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인도에 안착하다
지난해 12월 19일, 인도 뭄바이의 최고급 호텔 타지마할 팰리스는 세계 곳곳에서 온 미술 애호가의 열기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처음으로 경매 회사 크리스티의 인도 현대미술 경매가 열렸기 때문. 총낙찰액 1540만 달러(약 170억 원). 예상가의 2배가 넘는 이번 크리스티 경매의 성과는 인도 미술 시장의 잠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다.
지난 12월 크리스티 인도의 첫 미술품 경매가 인도 뭄바이의 최고급 호텔 타지마할 팰리스에서 열렸다.
크리스티의 첫 인도 미술품 경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2년, 경매 회사 소더비는 뉴델리에서 처음으로 미술품 경매를 열어 당시로선 놀라운 금액인 197만 달러(약 22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외국 경매사의 국내 진출에 대한 인도 관료들의 반발과 해외 자금 유출 금지법으로 인해 인도 미술 시장은 활성화되기 어려웠다. 한편 1994년 크리스티도 인도에 사무실을 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인도 내 거래보다는 런던과 뉴욕의 경매를 위한 소통 창구를 담당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인도 미술 시장은 서서히 냉각기를 벗어나 조금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시작한 인도 국제 아트 페어(India Art Sumit)는 매년 총거래 금액을 3배씩 늘리며 성장했고, 올해(1월 30일~ 2월 2일)도 프랑스의 보두앙 르봉(Baudoin Lebon), 독일의 디 갤러리(Die Galerie), 그로스베너 갤러리(Grosvenor Gallery) 등 유수의 갤러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인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며 최근엔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신흥 부자도 미술품 경매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이번 크리스티의 인도 시장 진출은 인도 근.현대미술의 한발 앞선 도약이자, 본격적 세계 미술 시장 진출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크리스티 인도의 이번 경매 낙찰률은 무려 98%에 달했다. 그중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작품은 바수데오 가이톤드(Vasudeo S. Gaitonde)의 1979년 작품 ‘Untitled’. 단 7분 만에 예상가의 3배를 넘겨 379만2400달러(약 42억 원)에 거래됐다. 이 기록은 인도 현대미술 거래 역사상 최고가로, 2010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거래된 세이드 하이더 라자(Sayed Haider Raza)의 작품 ‘Saurashtra’의 경매가 345만4510달러(약 38억 원)를 경신한 것이다. 가이톤드는 뭄바이의 전위적 미술 그룹(Bombay Progressive Artist’s Group)을 이끈 선구적 작가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이 이번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건 2014년 10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릴 회고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두 번째로 높은 판매가를 기록한 작품은 티엡 메타(Tyeb Mehta)의 ‘Mahisasura’였다. 그의 작품은 예상가의 2.5배에 달하는 191만8903달러(약 21억 원)에 거래됐다. 최고가를 기록한 10위권 내 작품 중 1.2위는 미국인 컬렉터에게, 3.4위를 비롯한 4점은 아시아의 컬렉터에게, 5.6위를 비롯한 3점은 익명의 소장가에게, 그리고 7위를 기록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의 작품은 인도의 한 기관에 팔렸다.
1 경매 시작 7분 만에 가장 높은 가격(약 42억 원)으로 거래된 바수데오 가이톤드의 작품 ‘Untitled’
2 두 번째로 높은 가격(21억 원)에 거래된 티엡 메타의 ‘Mahisasura’
3 네 번째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 만지트 바와의 ‘Untitled(Gaja Lakshmi)
그런데 왜 인도였을까?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의 질서가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아시아 미술 시장도 자연스레 중국으로 그 중심축이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어나 제도 면에서 중국은 서구 시장이 직접 진출하기엔 아직 어려움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아시아의 유일한 나라로 인도가 꼽히고 있다.
인도는 일찌감치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 덕분에 서구 문화의 국내 유입이 쉬웠다. 일례로, 이번 경매에서도 크리스티 아시아의 국제부를 담당하는 휴고 웨이헤(Hugo Weihe) 박사가 경매사로 참여하는 등 본사의 운영 방식과 요원들이 그대로 진출했다. 만약 언어 장벽이 있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국제 무대에서 성공한 인도 갑부들이 주요 컬렉터로 등장하고 있다. 신흥 IT 갑부 시브 나다르(Shiv Nadar)의 부인 키란 나다르(Kiran Nadar)가 10여 년 전부터 인도 현대미술품 수집에 주목해 이미 1000점이 넘는 근현대 인도 미술품을 컬렉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의 경제는 점점 성장하는 추세로, 럭셔리 마켓만 해도 앞으로 5년간 86% 성장할 전망이다. 그 속에서 예술품은 단순히 예술 애호가들의 컬렉션에 머물지 않고 가치 있는 투자처를 찾는 자본가들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가의 문화정책도 예술품의 가치를 담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경매에 출품한 작가 9명 중 6명이 인도의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이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은 해외 반출이 금지될 정도로 국보급 대우를 받고 있다. 이는 인도가 자국의 근대미술을 인도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경매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인도 현대미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나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등 1950년대 이후 출생한 작가의 현대미술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20세기 전반에 출생해 최근 사망한 근대미술 작가들이 당당히 세계 미술 시장에 그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후세인(M. F Husain), 프랜시스 뉴턴 수자(F. N. Souza) 등 소수의 국제적 작가뿐 아니라 여러 작가가 고루 부상했다는 점에서 인도 근대미술의 저변이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경매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인도를 찾은 방문객은 단지 경매 프리뷰만 관람한 것이 아니다. 크리스티의 안내로 인도의 현지 갤러리를 투어하며 미래의 세계 미술을 이끌 인도의 젊은 작가들을 살폈다. 과거의 미술품을 계기로 새로운 미술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경매는 다층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 경매를 계기로 펼쳐질 국제 미술 시장의 변화, 특히 아시아 지역 미술의 귀추가 주목된다.
Mini Intervier
크리스티의 인도 진출 시점에 맞춰
크리스티가 인도에 진출한 배경은 무엇인가? 지난해 9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 당시 인도의 국민 작가 난다랄 보제(Nandalal Bose)의 작품이 100% 판매를 기록했다. 그 사건은 세계 미술 시장은 물론 인도 미술 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린 지난 10여 년간 인도 미술 시장을 주목해왔고, 지금이 바로 인도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크리스티에 대한 인도 미술계의 반응은 어땠나? 모두 따뜻하게 대해줬다. 클라이언트를 위해 갤러리 투어를 진행했는데, 인도 현지 갤러리들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에게 그들의 클라이언트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모두가 끈끈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번 경매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인도에서 열린 첫 경매를 짧게 정리한다면? 우리 목표는 지난 100년 동안의 인도 미술 작품과 함께 인도에서 발생한 많은 변화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린 인도의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작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이번 경매에서 소개한 작품 83점 모두 걸작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매해 인도에서 경매를 여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인도 작가의 훌륭한 작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지금은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 또한 앞으로 인도에서 미술품뿐 아니라 공예품과 보석 경매도 선보일 예정이다. 인터뷰 | Karishma Rajani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