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의 거장이 빛나는 순간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40년 여정이 담긴 세 권의 책.
추리소설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어두운 틈새를 들여다보는 문학의 한 갈래다. 지난 40년간 이 장르의 정점에서 독보적 궤적을 그려온 인물이 있다.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 명성을 얻은 추리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 주인공. 일본 내 단행본 판매 누계 1억 부 돌파, 30여 개국 버전 번역본 출간, 다수의 작품 영화화 등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화적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성취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작품을 이루는 치밀한 구조 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날카롭게 비추는 그의 통찰이 시간과 국경, 세대를 초월해 꾸준히 독자와 공명해왔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압축해 보여주는 세 권의 책을 통해 그의 문학적 궤적을 좇아보는 건 어떨까. 1985년 발표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방과 후>는 여고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수학 교사 마에시마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으로, 교내 탈의실에서 발생한 동료 교사의 음독 살인 사건의 대상자가 본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심리적 변화를 다룬다. 학교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인물 간 대화와 심리 묘사는 작가로서 문단에 내딛는 첫 작품이었음에도 완성도 있는 서스펜스의 정석을 보여준다. <장미와 나이프>는 본래 <탐정 클럽>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소설로,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꾸준히 회자되어온 숨은 명작이다. 회원제 조사 기관 ‘탐정 클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의 본능과 죄의식, 의심과 배신이 교차하는 사건들은 일련의 심리 게임을 연상시키지만, 그 속에는 역시나 예상치 못한 진실과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이 숨어 있다. 여러 명의 화자가 얽히며 사건의 조각을 맞춰가는 구성으로, 장편 못지않은 완성도와 단편 특유의 응축된 긴장감을 자랑해 히가시노 게이고식 추리 문법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올해 7월,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신작 <가공범>은 불타버린 저택에서 정치인 부부가 변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수사를 맡아 일본 전역을 오가며 집요하게 실마리를 좇던 고다이 형사는 이내 화려한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곧 정체불명의 ‘가공된’ 진실이 얽혀 있음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진실이 결국 여러 겹의 거짓으로 꾸며진 허상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다다르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기상천외한 범죄나 천재적 탐정 캐릭터의 등장과 같은 드라마틱한 요소 없이 짜임새 있는 구성과 몰입감만으로도 일상의 틈새에서 비극을 길어 올리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힘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데뷔작부터 숨은 명작, 그리고 신작에 이르기까지 세 권의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의 궤적을 한눈에 보여준다. 독자를 사로잡는 줄거리, 예상을 뒤엎는 반전 그리고 인간 심리에 대한 간명한 통찰. 추리의 거장이 빛나는 순간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에디터 이호준(hojun@nobless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