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 밖으로 나온 패션
침실에서나 입을 법한 옷이 올봄 런웨이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속옷 같다’ 혹은 ‘야하다’는 오명은 이제 옛말이 됐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일상의 옷을 하이패션으로 승격시킬 줄 안다. 사실 객기와 창의성은 한 끗 차이로 결정되는데, 2018년 S/S 시즌, 디자이너들은 창의성의 해답을 침실에서 입는 옷, 잠옷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남자들이 생각하는 풍만한 가슴, 터질 것 같은 엉덩이, 탄력 있는 허벅지가 여자들이 진정 원하는 여성성이 아님을 알고 있다. 단지 편안하고 세련된 스타일링, 여기에 자연스러운 노출을 가미한 의상으로 여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일명 침실 패션이다.
취향에 따라 침실에서 입는 옷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 주자는 남성을 유혹하는 일순위 아이템이자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상업적으로 승화시킨 슬립 드레스! 이번 시즌 슬립 드레스는 주소재인 실크와 레이스를 필두로 과감한 컬러 매치와 비즈, 패치워크, 러플 등의 디테일을 더해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다. 레드와 블랙의 대담한 컬러 매치로 현대 여성의 당당함을 보여준 랄프 로렌, 애플 그린 컬러의 실크 슬립 드레스에 매트릭스 선글라스를 스타일링해 퓨처리즘 모드로 분한 아크네 스튜디오, 1980년대 뉴욕을 거니는 록 시크 무드의 반항적인 여인이 떠오른 코치 1941이 대표적이며,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이비드 힉스를 뮤즈로 택한 토리 버치는 지오메트릭 모티브를 패치워크한 오렌지 컬러의 개성 있는 슬립 드레스를 제안했다. 이토록 매력적인 슬립 드레스를 입으려면 소재의 특성상 스킨에 찰싹 달라붙기 때문에, 보디와 허리를 타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선이 가냘퍼야 그 매력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올봄 다이어트는 필수일 듯!
한편 겉으로 드러나선 안 되는 속바지가 치마 밖으로 보이는 것 역시 침실 패션을 관통하는 트렌드다. 루이 비통은 자카드 소재의 프록코트에 박서의 운동복을 연상시키는 실키한 쇼츠를 매치했고,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아찔한 샤 드레스 너머로 여성의 전유물인 속바지를 노출하며 신선한 스타일링을 보여줬다. 이 밖에 레이스 블라우스와 블루 실크 속바지의 만남으로 아찔한 란제리 룩을 보여준 크리스토퍼 케인까지! 여성성을 지켜주는 아이템이자 보온을 위해 탄생한 속바지도 패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
여기에 더해, 속옷으로 자주 활용하는 화이트 톱이 여러 디자이너의 쇼에 모습을 비쳤다. 그 모습도 각양각색! 꼬임 디테일과 커팅이 특징인 긴 화이트 톱을 선보인 알렉산더 왕, 방수 처리한 나일론 스커트와 팝아트 무드의 화이트 톱을 매치한 캘빈클라인 컬렉션, 발레리나를 뮤즈로 택해 블랙 뷔스티에를 매치한 화이트 톱에 튈 스커트를 스타일링한 몽클레르 감므 루즈, 1980년대부터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아우르며 시대를 크로스오버한 소녀들의 착장에 화이트 톱을 다방면으로 레이어링한 미우 미우가 좋은 예가 될 듯.
여성들이여! 침실에서 온 스타일이라고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부끄러워하지 말자. 아무리 유행이라도 도전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다. 올봄 자연스럽게 노출을 가미한 관능적인 아이템이 당신의 선택을 기다린다.
에디터 정순영(jsy@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