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비센스에서의 여름휴가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지구. 가우디의 첫 번째 주택 ‘카사 비센스’가 오랜 기간의 복원 끝에 대중 앞에 그 모습을 공개했다.

카사 비센스의 입구 전경.
그동안 컨템퍼러리 아트 신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자 파리, 런던, 독일의 주요 도시를 주로 다니며 눈과 마음의 호사를 누려온 것에 비해 이번 스페인 여행의 시작은 다소 엉뚱했다. 어느 날 미슐랭 3스타를 독보적으로 유지해온 엘불리의 헤드 셰프 페란 아드리아의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바르셀로나를 검색하다 우연히 카사 비센스(Casa Vicens)의 소식을 접하게 된 것. 카탈란 모더니즘(Catalan modernism)을 대표하는 거장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는 건축학교에 다니던 1883년 금융가 마누엘 비센스(Manuel Vicens)에게 부부가 머물 수 있는 여름 별장 건축을 의뢰받는데, 그 작품이 바로 카사 비센스다. 스페인의 독보적 관광자원인 가우디의 건축 중에서도 기존 건축과 확연히 다른 카사 비센스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나는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지상층의 공용 공간.
카사 비센스는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지구의 카롤리나스 거리에 있다. 밋밋한 주택 사이에 위치한 다채로운 색의 이 건물은 가우디의 여타 건축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지중해의 태양만큼이나 강렬했다. 가우디의 주택 프로젝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엘 저택(Palau Guell),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카사 밀라(Casa Mila)와 달리 카사 비센스는 지금껏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다. 2017년 11월에 지난 3년간의 복원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그제야 대중에게 처음 오픈했는데, 복원 팀은 남아 있는 가우디의 건축 도면과 가이드 그리고 비센스 부부가 거주 당시 찍은 실내·외 사진 등 열악한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 작업에 임했으며, 일부는 여전히 복원 중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우디의 모든 ‘집(casa)’에선 통상적인 모더니즘과 달리 완벽하게 차별화되는 가우디만의 건축양식이 묻어난다. 그러나 카사 비센스는 가우디의 주요 스타일이 정립되기 전 이슬람, 르네상스, 로마네스크, 비잔틴 등 동양 문화를 흡수하며 과감하게 실험한 첫 번째 주택 작업이기에 그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1 이슬람 양식의 흡연실. 2 기하학적인 벽돌의 현관 입구.
19세기에 그라시아 지구는 도시 성곽 밖 한적한 근교, 신흥 부르주아들이 화려한 전원생활을 누리던 곳이다. 20세기 초에 극심한 인구밀도를 해소하기 위해 근교 지역을 도시로 편입하면서 그라시아 지구도 신흥 부르주아의 주거 중심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부르주아들은 주택 건축을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젊은 건축가에게 건축을 의뢰하고 그 결과물을 서로 비교하는 등 집에 대한 경쟁이 나름 치열했는데 카사 비센스는 그라시아 지구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주목받는 건축물로 언론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지금은 다른 건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택을 마주한 마당의 분수에는 당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미려한 조각이 반복되는 포물선형으로 장식되어 있어 규모 또한 단연 돋보였음을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구조는 이 집이 빛과 바람과 물의 3가지 요소를 중요하게 다루고, 회화와 조각의 방식으로 장식의 개념을 그 누구보다 창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걸 짐작케 한다.

2층 상설전시 전경. 카사 비센스의 변천사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카사 비센스는 건축의 정의 또한 재치 있게 뒤집는다. 바깥 정원에 어울릴 법한 자연 요소를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게 집 안으로 들인 점이 그렇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지상층과 침실, 욕실, 드레싱 룸의 사적인 공간 천장에는 구역별로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잎사귀와 아이비를 겹겹이 조각해 마치 울창한 숲을 실내로 들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모든 벽의 윗부분에는 목판에 갖가지 식물을 새겨놓았는데, 특히 침실 옆방에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시계초(passion flower)를 담백한 민트색으로 새긴 것으로 보아 가우디의 신앙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로마 시대에 실외 아케이드에 사용하던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을 실내 벽면에 활용한 가우디는 반대로, 내부 벽면을 장식하는 데 쓰던 세라믹 타일을 주택 외벽에 사용했다. 타일을 수직으로 포개서 사용해 선과 면이 더욱 강조되고, 이러한 기하학적 대비는 카사 비센스를 더욱 활기차고 유쾌하게 만든다.
이 집에서 가장 특별하고 몽환적인 공간은 무데하르 양식이 돋보이는 흡연실과 발코니다. 타일에 러프하게 그린 황금색 금송화와 모서리가 잘게 조각된 벽돌의 패턴이 무데하르 양식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무엇보다 코발트블루 컬러로 섬세하게 덧댄 벌집 구조의 둥근 천장과 코란을 인용한 문장이 적힌 등불은 이슬람 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대표적 공간이다. 당시 물담배를 피우며 이슬람 문화를 드라마틱하게 향유하던 비센스의 낭만과 재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카사 비센스를 확장하면서 재건축한 모던한 계단 전경.
발코니의 차양은 수평과 수직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교차되어 완벽한 채광을 자랑한다. 테라스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는 카사 비센스가 왜 최고의 여름휴가지로 꼽히는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나아가 당시 주변에서 수도 시설을 갖춘 변기가 있는 유일한 집이었다고 하니 가우디가 장식성뿐 아니라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부분까지 고려해 이 주택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잘 지은 하나의 건축물은 고유하고 귀한 도시의 자산이 된다. 혼성 건축에 일조한 가우디는 다양한 문화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공존하는 그의 초기 작품, 카사 비센스를 통해 지금도 여전히 관광객에게 빛과 색채의 유희를 전달한다. 가우디의 놀라운 상상력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꿈꾸지 못한 것으로, 올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비센스의 여름 별장을 방문해 카탈루냐의 다채로운 계절을 맛보기를 희망한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추성아(독립 큐레이터) 사진 제공 카사 비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