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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예가 전용복

ARTNOW

칠예가 전용복이 생을 다할 때까지 그릴 수제는 바람의 소리다

 전용복 
1952년 부산 출생. 1980년 예린칠예연구소를 설립하고, 1986년 한국현대미술전 대상을 수상했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일본 메구로가조엔의 미술품 복원 작업을 총괄했다. 2000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 표창장을 받고,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이와야마 칠예미술관을 운영했다. 최근엔 안성 전용복 칠예연구소에서 작업하며,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바람 소리, 패널에 자개, 옻칠, 182x182cm, 2022.

전용복. 그림 도구 하나 사기 어려운 가난한 집안에서 나고 자라 세계적 옻칠 장인이자 예술가로 자수성가, ‘옻칠의 나라’ 일본을 대표하는 옻칠 문화유산인 대규모 연회장 메구로가조엔(目黒雅叙園, 현 호텔 가조엔 도쿄) 내부 5000여 점의 옻칠 작품을 3년여에 걸쳐 복원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옻칠 박물관인 이와야마 칠예미술관을 개인 자격으로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그는 전통 기법인 옻칠을 활용해 순수 예술품을 창작하는 한편, 이를 현대적 기계와 생활용품에 적용해왔다. 세계 최초로 안과 밖의 패널을 나전과 옻칠로 장식한 엘리베이터를 제작했고, 옻칠로 마감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전기기타 등 악기를 선보였으며, 그가 작은 사각형 다이얼을 옻칠로 장식한 손목시계는 물경 8억 원에 팔렸다. 메구로가조엔 복원을 시작한 1988년 이래 오랜 세월 일본에 머무르며 활동한 칠예가 전용복 선생이 고국에 돌아온 이유는 “세상 둘도 없이 좋은” 옻칠을 알리기 위해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기대로 매일 눈뜰 때마다 설레고 가슴 두근거린다는 그. 큼지막한 가건물 두 채를 각각 전시장과 작업장으로 쓰고 있는 경기도 안성에서 전용복 선생을 만났다.

바람 소리, 패널에 옻칠, 182x182cm, 2022.

메구로가조엔(현 호텔 가조엔 도쿄)의 대연회장 입구.

