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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튀르와 건축적 정서, 그 매력적인 만남

LIFESTYLE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포함한 건축상을 휩쓸고 뉴욕의 LVMH 타워,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같은 유명 건축물을 지은 세계적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르잠파르크(Christian de Portzamparc). 프랑스에서는 도시 미학이나 건축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조차 그의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1970~1980년대에 재개발한 베르시(Bercy) 지구나 음악의 전당(Cite′ de la Musique)을 포함해 고풍스러운 파리 풍경에 모던함을 더해준 굵직한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이니 말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그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 디올의 만남은 그래서 별로 낯설지 않다.
포르잠파르크와 디올. 솔직히 고백하면, 처음엔 그저 건축가와 창립자가 크리스티앙이라는 이름을 공유한다는 단순한 공통점밖에 찾지 못했다. 크리스티앙 자체가 워낙 흔한 프랑스 남자 이름이 아니던가. 하지만 인터뷰를 준비하며 접한 포르잠파르크의 프로필에서 무슈 디올의 전설적 행보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더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쿠튀르의 거장 무슈 디올이 지금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볼륨감 있는 실루엣을 남겼다면, 포르잠파르크는 ‘도시 지형에 가져온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은 조소적 형태감을 지닌 건물을 남겼다. 무슈 디올이 오늘날 완연한 ‘코드’로 통하는 뉴룩(new look)을 창시했다면 포르잠파르크는 새로운 건축 언어 ‘제3의 도시-열린 블록(open block)’를 제안했다.
포르잠파르크를 대표하는 그 특유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폴레옹 3세의 의뢰를 받은 오스만(Haussmann) 남작이 1850년대에 주도한, 오늘날 전 세계의 관광객을 매혹하는 파리의 밑그림인 ‘파리 개조 사업’. 에펠탑만큼 랜드마크의 기능을 톡톡히 해내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대로를 따라 빈틈없이 정열해 있는 것도, 각 건물이 안쪽에 자리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뒷건물과 연결되도록 ㅁ자 모양으로 완성한 것도 모두 그 시절의 일이다. 오랫동안 유럽 도시 계획의 정석처럼 여겨온 이 오스만 양식에 반기를 들고 나선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 태동한 모더니즘 건축 운동이다.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Wade Zimmerman

