987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두 번이나 수상하셨는데 그 후 인테리어와 디자인으로 눈을 돌린 이유가 뭔가요?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진 건 서예예요. 거의 미쳐 있었죠. 독학으로 서예를 공부했고, 그것을 통해 조형예술을 배운 것 같아요. 미술을 제대로 알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회화과에 진학했는데, 가보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중앙미술대전에서 2년 연속 수상했다는 건 그래도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그것도 대학 재학 중에 말이죠. 저를 늘 따라다니고 빛나게 해주는 경력이지만 솔직히 부끄러운 의도가 있었어요. 대상을 타면 부상으로 유럽 여행을 보내준다고 해서 출품한 거 거든요. 그 때문에 그 작품은 일러스트레이션이고, 상화죠. 상을 타기 위해 그린 그림.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기 전이니 그 의도가 이해되긴 하지만, 바꿔 말하면 어떻게 그려야 상을 탈지 알고 있었다는 말도 되네요. 그때부터 이미 제도권, 주류 문화에 대해 간파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선택한 비주류 노선은 미술계 안에서 더욱 새로운 시도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졸업하고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죠. 근데 부상으로 유럽에 가서 미술관을 돌아보는데, 너무 답답한 거예요. 미술관 안에 있으니 숨이 막히고 정신이 산만해지는 게, ‘아, 여기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다 정리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미술계에서는 작가로서 행보를 접어둔 것처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989년 설립한 가슴시각개발연구소에서 선생님은 인사동 쌈지길, 서울문화재단, 인사미술공간, 키아프의 VIP 라운지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여러 패션 브랜드의 매장과 레스토랑, 술집 등 그야말로 다양한 공간에 본인만의 개성을 담아 파격적인 공간 구성을 선보였습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는 미술감독으로 참여하셨죠. 무대나 인테리어, 건축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하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모두 독학으로 배운 거예요. 앞서 말했듯 제가 서예에 관심이 많은데 거기서 ‘조형’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제가 하는 모든 일이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독학으로 깨달은 ‘좋은 인테리어’란 뭔가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좋은 인테리어예요. 우선 청소를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청소에 중점을 두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결국 자신의 내면을 보라는 거예요.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부족한 게 바로 그거예요. 꽉 찬 내용이 없고 자신감이 없는 것. 내용이 없으니까 자꾸 겉에 처바르는 거예요. 묵은 때를 벗기고 청소하는 것, 매일 창문을 닦는 것, 그것이 인테리어예요. 화장이 잘 받게 하려면 딥 클렌징이 제일 중요한 것과 똑같아요. 잘 지워야 필요할 때 또 바르죠.

문화역서울284 2층 야외 옥상에 설치한 작품 ‘로보트킹’이 서울역 고가도로와 어우러져 서울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고 있다.

말씀하신 남다른 철학도 선생님의 인테리어를 남다르게 보이게 하지만 그 안에 조명이나 의자, 소파 등 선생님의 작품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것도 공간을 특징화하는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선생님을 디자이너라고 하기도, 연출가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선생님 말씀처럼 작가라고 하기도 모호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요? 보는 시각의 차이겠죠. 난 모든 것이 원래는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이번 서울역 전시 준비를 짧은 시간 안에 흡족하게 해낼 수 있었던 건 그동안 해온 무대 연출, 디스플레이, 인테리어가 모두 각각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분야를 자꾸 쪼개서 분리하고 영역을 나누는 것일 뿐, 사실 ‘생활’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보면 모두 하나예요.
그래서 지난해 리안갤러리 전시에서도 ‘생생활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거군요? 제 생활도 그래요. 작가라면 ‘24시간 아티스트’가 되어야지, ‘출퇴근 아티스트’는 진정한 아티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활과 작업이 다르면 생생활활이 안 되죠.