‘전용복칠예연구소’라고 새긴 새빨간 현판이 인상적입니다. 이곳은 어떻게 마련한 공간입니까? 오래 창작에 몰두해온 사람으로서 예술가의 사회적 영향력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구름 위에 머무를 게 아니라 땅 위에 발을 딛고 대중과 함께 호흡해야죠. 그렇게 만든 것 중 하나가 옻칠 엘리베이터였거든. ‘엘리베이터 공간을 작은 미술관으로 꾸미면 어떨까?’ 생각하고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일본 메구로가조엔을 복원하던 1988년입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나 고국에 돌아와보니 세계적 엘리베이터 제조사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현 티케이엘리베이터)에서 나를 찾아와 옻칠 엘리베이터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이 공간을 쓰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옻칠 엘리베이터 제작은 노하우를 알려주는 쪽에 가깝고, 이곳은 옻칠 작품을 창작하고 전시하는 공간이지요.
자서전 〈한국인 전용복〉에 “내 붓에는 옻칠 외에 다른 것은 묻히지 않겠다”고 쓰셨습니다. 대단한 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옻칠 작업을 하면 할수록, 다른 것을 쓸 이유가 없습디다. 세상 둘도 없이 좋은 재료니까요. 일본 홋카이도에서 9300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옻칠 장신구가 발견되었고, 고구려 벽화나 팔만대장경도 옻칠로 마무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 못할 겁니다. 옻나무 수액을 맨손으로 만졌을 때 옻이 오르는 부작용을 제외하면, 가공을 마친 옻칠에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전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먹을 수 있는 도장재가 옻칠 말고 또 있나요?
손 곳곳에 거뭇하게 옻 오른 자국이 선명합니다. 만년을 견디는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 이쯤이야 견뎌야죠.(웃음)
선생님을 비롯한 옻칠 장인과 예술가들의 노고 덕에 요즘엔 가구와 식기 등 옻칠로 마감한 생활용품을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말 반가운 일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옻칠이라고 나와 있는 제품 중 천연 옻이 아닌 화학 재료를 쓴 것이 눈에 밟히곤 합니다.
옻은 다루기도 까다롭지만, 생산량이 극히 적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5년 자란 옻나무 한 그루에서 채취할 수 있는 수액의 양이 150g에 불과하다고요. 한국과 일본은 내가 옻칠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옻나무 수액 생산량이 분명히 줄었습니다. 약재로도 쓰니 칠에 쓸 것은 더 부족하지요. 하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연간 300톤 이상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품질도 쓸 만합니다. 전 세계 옻칠 장인이 다 쓰고도 남을 양이죠. 어려운 건 재료를 구하는 것이나 비용이 아니라 옻칠을 굳히고, 색을 넣는 방법입니다. 나는 옻칠을 배울 생각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그 비법을 공개합니다. 이 좋은 게 사라지면 안 되니까요.
그 좋은 옻칠의 진가를 알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일본의 영어 표기법 ‘Japan’을 소문자로 쓰면 ‘옻칠(japan)’이라는 보통명사가 됩니다. 세계적으로 일본은 옻칠의 나라죠. 선사시대부터 사용한 옻칠을 대륙을 거쳐 받아들인 후 자신의 문화로 정착시켰습니다. 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세련된 옻칠 공예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구로가조엔 본관 입구의 ‘천마도’를 처음 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완벽한 조선의 나전 기법이었거든요. 메구로가조엔을 처음 지은 1930년대에도, 지금도 일본에 전복 껍데기로만 만든 자개에 옻칠하는 기법은 내가 알기로 없습니다. 내부 연회장에 있는, 사람 키보다 큰 학과 소나무를 나전으로 표현한 ‘송학도’ 역시 조선 나전 장인들의 솜씨가 분명했지요.
옻칠의 나라 일본을 대표하는 옻칠 문화재인 메구로가조엔 복원 작업을 한국인이 총괄했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일본엔 마흔일곱 가지 옻칠 기법이 있습니다. 각각의 기법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이 지역별로 존재하지요. 일본의 오랜 장인은 고집이 있어서 선대부터 이어온 기법 외에는 잘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옻칠 기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 각지를 다녔습니다. 내가 익힌 나전 기법을 먼저 보이고, 그들의 기법을 보여달라 청하는 거죠. 그렇게 3년을 하고 나니 일본 옻칠 기법을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메구로가조엔에 있던 수천 점의 옻칠 작품은 조선의 나전 기법뿐 아니라 일본 각지의 옻칠 기법을 활용해 제작했습디다. 그걸 겉핥기라도 다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죠.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죠. 익히고 복원하는 시간을 합쳐 6년을 메구로가조엔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렇게 옻칠과 관련한 수백 가지 기법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요.
복원 작업을 1991년에 마무리하셨으니 벌써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최근에도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아, 이만큼밖에 못했나’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3년이라는 복원 기간이 턱없이 모자랐지요. 옻칠 복원 작업은 한국인만 해야 한다는 고집 때문에 인력도 부족했고요. 한편으로는 ‘당시 마흔도 안 된 놈이 잘도 해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도 있지만요. 개관식 날 본관 앞 깃대에 걸린 태극기를 본 순간의 감격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메구로가조엔 복원 작업 외에 가장 자랑스러운 작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개별 작품보다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옻칠 박물관인 이와야마 칠예미술관을 7년간 성공적으로 운영한 일이죠. 2000평 규모의 민간 박물관을 별다른 후원 없이 장기간 예술가가 직접 운영한 건 역사상 드문 일일 겁니다. 그때 미술관 전시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창작 작품을 만들었고, 그것이 내 자부심입니다.
그렇게 일본에서 널리 인정받으며 작업하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작업하며 살던 곳 근처에 연어가 알을 낳는 하천이 있었습니다. 새끼 때 떠난 고향을 물살을 거슬러 4년 만에 목숨을 걸고 오는데, 천 마리 중 한 마리 정도 성공한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온 암컷이 알을 낳고 죽으면 그 알에서 태어난 새끼가 어미의 몸을 먹고 넓은 바다로 나갈 힘을 얻지요. 그러면 수컷은 뭘 하나? 화려한 결혼식이 끝나면 암컷이 알을 낳는 동안 물살 위로 머리를 치켜듭니다. 곰과 늑대에게 암컷 대신 자기를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죠. 아름답고도 두려운 자연의 섭리, 정말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그렇게 나도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옻칠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십니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연의 거의 모든 걸 표현해본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내 인생이 다할 때까지 표현할 주제 하나를 정했습니다. 바람 소리입니다.
이곳 작업실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도 참 듣기 좋습니다. 낚시하며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람 없는 곳에서 자란 대나무는 낚싯대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에 구부러지고 다시 꼿꼿이 서기를 수천수만 번 반복해야 휘어도 부러지지 않는 탄성이 생기니까요. 파도와 바람이 세지 않은 곳에서 자란 뱃사람은 크게 되지 못한다고도 합니다. 바로 그런 이치입니다.

전용복 선생이 안과 밖을 나전과 옻칠로 장식한 메구로가조엔의 엘리베이터. 그는 “작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남동 목단가옥에서 열린 〈궁궐 일상〉 전시 전경. 전용복 선생이 옻칠 작업한 가구와 오브제를 선보였다.