뉴욕 미드타운에 위치한 초고층 주상복합 ‘One 57’. 떨어지는 폭포수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외관의 조형성이 돋보인다. 참고로 ‘One 57’의 가장 큰 레지던스는 약 900억 원에 매매되었다고.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LVMH 타워. 아르데코 양식의 이 건물은 1999년 24층 규모로 지었다.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필두로 한 근대건축가들은 실용성을 앞세운 외관에, 오스만 양식과는 정반대로 자유롭게 배치한 건물을 탄생시켰다. 단일 건물로는 고유의 가치를 발한 모더니즘 건축은 그러나 곧 도시계획 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주택난 해결을 위해 근교에 지은 고층 아파트 단지들은 도시와 단절된 게토(ghetto, 소수자 집단이 밀집해서 거주하는 지구)가 됐고, 오스만이 기획한 대로를 통해 분할된 전통적 도시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정(定)과 반(反)의 대비에서 새로운 합(合)을 찾는 헤겔처럼, 포르잠파르크는 19세기 도시 형태를 ‘닫힌 거리(closed street)’, 모더니즘의 근대 도시를 ‘無거리(no street)’로 정의한다. 그 안에서 새롭게 제시한 ‘제3의 도시-열린 블록’은 질서정연하지만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는 오스만식 건축과, 주변 세상을 향해 개방되어 있지만 도시의 일관성을 무시한 모더니즘 양식을 절충한 이론이다. 도시를 분할하는 거리의 라인을 존중하되 그 안에 비슷한 높이의 서로 떨어진 독립적 건물을 채워 넣어 어디서든 시원하게 트인 시야와 풍부한 채광, 자유로운 이동과 교류를 즐길 수 있게 한 것이 포르잠파르크의 건축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중심 지구 개발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Cidade das Artes’. 지역의 상징성과 함께 문화적 랜드마크 역할을 위해 계획했다. 콘서트 홀과 전시 갤러리, 댄스 스튜디오와 함께 식당, 상점 등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정서적 공간에 대한 배려’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제3의 도시’를 제창한 포르잠파르크의 아틀리에는 파리 14구의 조용한 주거 지구에 자리한다. ‘도시 기획 랩’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100여 명에 달하는 직원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프로젝트를 바삐 연구하지만 작은 철제문이 입구를 대신하는 아틀리에 외관은 의외로 소박해 피식 웃음이 날 정도. 아담한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자유분방한 옷차림의 젊은 건축가들이 설계도를 사이에 놓고 토론을 벌이고, 그 옆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은 활기차고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파리 시청에서의 미팅이 지연돼 조금 늦는다는 그를 기다리며 포트폴리오를 뒤적이다 그 속에서 몇 년 전 파리 근교에서 마주한 건축물을 우연히 발견했다.
건물을 10m 높이의 메탈 구조물 위에 올린 것처럼 보이는 특이한 구조 덕분에 원래 1층이 자리했을 공간에는 건너편에 흐르는 센 강의 잔잔한 물결과 푸른 녹지 그리고 그 위를 유영하는 자연광이 비추었다. 광활한 자연이 절경과는 분명 다르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의외의 방식으로 마주한 이 작은 자연의 조각은 이상하리만큼 오랜 여운을 남겼다. 포르잠파르크가 제3의 도시에 마련한 ‘정서적 공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건축가의 이름을 몰라도, 그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무엇.
그가 사무실에 들어온 순간, 전날 읽은 한 신문 기사의 그에 대한 표현 문구가 떠올랐다. ‘아담한 체구에 미남형 얼굴’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계속된 미팅 때문인지 웃음기 없는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대화가 시작되자 그 누구보다 진지한 눈빛을 보였고, 가끔씩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1944년, 군인인 아버지가 복무하던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난 후 저명한 예술학교 파리 보자르(Beaux-Arts Paris)를 졸업한 그가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길을 걸은 건 1970년대 초반이다. 파리 근교에 미학 대신 실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신도시를 유행처럼 조성하던 시절, 그는 반대로 랜드마크가 되어줄 창의적 건축물이 도시 지형에 개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했다. 밋밋한 소도시 누아지엘(Noisiel) 한복판에 설계한 높이 37m에 달하는 금수탑. 그가 설계한 최초의 프로젝트인 이 드라마틱한 건축물은 아직 신인에 불과하던 그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켰다. 그는 작업 초창기엔 서민을 위한 아파트 단지나 프랑스의 도시형 집합주택 건설에 몰두했고, 크레디 리요네(Cre′ dit Lyonnais) 타워와 퐁피두 센터 근처에 자리한 카페 보부르(Cafe′ Beaubourg) 같은 단일 건물을 설계했다.

