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한 낭만에 대하여
이탈리아 바리(Bari)에서 911 타르가를 만났다. 1965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타르가와 2014년의 신형 타르가. 지중해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이 두 모델은 닮은 듯 달랐다. 911 타르가는 과거의 낭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클래식한 분위기와 감성은 꿈꾸던 낭만 그대로다.
나에게 911 타르가는 포르쉐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차다. 말로만 듣던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를 직접, 그것도 유럽 현지에서 제대로 경험하게 해준 첫 모델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프레스 런칭 행사를 위해 이탈리아 베로나의 한적한 교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997 타르가를 탄 순간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과장이 아니다. 적어도 그때의 느낌은 그랬다. 포르쉐 911의 유일무이한 개성과 성능을 알게 되었고, 스포츠카를 즐기는 기분을 깊이 공감하게 되었으며, 지붕이 열리지 않아도 하늘의 색깔과 바람의 움직임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도된 것 같다(이전 모델은 지붕 전체가 하나로 이어진 널찍한 글라스 루프다). 2014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신형 모델이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유난히 주목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7년 만에, 신형 타르가를 만나기 위해 다시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엔 이탈리아 남부의 아담하고 소박한 휴양도시 바리(Bari)다. 이탈리아 지도에서 구두 뒷굽 부분에 위치한 이곳에 가기 위해선 로마를 경유해 1시간 남짓 더 비행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환상적인 햇살이 새로운 타르가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공항에서 다시 차를 타고 40분가량 들어가니 수령이 오래된 듯한 올리브나무가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자연이 그리는 한적한 풍경만 이어질 것 같은 그 시골길 한가운데에 마치 유럽의 작고 프라이빗한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내추럴한 멋의 호텔이 나타났다. 보르고 에그나치아(Borgo Egnazia) 호텔 정문 앞에 서 있는 911 타르가 2대. 하나는 오리지널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신형이다. 5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둔 두 모델의 공존이 묘하게 느껴진 순간이다.
신형 타르가는 이전 세대인 997 타르가 모델과 사뭇 다르다. 일단 겉모습에서 큰 변화가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전설적 오리지널 타르가의 원형을 재현한 것이다. ‘타르가’라는 이름은 1906년부터 1977년까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린 ‘타르가 플로리오’라는 자동차 경주에서 따왔다. 포르쉐는 이 레이스의 60년 역사상 최다 횟수인 11번이나 우승한 이력을 자랑한다. 포르쉐의 레이싱 본능이 눈부시게 발휘된 이 레이스의 이름을 따온 타르가는 사실 미국의 안전 법규 때문에 등장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컨버터블카의 판매를 금지했다. 구조상 전복 사고 시 승객의 안전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타르가는 지붕이 열리면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로 디자인했다. 오리지널 타르가는 고정된 롤바(사고 시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차체 위에 덧댄 철제 막대)가 디자인 핵심 요소로, 고정된 바를 중심으로 루프와 리어 글라스의 탈착이 가능한 독특한 카브리올레였다. 카브리올레처럼 지붕이 오픈되면서도 탄탄한 차체를 유지하고, 전복 사고 시에도 차체 무게를 B 필러와 프레임만으로도 든든하게 버텨낸다. 타르가 톱은 독특한 스타일 덕분에 1960~19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다른 브랜드의 스포츠카에 적용한 사례도 있지만, 포르쉐 타르가야말로 타르가 톱 모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96년에 나온 코드네임 993부터 이전 세대 모델인 997까지 스타일이 달라졌다. 겉모습은 기존 쿠페형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지붕 전체와 리어 윈도까지 글라스로 구성한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에만 해도 파격적이었지만, 지금은 파노라마 선루프 자체가 흔한 옵션 중 하나가 되었으니 타르가라는 이름의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긴 쉽지 않았을 거다. 911 제품 개발 총괄인 에르하르트 뫼슬레 박사(Dr. Erhard Moessle)가 스타일을 바꾼 이유에 대해 설명한 말을 들어봐도 짐작할 수 있다. “글라스 루프는 선루프를 탑재한 쿠페 모델과 디자인이 굉장히 흡사하죠. 그래서 신형은 글라스가 아닌 패브릭으로 만든 소프트톱을 적용했어요. 하드톱보다 차체 무게도 훨씬 가벼워지는 장점이 있어요.”
1 1965년의 클래식 타르가 2 롤바에 새긴 타르가 로고
글라스 루프를 버린 타르가는 다시 클래식한 형태로 돌아왔다. 핵심은 전통과 혁신의 절묘한 조합이다. 오리지널 모델과 같은 와이드 바를 장착했고 루프는 개폐가 가능한 소프트톱을 채택했다. 과거 모델이 수동으로 지붕을 탈착했다면 신형은 루프가 자동으로 접혀 들어간다. 또 뒷부분은 C필러가 없는 랩어라운드 형태의 윈도를 적용해 클래식 스타일을 멋지게 재현해냈다.
