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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여성

LIFESTYLE

클래식 오페라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여성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푸치니 페스티벌 야외 극장에서, 미국의 뉴욕 카네기홀에서 한국 오페라를 널리 알린 부산이 낳은 클래식계 여성. 솔오페라단의 이소영 단장과 소프라노 김현주를 만났다.

열연하는 소프라노 | 소프라노 김현주
지난 9월 25일, 뉴욕 현지 시각 저녁 9시 30분. 뉴욕 카네기홀의2800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의 기립박수 속에 한국 창작 오페라 <선비>의 공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작년에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한국 창작 오페라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한국 오페라 70년 역사상 최초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개막한 창작 오페라다. 한국의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선비 정신을 한국적 아리아로 풀어낸 <선비>는 작품명과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남성 위주의 오페라다. 그 한가운데에 여주인공 김의진 역으로 부산 출신 소프라노 김현주가 있었다. “시대적 배경의 특성상 사극 장르의 여성 캐릭터는 남성에 비해 소극적이고 수동적입니다. 김의진 역할을 맡으며 고민한 것은 카네기홀 같은 큰 무대에서 어떻게 하면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기본적 발성과 성량은 말할 것도 없고, 손짓과 발짓 그 이상의 큰 동작, 즉 ‘액팅(acting)’이 받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연 연습 당시 한국 무용을 전공한 무용단원에게 ‘극의 상황에 맞게 어떤 느낌의 동작을 취하면 좋겠느냐’며 조언을 많이 구했죠.”
‘21세기 오페라의 여왕’으로 불리는 안나 네트렙코가 데뷔 초에 ‘외모와 연기’로 주목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의 오페라는 실력은 기본, 그 이상의 재능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것이 외모든 연기력이든. 그런 점에서 클래식에도 한류가 있다면, 소프라노 김현주는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끌어낼 만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 부산대학교 성악과 장학생,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국립 음악원 최고 연주자 과정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만점 졸업자, 제7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클래식 타임즈상’ 수상, 제15회 오사카 국제 콩쿠르 에스푸아 프라이즈 수상 등등. 이제 겨우 서른 살을 넘긴 소프라노로서 훌륭한 경력을 쌓고 있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연기력과 외모 관리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노래만으로 오페라를 이해하기 어려운 관객에게 섬세한 표현력까지 갖춰 오페라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가 오페라 연기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소프라노 김현주에 대한 사람들의 첫인상은 대체로 ‘의외로’로 시작되는 말이 많다. ‘높은 음역대와 풍부한 성량을 지닌 것치고는 의외로 날씬하다’를 비롯해 ‘의외로 공부를 잘한다’, ‘의외로 연습벌레다’ 등등. “바쁘지 않으면 약간 불안하다고 할까요. 밀라노에서 공부할 때도 일주일에 세 번씩 노래와 피아노 레슨을 꼬박꼬박 받았고, 이탈리아어도 하루 8시간 이상씩 공부했습니다. 밀라노에서 레슨을 받은 선생님께서 한국을 자주 방문하시는데 그때마다 언제 어디서든 레슨을 받고 있고요. 지금도 연습을 하지 않을 때는 발레나 현대무용, 기초 체력 운동 등 늘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일까. 내년에 오페라 <사랑의 묘약> 아디나 역으로 부산 관객과 조우할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리아, 문학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주인공 캐릭터. 이 익숙한 클리셰를 깬 ‘김현주표’ 아디나는 어떤 모습일까? 극에서 묘사한 것처럼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지’ 기대해본다.

한국발 오페라의 자존심 | 솔오페라단 이소영 단장
지난 2월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오페라 부문 최우수작품상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솔오페라단의 <일 트리티코>가 차지했다. 민간 오페라단의 수상은 이례적인 일로, 부산과 서울에 지사를 둔 솔오페라단이 한국 오페라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오페라를 선보이는 획기적인 시도는 물론, 세계적 극장과 직접 계약해 합작하는 수준 높은 콘텐츠 등은 이소영 단장의 남다른 감각과 추진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작품에 도전합니다. 오페라는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지녔기 때문에 클래식과 모던을 번갈아 선보이며 희귀작과 대중작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죠.” 여기에 더해 아티스트 개인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다채로운 공연을 추구한다는 그녀에게는 확고한 공연 선정 기준이 존재한다. “확실한 퀄리티를 보장하는 공연만 소개해요. 직접 관람하거나 DVD나 CD로 발매된 작품 등 반드시 검증 과정을 거칩니다.”
이소영 단장의 원칙과 소신은 곧 유려한 성과로 이어진다. ‘메이드 인 부산’이 한국의 중심이 되고, 나아가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겠다는 그녀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팔리아치>를 들고 나설 계획이며, 세계 3대 오페라 축제 중 하나인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한국 작품 <아비지(선덕여왕)> 공연을 앞두고 있다.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행사에서 활약하기까지 쉬운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닐 터. 그녀는 음악, 솔오페라단의 든든한 후원자들, 함께하는 동료들을 원동력으로 꼽았다. “겉보기에는 화려해도, 공연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곧 예술이고 오페라를 위한 것이기에 힘든 과정을 견디죠. 경제적인 지원뿐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진심으로 격려하는 후원인은 큰 힘이자 자양분이에요. 함께 일하는 훌륭한 직원들도요”라며 대부분의 공을 주변에 돌리는 겸손함에서 아티스트와 동료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신뢰가 느껴진다.
유명 극장이 주체적으로 기획해 오페라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선 독특하게 극장이 아닌 솔오페라단이라는 단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소영 단장은 지금이 솔오페라단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시기라고 자부한다. “우리만의 독창적인 공연을 시도하려 해요. IT 강국이라는 한국의 색깔을 활용해 기술과 오페라를 접목한 다양한 장치를 연구 중입니다. 유럽에서도 드문 일이죠. 그 역할을 해내고 싶어요.” 명실상부한 세계 유수의 극장과 같은 반열에 오른 오페라단이 되겠다는 포부다. “늘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요. ‘꿈꾸지 않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염두에 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합니다. 세상 속 나는 작지만 내 안의 세상은 넓다 여기고 항상 한국을 넘어 세계 속의 나 자신을 생각하죠.” 그런 그녀가 올해 서울과 부산에서 <일 트로바토레>를 무대에 올린다. 유럽에서는 자주 공연하는 오페라지만 한국에서는 희귀하다. 이번 공연이 그녀에게도 기대 이상이자 자부심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한껏 기대해도 될 듯하다.

에디터 손지혜(프리랜서), 백아영(프리랜서)
사진 여승진(김현주), 조인기(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