Ⓒ Jacques-Franck Degioanni

프랑스를 벗어나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포르잠파르크의 감수성이 깃든 건축물을 볼 수 있게 된 건 1990년대 중반부터다. 암스테르담 근교의 주상복합 타운 ‘드 시타델(De Citadel)’, 리우데자네이루의 지형을 재해석한 예술관 ‘시다지 다스 아르치스(Cidade das Artes)’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투영한 뉴욕의 고층 빌딩 ‘One 57’을 포함한 작품이 완성되면서 그의 이름 앞에 ‘대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서울에 자리할 디올 부티크의 설계를 맡게 되었을 때 그는 청담동 거리를 산책하며 본격적인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잡았다고 한다. 제3의 도시론을 고민할 때부터 화두로 삼아온 도시와 건축물의 조화는 서울과 디올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디올 부티크가 자리할 장소의 사회적 의미와 거리의 지형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수의 유명 브랜드 부티크가 들어선 청담동은 서울 시민에게 쇼핑 스폿인 동시에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장소더군요. 이미 특별한 거리로 손꼽히는 그곳에서 또 하나의 건축적 이벤트를 제안하는 것이 ‘특별함’의 의미를 너무 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서울이라는 도시 고유의 일관성을 위협하는 건 아닐지, 흔히 볼 수 있는 사각형 건물을 디올의 코드와 함께 재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한 해결책은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청담동에는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기운이 흐릅니다. 그 덕분에 무슈 디올과 쿠튀르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건물을 완성해도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평소에는 컨셉을 확정한 후에야 본격적 설계를 시작하는 포르잠파르크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달랐다. 뉴룩의 볼륨감 있는 스커트가 연출하는 우아한 움직임을 건물이라는 정적인 오브제에 담아내고 싶다는 막연한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새긴 채 수십 장에 달하는 크로키를 그렸다. 실루엣의 건축적 특성에 주목한 무슈 디올에 대한 그의 오마주는 패션적 특성을 담아낸 건물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크로키 교정과 모형 제작을 거치는 과정은 제게도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디자인을 확정한 후에는 파사드에 움직임의 의미를 부여할 유선형 구조물들이 현실적으로 제작 가능한지 고민해야 했죠. 하지만 그 해결책은 다행히 한국 현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선박 제조 기술을 보유한 한국에서 사용하는 선체 공정 기법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우아하게 피어난 꽃잎을, 혹은 현 아트 디렉터 라프 시몬스의 쿠튀르 컬렉션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구조물의 완벽한 라인을 찾아가는 내내 그는 꾸준히 크로키를 그렸다. 오죽하면 인터뷰 도중, 그동안 그린 크로키를 찾던 그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였겠는가. 이렇게 많은 스케치가 있었는지, 이토록 다양한 시도를 했는지 본인도 미처 몰랐다는 표정이다. 그에게는 물론 훗날 디올에도 소중한 아카이브가 될 것이 분명한 그림들. 가는 선 하나도 결코 허투루 긋지 않았다는 사실쯤은 굳이 그의 설명이 없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초반 작업을 보니 이미 파사드를 장식할 구조물은 구체적으로 설계되어 있었지만 완성작에 비하면 확실히 덜 ‘디올스럽게’ 보일 정도로 직선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결과적으로 완벽한 꽃잎의 라인을 찾아냈고, 그것을 건축에 옮겼다. 이토록 절묘하게 브랜드의 DNA를 이해한 그는 메종 디올을 어떻게 정의 내릴까?
“하이패션의 대명사로 추앙되는 브랜드 디올을 어떻게 제가 감히 정의할 수 있겠어요. 그러기엔 패션에 대한 제 소양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슈 디올 시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온 헤리티지 속에 담긴 대담한 창의력과 특유의 전통은 진심으로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부티크의 전면은 사각형 박스를 닮은 건물과 연결된다. 그 위에 생전의 무슈 디올이 아낀 나폴레옹 3세풍 의자에서 영감을 받은 까나쥬(cannage) 패턴을 새겨 넣은 은은한 골드 메탈 장식을 입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칫하면 대놓고 화려할 수 있는 골드 컬러를 이렇게 우아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메종은 디올뿐이라고 생각해요.”

샤토 슈발 블랑 와이너리Ⓒ Erick Saillet

디올의 헤리티지 속에 담긴 대담한 창의력과 특유의 전통을 그대로 건축에 옮겨온 디올 부티크의 조감도. 청담동 한복판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서울 시민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가 서울에 들어설 건물을 설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5년, 전 세계 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국립중앙박물관 설계 공모전에 도전한 것. 비록 한국 건축가에게 당선을 내준 채 2등에 머물렀지만 그의 프로젝트에 담긴 인간적 공간 개념은 심사위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당시 한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문화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한동안 한국이란 나라를 열심히 연구했거든요. 서울에 있는거의 모든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서울의 건축에 대해 한참 고민했죠.”
그 오랜 고민의 흔적이 디올과 함께한 이번 프로젝트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는 20년 전의 고민 덕분에 현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자리한 작은 나라면서 이토록 독창적인 문화유산을 창조해낼 정도로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한국에서라면, 디올과 자신이 거리낌없이 선보이는 이 창의적 부티크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 때문에 누구라도 디올 부티크를 본다면 포르잠파르크가 지금껏 추구한 ‘정서적 공간에 대한 배려’의 또 다른 예시라고 확신할 것이다. 건축이 지닌 기능과 조화의 차원을 넘어 보는 이의 가슴에 그대로 각인될 만큼 충분히 감성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프랑스 작가 필리프 솔레르(Philippe Sollers)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저서 <보다, 쓰다(Voir Ecrire)>가 있다. 이 책에 그가 신의 도시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을 찾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이 있다. ‘균형 잡힌 능선을 자랑하는 산을 배경으로 인간이 쌓아 올린 피라미드가 그려내는 완벽한 라인 앞에서 자연을 향해 야심찬 도전장을 던지며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가는 인간을 연상했다.’ 주변 환경와 건물의 조화를 생각하는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르잠 파르크가 서울의 지형을 상대로 경쟁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서울에 들어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도시를 보다 인간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현지 취재 배우리(파리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