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보다 법정소설
다른 장르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법정소설만의 매력? 바로 불꽃 튀는 공방이다. 잘 짜인 플롯에 긴장감 넘치는 공방까지 다룬 법정소설 세 권.

이따금 특정 직업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마주한다. 그중엔 해당 분야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써서 질타를 받은 작품도 많다. 한데 현직 부장판사가 직접 법정 이야기를 쓴다면? <미스 함무라비>는 서울동부지방법원의 문유석 부장판사가 쓴 법정소설이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분쟁을 그리되, 그걸 판사의 시각으로 써보고 싶었다는 그는 이 작품에서 복잡한 사건을 판결하는 법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판사가 실제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통해 알기 쉽게 들려준다. 판사가 쓴 글이라 지루할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신임 판사 박차오름과 선배 판사 임바른, 부장판사 한세상의 재판 이야기는 이미 지난여름 동명의 TV 드라마로도 제작해 많은 인기를 끌었다. 같은 사건도 어떻게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진실이 달라진다는 사실, 그 때문에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 중립을 지키려는 판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법원의 신뢰성이 갈수록 깨져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일본 소설계에서 ‘반전의 제왕’이라 불리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법정 미스터리 <추억의 야상곡>. 이 작품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그의 전작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는 여느 법정 미스터리의 인물과는 다르게 어두운 과거를 지녔다. 오래전 한 소녀를 죽이고 그 사체를 여기저기 옮기기까지 한 사이코패스. 그런 그는 이름을 바꾸고 변호사가 되어 돈 많고 악질적인 이만 변호하는 ‘괴물’이 된다. 이 작품은 그런 그가 예전의 일을 속죄하기 위해 맡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매력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 때문에 독자는 인물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범죄자와 범죄를 대하는 시선이나 방식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묘사력도 발군. 살인 수법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지식과 추리를 동원하는 과정은 너무도 리얼해 실제로 현장을 직접 경험해보고 쓴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흡입력 강한 법정 미스터리를 찾는 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현직 변호사가 쓴 법정소설이다. 주중엔 판사로, 주말엔 작가로 살며 10여 권의 책을 펴낸 저자 도진기가 지난해 초, 변호사로 독립하기 전에 선보인 작품. 이 책엔 저자의 몇몇 작품에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한 마성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한다. 법정에 나가지 않고 뒷골목의 은밀하고 난해한 사건을 해결해온 그가 이번엔 한 여성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법정에 등장해 추리 공방을 펼친다. 이미 여러 차례 법정추리소설을 출판했고, 전작 <유다의 별>로 추리문학대상까지 수상한 저자이기에, 이 책의 완성도는 이미 검증된 셈이다. 살아 있는 캐릭터, 현상의 이면을 들춰내는 심리 묘사 등 인물들을 눈에 보일 듯,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건 분명 전직 판사, 현직 변호사인 저자이기에 가능한 일일 거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