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퍼러리 리스본
포르투갈의 하늘을 닮은 타일 장식과 현란한 그라피티, 바다와 함께 즐기는 아트 페어 그리고 아티스트의 영감을 자극하는 옛 거장의 흔적까지, 우리가 지금 리스본에 가야 하는 이유.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푸른 타일 장식, 아줄레주
7개의 언덕과 트램,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 금빛 석회석으로 만든 옛 건물들. 자, 당신은 어떤 도시가 떠오르는가? 어쩌면 당신은 로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지닌 유럽의 또 다른 도시가 바로 리스본이다. 그리고 지금 리스본은 대항해 시대에 대한 향수와 20세기 카네이션 혁명(포르투갈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군사 쿠데타로 자국에서는 ‘4월 25일 혁명’이라고 부른다)의 흔적 위에 새로운 리스본을 만들고 있다. 아직 런던이나 파리, 로마 등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오늘날 더욱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도시다. 무엇보다 최근 리스본 안팎을 재조명하는 예술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오랜 시간 이어온 과거의 유산 위에 현대적 감각의 문화 예술을 쌓아 올린 컨템퍼러리 리스본.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이 도시를 이제 직접 걸어볼 시간이다.
아줄레주 그리고 그라피티
포르투갈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마치 리스본의 하늘이나 자연풍경의 일부를 안료로 사용한 듯 푸르디푸른 타일 장식이다. 옛 건물들의 벽면을 장식한 아줄레주(azulejo)는 주석 유약을 발라 구운 도자기 타일인데, 포르투갈에서는 거대한 타일 벽면에 주로 성화나 역사화 등을 그려 넣는다. 색색의 타일로 만든 여러 가지 패턴의 벽이나 장식 역시 건물 안팎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리스본의 국립 아줄레주 박물관(Museu Nacional do Azulejo)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전의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35m가 족히 넘는 대형 아줄레주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아줄레주와 더불어 리스본 곳곳에서는 미국 뉴욕과 LA, 영국 런던에나 있을 법하면서도 여타 대도시의 그것과는 또 다른 감각의 그라피티를 만날 수 있다. 금빛 석회암과 푸른 아줄레주 사이사이로 다양한 그라피티를 찾아보는 것도 리스본의 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수년 전에만 해도 방치된 건물들이 휑하니 서 있던 아폴로니아 역 근처 샤브레가스 지역에는 리스본 시에서 그라피티 아티스트를 육성하기 위해 그라피티 지정 구역을 따로 마련했을 정도다. 샤브레가스는 저렴한 렌트 비용으로 넓은 갤러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리스본의 대표적 지역으로, 뉴욕의 아머리 쇼나 파리의 FIAC 등 세계적 아트 페어에 참여하는 컨템퍼러리 갤러리 필로메나 소아르스(Galeria Filomena Soares)가 자리 잡았다. 그 밖에 문화 예술 공간 LX 팩토리(LX Factory)가 위치한 알칸타라에도 그라피티 지정 구역이 있어, 유럽 각지의 그라피티 작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곤 한다. 리스본에서 활동하는 대표적 그라피티 아티스트로는 ‘빌스(Vhils)’라고 알려진 알레샨드르 파르투(Alexandre Farto)와 쌍둥이 형제 작가 하우 & 노슴(How & Nosm) 등이 있다.
이스토릴 해변과 아트 페어
해마다 12월이면 미국 동부의 컬렉터들이 추위를 피해 평균 4시간의 비행시간을 들여 찾는 아트 마이애미(Art Miami), 뉴욕의 대표적 휴가지 햄프턴에서 열리는 아트 햄프턴(ArtHamptons),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리는 아트오라마(Art-O-Rama). 이들 아트 페어의 공통점은 동시대의 다양한 예술 작품과 더불어 뜨거운 태양과 바다를 덤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 대열에 새로 합류한 아트 페어가 리스본 근교 이스토릴 해변에서 열리는 이스트 아트 페어(Est Art Fair)다. 2013년 포르투갈이 국제적 컨템퍼러리 아트 쇼 런칭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발표해 올해 첫 행사를 개최했는데, 앞으로 매년 7월 세계 각지의 컬렉터와 예술가에게 색다른 만남의 장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남미를 연상시키는 리스본의 뜨거운 여름은 물론 다른 페어에서는 만나기 힘든 브라질 등 남미의 갤러리 부스와 라틴계 컬렉터를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아직 유럽에 비해 북미 갤러리의 참여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앨런 세큘러와 이니고 망글라노 오바예, 퉁가 등 탄탄한 작가군을 갖춘 미국 샌타모니카의 크리스토퍼 그라임스 갤러리(Christopher Grimes Gallery)가 올해 아트 페어에 참여했다.
리스본에서 가장 번화한 장소 중 하나인 호시우 광장

골목 구석구석을 가로지르는 트램

올해 이스트 아트 페어에서 선보인 작품들

아폴로니아 역 근처 그라피티로 뒤덮인 건물
페르난두 페소아
2000년대 말,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는 너비 9m, 높이 3m, 두께 20cm의 스틸 작품을 완성한 뒤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라는 제목을 붙였다. 단순한 작품명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사실 페르난두 페소아는 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난 명망 높은 철학가이자 시인이다. 페소아의 흔적은 리스본 번화가인 시아두 역 주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붐비는 쇼핑객 때문에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카페 아 브라질레이라(Café a Brasileira)’ 앞에는 중절모를 쓰고 슈트 차림으로 앉아 있는 그의 브론즈 동상이 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생전 거장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라고 밝힌 ‘카페 마르티뉴 다 아르카다 (Café Martinho da Arcada)’도 찾을 수 있다. 한편,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 리처드 세라의 ‘페르난두 페소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작품은 슬픔을 부정하지 않는다. 힘내라고 말하지도 않고, 인생의 밝은 면을 보라고 하지도 않는다. (중략) 슬픔에 침잠하라고 한다.” 실제로 세라의 작품은 “여러 항구로 떠나는 수많은 배들, 그러나 단 한 척도 고통 없는 삶으로 가지 않는다”는 페소아의 글을 떠올리게 한다.
에디터 류현경
글· 사진 이재이(미디어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