이상적인 삶을 살고 계시네요. 생활과 예술이 공존하는 것, 그리고 생활하듯 작업하면서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 글쎄요, 그동안 대중에게는 몰라도 평단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은 안 들었어요. 솔직히 저는 일본을 통해 큰 작가예요. 미안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에요.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까지 제가 작품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 건 대부분 일본이지 한국이 아니에요. 이번 서울역 전시에 설치한 대형 비닐 조형물 ‘왕관’, ‘로보트킹’도 모두 그때 만든 작품입니다. 제 작품은 제작비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게 대부분인데 일본에서 아낌없이 지원해줬고, 그래서 여러 대형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파리나 런던 등 유럽에서 오는 러브콜도 대부분 일본의 미술관이나 갤러리, 비엔날레나 트리엔날레에서 보고 연결된 거고요. 그간 한국에서 규모가 큰 개인전을 하지 않아서인지 한국 미술계에서 저를 작가로 인정하길 어려워했죠.
그런 면에서 선생님 전시 중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전인 이번 문화역 서울 전시는 선생님 자신에게나 대중에게 그리고 미술계에 남다른 의미가 있겠네요. 처음으로 작가 최정화를 소개하는 기분이에요. 신진 작가처럼. 지난 20년 넘게 취미 작가였는데, 드디어 전업 작가의 길로 진입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마인드가 바뀐 건가요? 바뀐 건 아니고 깊어진 거죠. 이제 ‘작가적 태도로 작업하는 작가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전시라 관람객도 전시장 곳곳에서 새롭고 다양한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아요. 재래시장의 플라스틱 소쿠리와 잡다한 물건, 진짜 같은 가짜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의 연금술을 보며 ‘쉬운 게 후진 건 아니다’라는 단순 명제도 얻었을 테고요. 물론 서울역 노숙자와 쪽방촌 사람들이 협업한 ‘꽃의 매일’은 작품이 놓인 장소의 특성상 이번 전시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한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문화역서울의 민병직 전시감독과 이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서울역의 고유성, 정치성, 사회성을 생각하다 보니 그분들이 떠올랐고 작업에 참여시키기로 했죠. 제가 전시장에 늘 붙어 있지 못해 나중에 작업 과정에 대해 드문드문 들었는데, 무척 재미있는 일이 많았더라고요. 무엇보다 소쿠리를 쌓는 단순 반복 일에서 비롯되는 종교성을 그분들이 알게 됐죠. 일을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안정된다는 분, 작품이 참 불교적이라는 분, 이 일을 하면서 치료를 받는 것 같다고 하시는 분 등 저를 깜짝 놀라게 한 분이 많았어요.
대형 설치 작업을 할 때 늘 지역 주민과 협업하는 걸 보고 문화역서울 민병직 전시감독이 “이제 최정화 작가는 비둘기하고만 협업하면 돼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어요.(웃음) 하하. 저와 같이 일하는 큐레이터 입장에선 힘들 수 있어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판을 벌리니까. 이번에도 사실은 노숙자들과 협업하고 나서 그분들께 사례를 하고 싶어 방법을 고민하던 중 그 앞에서 돈을 뿌릴까 했어요. 퍼포먼스처럼. 근데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됐죠.
이번 전시장에서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있나요?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이번에 큰 호응을 얻은 건 담벼락에 소주병을 깨서 박은 유리 작품이에요. 어르신들이 오셔서 손주에게 설명을 해주세요. “이건 옛날에 도둑이 담을 못 넘도록 담벼락에 설치한 거란다” 이러면서요. 작품이 스토리가 된 거예요. 이번 전시가 예술사회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거죠.
문화역서울 전시에 이어 11월 11일부터 박여숙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선생님의 작품이 놓인 비행기 활주로, 호수, 광장, 그리고 대규모 미술관과 달리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는데 작품과 공간 구성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갤러리 전시에는 작은 작품이 많이 나와요. 돌로 시작해 나무, 쇠, 유리 그리고 플라스틱으로 마무리하게끔 동선을 구성할 거예요. 한마디로 석기시대부터 플라스틱 시대까지 어우른다고 보시면 됩니다.
내년에는 해외 전시도 많다고 들었어요. 3월에는 온양민속박물관에서 <살리고 살리고> 전시가 예정되어 있고 9월에는 베이징에서, 2016년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두 미술관이 합동으로 움직입니다. 헬싱키미술관에서는 이번 서울역에서 진행한 <총천연색> 전시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자고 요구해왔어요. 그러고 보면 이번 전시가 작가 최정화를 증명해내기에 크게 부족한 전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에디터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