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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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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의 시대를 맞이한 30~40대에게 건네는 조언.

40대 후반의 직장인 L씨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고자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지 4개월째다. 그는 첫 수업에 참석하고 놀랐다. 주경야독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듣고 있다니! 동기들은 거의 30~40대 회사원이었다. 프로그래밍 기초부터 가르치는 이 과정은 파이썬(Python, 오픈소스 프로그래밍 언어 중 하나) 이후까지 다양하게 알려주며 최근엔 인공지능을 위한 딥 러닝 과정까지 개설했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8주 코스이며 과목당 수강료는 100만 원 수준으로 비싼 편이다. L씨가 이 과목을 배우는 건 전문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순수한 취미도 아니다. 다만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회사에서 지원하는 교육비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것이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30~40대의 목표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다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는 빠르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한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석사나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사람도 많다. 여기에 실무 경력도 최소 몇 년은 필요하니 프로그래머 한 명이 탄생하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35세의 일반 회사원이 학원에 다녀 현직 프로그래머의 수준을 따라잡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천부적 재능이란 예외적 경우가 있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이 세계에 입문했을 것이다. 30~40대에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의 목표가 전문 프로그래머라면 곤란하다. 전문적 프로그래머가 될 수 없다면 프로그래밍을 왜 배워야 할까? 무엇을 목표로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할까? 이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게 필요하긴 한 걸까? 30~40대가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먼 훗날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맡아서 하는 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다. 전문 프로그래머는 될 수 없지만 30~40대가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1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개발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세상이 바뀌어 이제 회사의 모든 일이 PC나 모바일에 연결되어 있다. 꼭 IT 기업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회사가 돌아가는 그룹웨어니, 회계, ERP, 데이터베이스, 판매, 홍보 페이지 등 회사가 하는 기존 사업에서 신규 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프로그래밍과 연관되어 있다. 프로그래밍을 모른다면 이러한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맡은 프로젝트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2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낼 수 있다
대부분의 개발 프로젝트는 개발 완료 예정일보다 미뤄지게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이 뒤로 밀리는 경우도 많지만, 프로그래밍을 모르는 기획자나 관리자가 개발 기획이나 일정 자체를 무리하게 계획했을 때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프로젝트에서 문제점은 기획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고, 기획이 자주 변경되거나 리소스(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가 부족해서, 리소스의 개발 역량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는데,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면 어떤 문제점 때문에 프로젝트가 지연되는지 명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우선 문제점을 알아야 해결책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3 개발자에 대한 선구안이 생긴다
비슷한 스펙과 경력의 프로그래머라도 프로그래밍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프로그래밍을 모를 때는 어떤 프로그래머가 잘하는지 알 수 없는데, 누구를 쓰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축구에서 호나우두 같은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에 의해 경기에서 이기기도 하는 것처럼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올리며, 반대로 실력 없는 프로그래머는 오픈소스나 Ctl-C, Ctl-V 하면서 치명적 버그를 생산한다. 본인이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만큼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하더라도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소스만 까봐도 누가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인지 알 수 있다. 훌륭한 프로그래머는 주석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특히 함수를 잘 쓴다. 그 정도만 알아볼 수 있어도 성공이다. 이런 선구안이 생기면 회사 내 프로젝트뿐 아니라 회사에서 프로그래머 채용 시, 외주 개발사 선정 시 그리고 회사를 나가 스타트업을 차릴 때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4 프로그래머를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나 외주 개발사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면 십중팔구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직원이 프알못(프로그래밍 알지 못함)인 경우다. 프로그래머들은 프알못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시하는 관리자의 말을 잘 들을 리 없다. 관리자가 뭘 알아야 프로그래머에게 무엇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든가 안 되면 안 되는 부분에 대해 혼내든가 할 텐데, 뭘 모르니 쪼는 것은 일정뿐이다. 그렇게 되면 관리가 안 되니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게 되고, 결국 그 책임은 관리자가 지게 된다. 프로그래머 중에는 심지어 프로그래밍을 모르는 사람과 말조차 안 섞는 사람도 종종 있을 정도다. 최소한 프로그래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5 경영진을 수월하게 설득할 수 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절반은 상급자나 경영진을 설득하는 것이다. 특히 30~40대는 빠릿하게 시키는 일 하면서 뛰어다니는 주니어가 아니기에 임원이나 사장을 설득해 자신의 신규 사업을 런칭하고 성공시켜야 인정도 받고 진급도 한다. 즉 성과로 말하는 연차라는 말이다. 경영진을 설득해야 회사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일의 예산을 받을 수 있다. 이제 경영진에게 신규 사업을 프레젠테이션하기 위해 자료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해외 자료를 찾아 세계시장의 상황을 먼저 정리하고 국내 시장 상황과 경쟁 구도, SWOT,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사업의 개념도 등을 장표로 만들 것이다. 이걸로 충분한가? 아무리 프레젠테이션 말발이 좋아도 이런 프레젠테이션을 들은 경영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왜? 흔히 말하는 탠저블(tangible, 손에 잡힐 듯이 구체적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막연하게 사업이 좋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시스템 구성도를 토대로 사실적으로 구현되는 시스템을 보여줄 수 있으며, 실력이 좀 된다면 간단한 데모를 만들어 보여줄 수도 있다. 설득력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 먼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다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등 많은 최신 키워드가 미래에 나의 직업이 위태롭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프로그래밍을 배워볼까’인데, 이는 잘못 생각한 것이다. 프로그래머 자체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직업의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30~40대의 프로그래밍 배우기는 인공지능에 의해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10~20년 뒤의 세상에 필요해서가 아니다. 당장 내년 프로젝트의 성과와 진급, 이직을 위해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은 뭔가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기 힘든, ‘사람을 관리’하는 그런 업이다. 그러한 직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지금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문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김석기(동양대학교 교수)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