바람이 대나무를 키우는 것처럼, 사람도 키우는 것이군요. 살다 보면 맞바람도 맞고, 힘든 일도 해봐야죠. 달리 우리 인생사를 희로애락이라고 하겠습니까. 그걸 가장 잘 나타내는 대상이 갈대입니다. 갈대는 잘 눕지만 바람이 멎으면 반드시 일어납니다. 부러지지 않는 한 누워 있는 갈대는 없지요. 그렇게 갈대에 스치는 바람 소리, 갈대밭에 바람이 흩날릴 때 나는 소리가 모두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바람 소리를 갈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는 서정주 시인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어릴 적 지독하게 가난했습니다. 당시 유명한 추상화가로 활동하던 외삼촌의 핏줄 때문인지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스케치북 하나 살 엄두를 못 낼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리고, 멀리뛰기하는 모래판에 손가락으로 그리고 다시 지우고…. 그때 그린 게 바다의 파도, 별의 운행 같은 것이었습니다. 열 살도 안 된 꼬마가 어찌 그런 걸 그렸는지.(웃음)
모랫바닥에 그림 그리던 가난한 소년이 세계적 칠예가로 성장하는 데 모진 바람이 필요했겠군요. 제자도 많이 길러내셨죠. 지금도 옻칠이라는 재료에 목말라하는 예술가가 전 세계에 많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옻칠을 알릴 방법을 늘 찾아왔죠. 이번 가을 학기부터 미국 미주리에 있는 미드웨스트 대학교에서 옻칠을 가르칩니다. 학생을 위한 강의 프로그램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위한 마스터클래스도 열 겁니다. 올 하반기 중 한 건강 보조 기기 업체의 도움으로 경기도 용인에 새로운 전시장을 만들 계획도 있어요. 2500평 규모로 세계 최대 옻칠 전시장이 될 겁니다. 바람 소리도 들리고, 가을 무렵 갈대밭 냄새도 나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전시장으로 꾸미려 합니다. 정말 신나는 일이죠. 매일 설렘 때문에 잠을 설칩니다.
그런 에너지가 늘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전통을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건 절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것이 진정 전통을 잇는 방법이에요. 우리는 한복을 이야기할 때 조선 후기의 복식을 떠올리죠. 하지만 삼국시대, 고려시대 한복은 한복이 아닌가요? 지금 나오는 생활한복,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죠. 하지만 지금 입고 생활하기에는 전통 한복보다 훨씬 편하잖아요. 아름답고, 그렇지 않은 건 그다음 문제입니다. 그런 시도가 더 많아야 하고, 사람들이 그걸 경험하고,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시대에 맞는 한복을 완성할 수 있겠죠. 옻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에 맞춰 바뀌고, 적용의 폭을 넓혀야 해요.
전통 공예의 맥을 잇는 장인들과 달리 선생님은 한복을 입지 않는다고요. 외국에서 전시할 때는 한복을 입어요.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으로 오해받기 싫어서. 그런데 한복이 작업할 때 입긴 불편하잖아요. 진정 현대적인 한복이 나오면 그걸 입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나는 현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가장 작업하기 좋은 옷을 입겠다는 거죠.
전통 기법을 익히되, 현대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말씀이겠지요. 그렇죠. 옻칠은 재료로서 완벽하고, 그걸 활용하는 기법도 이미 다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다만 그걸 현대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거죠. 나는 옻칠로 손목시계를 만들었고, 바이올린, 전기기타와 엘리베이터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옻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거죠.
장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지금 어떤 단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벌여놓은 걸 정리해야죠. 앞서 말한 것처럼 주제는 바람 소리로 정했고, 그 밖에는 옻칠 기법을 널리 알릴 겁니다. 그러기 위해 학생 가르치러 미국도 가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작업을 위해 계속 연구하는 거죠. 나전 기법에 쓰는 자개라는 게 뭔가요? 전복과 조개, 굴 껍데기죠. 어떻게 보면 먹고 남은 쓰레기예요. 그걸 가공해 예술품을 만드는 거죠. 우리 민족이 굉장히 지혜로워요. 나무에서 뽑아낸 수액과 먹고 버리는 쓰레기로 만년 가는 예술품을 만들어냈죠. 그걸 남겨야죠. 나는 교육자 같은 것 할 생각 없어요. 그저 창작하는 동료 예술가로서 내가 아는 걸 나누고 싶은 거죠.
끊임없이 배우며 정진해오셨죠. 요즘 새롭게 배우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영어!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티스트와 대화하려면 영어를 해야죠. 선생이랍시고 앞에 나서는데 낯부끄럽게 통역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민희기, 호텔 가조엔 도쿄, 목단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