시승은 바리의 한적한 해안 도로와 아담한 마을을 달리며 여유롭게 이어졌다. 911 시승이 오랜만이라 일단 특유의 주행 감각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루프와 롤바, 돔 형태의 리어 윈도 부분을 빼면 전반적 모습은 우리가 알던 7세대 911과 다름없다. 포르쉐 사륜구동 모델의 유니크한 와이드 보디는 코너를 돌 때도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가벼운 차체와 단단하면서 탄력적인 서스펜션도 여전히 훌륭하다. 민첩한 변속으로 스포티한 맛을 배가시키는 듀얼 클러치인 7단 PDK와 네 바퀴에 최적의 동력을 적절히 전달하는 PTM(포르쉐 트랙션 매니지먼트)이 직선 주로든 코너에서든 다이내믹한 주행 감각을 선사한다.
해안 도로에 다다랐을 때 드디어 루프를 열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포르쉐의 최첨단 루프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소프트톱이 어떤 모습으로 접혀 들어가는지 제일 궁금한 터였다. 먼저 와이드 바 뒤편의 리어 윈도를 뒤로 젖힌다. 두 조각으로 이뤄진 와이드 바의 윗부분과 소프트톱이 분리돼 열리며 뒤따라 스르르 내려간 후 완전히 접히면, 다시 리어 윈도가 올라와 닫히며 완벽한 타르가의 모습을 완성한다. 19초 만에 이루어지는 이 개폐 모습은 웬만한 하드톱 컨버터블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루프를 열고 나서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타르가 4는 3.4리터 수평대향 엔진, 350마력에 0-100km/h 4.8초, 최고속도 282km/h의 스펙을 갖췄고 4S는 3.8리터, 400마력의 출력에 0-100km/h가 0.4초나 단축된 4.4초다. 더 낮은 섀시에 50마력 높은 출력을 내는 4S가 코너링이 좀 더 안정적이고 민첩하긴 하지만 타르가는 S가 붙지 않은 사륜구동 모델로도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충분할 듯싶다. 타르가는 911 타르가 4와 4S만 선보이는데, 시승 후 뫼슬레 박사에게 사륜구동 모델 2가지만 선보이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911 4 모델과 타르가 구입을 고려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진행했는데, 이 두 모델의 잠재 구매 고객의 성향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결과에 따라 신형 타르가는 사륜구동 모델로만 선보이게 된 겁니다. 타르가 터보를 개발할 계획이 있느냐고요? 현재로선 없어요. 터보는 고성능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기 때문에 타르가의 유니크한 개성을 변경해야 하거든요.”
포르쉐 사륜구동 모델의 와이드 보디가 돋보이는 타르가 4S
타르가 4S의 앞좌석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타르가는 꼭 911의 성능을 100% 뽑아내며 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좋기 때문이다. 이 차를 타면서 진짜 느껴봐야 할 것은 뭇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유니크하고 멋진 스타일이다. 홀딱 벗은 여자보다 한 부분만 살짝 드러낸 여자가 더 섹시하게 느껴지듯 타르가의 반쯤 열린 루프는 누구든지 뒤돌아볼 만한 ‘물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계속 루프를 열고 달리다 보니 주위의 소음이 일반 컨버터블보다 시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열린 하늘에서 들어오는 바람이나 엔진 소리가 바깥으로 완전히 빠지지 않고 닫혀 있는 리어 윈도 앞에서 맴도는 느낌이랄까? 특히 스포츠 플러스 버튼을 누르고 주행 모드를 스포티하게 바꿔 달리면 갖가지 소음 탓에 더 얼얼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늘을 향해 자유분방하게 날리는 머리카락도 한몫한다. 하이엔드 음질을 자랑하는 부메스터(Burmester) 오디오의 사운드는 들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하늘과 바람과 ‘포르쉐 노트’라 불리는 특유의 짜릿한 엔진음이 뒤엉킨 그 느낌에 온전히 나를 맡기게 되었다. 어느새 타르가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프라이빗하고 안락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자유를 선사하는 동시에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는 공간. 오픈카는 왠지 부담스럽지만 쿠페로는 포기해야 하는 하늘과 맞닿는 기분을 원한다면 911 타르가의 매력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 것 같다.
바리의 도로를 구석구석 누비다 항구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카페 중 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이탈리아에 오면 늘 한 잔씩 마시던 에스프레소 더블 대신 상큼한 바닐라 젤라토를 주문하고, 카페 입구 앞에 세워놓은 타르가를 바라보며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떠난 줄 알았던 클래식 타르가가 더 멋들어진 모습으로 돌아온 것처럼, 내게도 첫사랑 같은 봄날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 다시 못 올 것에 대해 서글퍼할 필요는 없다. 911 타르가는 그저 과거의 낭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마 유일무이한 ‘모던클래식 카’로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상반기 출시 예정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곧 그 클래식의 낭만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제공 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