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콘과 너드 컬처
많은 뉴요커가 열광하지만 뉴욕 바깥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문화.

뉴욕 코믹콘이 열리는 재비츠 센터 입구.
뉴욕의 문화라고 하면 모마의 전시, 링컨센터의 공연, 첼시에 밀집한 갤러리나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의외로 뉴요커의 높은 안목을 사로잡고도 그동안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가 있다. 이를테면 카페에서 즐기는 보드게임, 만화와 판타지 소설, 슈퍼히어로 피겨 수집, 컴퓨터 게임 등 소위 ‘너드 문화(nerd culture)’다.
‘괴짜, 얼간이, 모범생’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 ‘너드’는 지능이 높고 몰입을 잘하나 사회성은 살짝 떨어지는 사람을 말한다. 똑똑하고 집중력이 뛰어나 놀라운 성취를 이루기도 하는 너드의 대표주자로 빌 게이츠가 있다. 그동안 대중은 무한한 상상력에 기반한 만화, 판타지 소설, 게임 등에 열광하는 너드의 취향을 마니아적 속성이 강한 하위문화로 간주했다. 하지만 최근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세계적 인기를 끄는 것처럼 관련 콘텐츠가 다양한 매체로 전파, 이제는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당당한 주류 문화로 대접받고 있다.

1 코스플레이에 참여해 축제 분위기를 띄우는 코스어들.
2 슈퍼 마리오 복장을 입은 어린 코스플레이 참가자들.
미국 전역에서 열리는 코믹콘의 인기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한 해에 미국에서 열리는 코믹콘의 수만 해도 50개가 넘을 정도다. 초기 코믹콘은 만화를 사랑하는 팬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행사였지만,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 게임 같은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축제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코믹콘은 해마다 7월에 열리는 ‘코믹콘 인터내셔널: 샌디에이고(Comic-Con International: San Diego)’지만, 어느새 ‘뉴욕 코믹콘(New York ComicCon, NYCC)’이 그 명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뉴욕은 마블과 DC코믹스가 탄생한 도시 아닌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이런 너드 문화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NYCC가 오는 10월 4일부터 7일까지 뉴욕 재비츠 센터(Javits Center)에서 열린다.
NYCC는 메인 전시장, 유명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아티스트 앨리(Artist Alley), 관람객이 참여하는 코스플레이, 상품 판매 부스, 유명인과 배우, 예술가를 게스트로 초청하는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다. 올해는 처음으로 일본의 대중문화에 초점을 맞춘 아니메 페스트(Anime Fest)도 열린다. 메인 전시장인 재비츠 센터를 중심으로 뉴욕 공공 도서관, 링컨센터, 매디슨 스퀘어 가든 등 곳곳에서 다채로운 이벤트를 펼친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행사인 만큼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와 주요 방송사도 차기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거대한 스크린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마련하는 코믹콘에서 유명 배우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드라마 <워킹데드>와 <왕좌의 게임>, 마블이 제작한 영화 등에 출연하는 배우진은 NYCC의 단골이다. 올해는 영화 <아쿠아맨>의 주인공 제이슨 모모아, 드라마 <로이스 앤 클라크>의 주인공 딘 케인과 테리 해처 등이 게스트로 참여해 관객을 가까이 만난다. 각 게스트의 프로그램 스케줄은 홈페이지(www.newyorkcomicco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 순수 미술 아카데미에서 선보인 카우스의 작품.
하지만 게스트와 주최 측이 다가 아니다. NYCC의 진정한 주인공인 입장객 또한 단순한 구경꾼으로 머물지 않는다. 많은 코스어가 직접 제작한 코스튬을 입고 코스플레이에 참여해 축제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할리우드 특수 분장 팀 솜씨라 해도 믿을 만한 정교한 코스튬이 있는가 하면, 두꺼운 종이를 대충 잘라 만든 허술한 복장도 눈에 띈다. 하지만 상관없다. 캐릭터를 재현하기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말이다. 또 이들은 열성적인 컬렉터이기도 하다. 피겨나 티셔츠, 오래된 만화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부스는 희귀한 아이템을 찾는 인파로 항상 북적인다. 이들은 원하는 아이템을 구할 수만 있다면 세계 어디든 찾아가는 마니아다. 코믹콘에선 최근 몇 년 새 급성장한 아트 토이 상품도 만날 수 있는데, 캐릭터 작가 카우스(Kaws)의 피겨가 좋은 예다. X 형태의 눈을 지닌, 미키마우스를 연상시키는 그의 피겨는 코믹콘에서 언제나 인기를 끈다. 2013년엔 펜실베이니아 순수 미술 아카데미도 NYCC 기간에 카우스의 전시를 열 정도로 NYCC에서 카우스의 인기는 높다. 유니클로와 협업하는 등 피겨와 예술 작품을 넘나들며 고유의 마켓을 확보해나가는 그의 행보가 인상적이다.

뉴욕 코믹콘에 참가해 드로잉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들.
코믹콘이 대변하는 너드 문화의 대중적 인기 요인은 다양한 문화를 대면하는 사람들의 열린 자세에 있다. 이곳에선 만화가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거나 어른이 무슨 장난감을 사느냐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이런 문화를 창의적이고 독특한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는 부모 세대의 향수와 자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화 상품이라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다. 조부모와 부모, 자녀가 영화관을 찾아 1977년부터 40여 년에 걸쳐 이어진 <스타워즈> 시리즈를 함께 관람하는 것처럼 올해 NYCC도 세대를 뛰어넘는 입장객을 모을 것이다. 만화적 상상력을 집약한 NYCC의 가장 큰 힘은 여기에 있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글 황진영(Jin Coleman Art Advisory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