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의 신선한 바람
최근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신성’으로 떠오르는 인물 중엔 그 출신 국가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이들이 있다. 새로운 얼굴이 속속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계의 흐름, 어떻게 바뀌고 있는 걸까?

올해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의 지휘를 맡은 구스타보 두다멜.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클래식 스타다.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매년 어김없이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는 해마다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지휘자를 선정해 한 해를 여는 뜻깊은 공연을 맡긴다. 최근 몇 년간의 지휘자만 봐도 마리스 얀손스, 주빈 메타, 다니엘 바렌보임 등 이름을 발표하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는 거장. 모두 악단의 정통성 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런데 2017년 신년 음악회에는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1981년생, 지휘자로서는 젊디젊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75년 역사상 최연소로 포디엄에 오른 것.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빈 필하모닉이 그에게 지휘봉을 맡겼다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 30대의 ‘젊은 거장’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 그 결과는 어땠나. 이미 많은 이들이 지난 1월 1일 생중계와 녹화 방송으로 확인했듯, 그는 풍부한 감흥을 담은 음악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2015년 LA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하기도한 구스타보 두다멜의 이름 뒤에는 늘 베네수엘라라는 출신 국가가 따라다닌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젊은 지휘자가 클래식 음악의 불모지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음악계의 ‘주류와 비주류’라는 구분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진다. 과거와 달리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클래식 연주자들이 특정 국가를 넘어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배출되고 있는 상황. 올해 한국을 찾는 아티스트의 면면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4월 21일 LG아트센터에서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는 두다멜과 함께 베네수엘라의 클래식 스타로 꼽힌다. 그녀는 특히 즉흥연주로 잘 알려졌는데, 최근에는 대규모 관현악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내한 공연에서는 브람스와 리스트의 곡을 연주한 뒤 2부를 즉흥연주로 구성할 예정.

1 조지아의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 올해 11월 한국에서 독주회를 개최한다.
2 아르메니아 출신의 첼리스트 나레크 하크나자리안
가브리엘라 몬테로가 40대 나이로 확고한 색깔을 보여주는 연주자라면, 20대와 30대 연주자 중에서는 더 많은 새로운 국가의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다. 조지아의 신성이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는 1987년생. 연주 실력뿐 아니라 매혹적인 외모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 작년 첫 내한 공연 당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다. 관객의 열광적인 환호에 3곡의 앙코르를 연주한 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객석을 향해 수차례 키스를 날리며 무대 뒤로 사라진 그녀는 11월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최근 콩쿠르 수상자들의 출신 국가를 살펴봐도 그동안 클래식계에서 볼 수 없던 의외의 국가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2015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성악 부문 우승자로, 지난해 평창겨울음악제에서 객석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아리운바타르 간바타르는 몽골 출신의 바리톤이다. 올봄 내한하는 벡조드 압드라이모프는 우즈베키스탄의 피아니스트로 2009년 런던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런던 위그모어홀과 뉴욕 카네기홀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3월 23일 금호아트홀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독주회를 감상할 수 있는데, 프로그램중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과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6번이 있다는 사실은 그의 파워풀한 타건에 대한 기대감을 더한다. 오는 6월 8일 금호아트홀 무대에 서는 첼리스트 나레크 하크나자리안의 리사이틀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공연. 아르메니아 출신인 그는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우승하며 급부상한 뒤 2014년 영국 BBC 뉴 제너레이션 아티스트로 선정되고 2016년 BBC 프롬스 무대를 통해 데뷔했다. 이미 서울시향과 몇 차례 협연해 한국 관객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폭발적인 연주력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피아니스트 벡조드 압드라이모프
ⓒ Cristian Fatu
이처럼 다양한 국가의 아티스트가 각광받으며 스타로 떠오르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올해 처음으로 ‘클래식 나우!’ 시리즈를 기획해 현재 세계 음악계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을 소개하는 금호아트홀 측은 “예전에 국제 콩쿠르가 소수의 클래식 팬과 음악인만의 행사로 치러졌다면 이제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뛰어난 연주는 동영상과 음원을 공유하며 화제가 된다. 그러므로 지리적 한계나 국가의 경쟁력이 연주자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예전만큼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콩쿠르 스타뿐 아니라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유튜브의 연주 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팬이 생긴 연주자도 적지 않다. 3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우크라이나의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가 대표적 인물. 이런 연주자가 IMG 아티스트(IMG Artist)나 해리슨 패럿(Harrison Parrott) 같은 세계 굴지의 매니지먼트와 만나거나 거장 지휘자의 후원을 받을 경우 활동 반경은 더욱 넓어진다.
클래식 음악계에 부는 새로운 바람 속에서 앞으로 연주자의 출신 국가와 그로 인한 특정 스타일을 말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 같다. 대신 개인의 역량과 개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더해갈 것. 전통적으로 클래식 교육에 강한 국가가 아닌, 소위 변방으로 불리던 나라에서 등장한 아티스트들은 자국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이를 음악을 통해 알리기도 한다. 베네수엘라의 인권 문제를 환기시키고 담론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가브리엘라 몬테로는 자신의 첫 관현악곡에서 부패가 만연한 베네수엘라 사회를 애통하게 표현했고, 나레크 하크나자리안은 2015년 내한 당시 앙코르곡으로 조국인 아르메니아의 대학살 100주기에 헌정하는 작품을 연주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신 있는 아티스트들의 행보는 수많은 관객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더 이상 클래식 음악계는 미국과 유럽으로 양분되지 않는다. 이는 당연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전유물’이란 단어는 본래 음악과 가장 거리가 먼 단어여야 마땅하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연주자들의 약진을 지켜 보고 음악으로 교감하는 것은 전 세계 애호가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