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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카의 값은 누가 결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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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씩 하는 클래식 카의 가치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 걸까? 경매에 그 답이 있다.

세계적 클래식 카 이벤트인 콘코르소 델레간차(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 많은 사람이 이탈리아 빌라 데스테 호텔에서 열리는 클래식 카 경연에 익숙하지만 또 다른 특별 이벤트가 있다. 빌라 에르바(Villa Erba)에서 열리는 RM 옥션이다. RM 옥션은 세계적인 클래식 카 경매업체다. 클래식 카 매매 외에도 경매를 통해 클래식 카의 가치를 매긴다.
RM 옥션은 비정기적으로 열리지만 가장 큰 경매는 역시 매년 4월 체르노비오의 코모 호숫가에서 열리는 콘코르소 델레간차와 함께하는 행사다. 콘코르소 델레간차가 열리는 빌라 데스테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고급 리조트인 빌라 에르바가 그 무대다. 빌라 에르바에서는 두 곳의 전시장을 운영하는데, 야외에 마련한 일반 매매장과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하는 특별 경매로 나뉜다.
일반 공개가 원칙인 콘코르소 델레간차에 비해 RM 옥션은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한다. 구입 가능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운 좋게 2013년 빌라 에르바에서 열린 RM 옥션 출품작을 볼 수 있었는데 전시된 차를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실제 경매에 참가하거나 특별 경매를 관람하려면 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하고, 일반 출품작을 전시하는 야외 전시장도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특별 경매가 열리는 곳은 출입할 수 없었지만 RM 옥션에서 거래하는 클래식 카 컬렉션은 마음껏 둘러볼 수 있었다. 요청하면 체르노비오 근처를 달리는 짧은 시승도 가능하다. 단, 까다로운 신원 확인 절차를 마친 후 자동권총으로 무장한 보안요원이 동승한다는 조건에서.
최근 RM 옥션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차종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생산한 슈퍼카다. 재규어 XJ220을 비롯해 페라리 F40, F50은 시세가 비교적 안정적인 모델로 꼽힌다. 생산 대수가 적어 시세 자체가 별 의미는 없겠지만 RM 옥션에서 형성된 나름의 값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며 단순히 시세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역사의 값어치도 함께 책정한다.

RM 옥션에 출품한 클래식 카의 경매 시작 가격은 희소가치와 진품 여부, 오리지널 시리얼 번호를 확인한 후 RM 옥션 소속 경매사와 세계 각지의 클래식 카 전문가들이 함께 결정한다. 같은 차라도 연식과 생산 대수, 제작자(코치빌더 혹은 카로체리아), 오리지널 부품 사용 비율, 리스토어 상태, 오리지널 시리얼 번호에 따라 경매 시작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출품한 차의 오리지널 시리얼 번호다. 간혹 뼈대만 앙상한 차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차도 나오는데, 오리지널 시리얼 번호만 확인되면 출품이 가능하다. 이런 차는 리스토어를 거쳐 몇 년 후 RM 옥션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고가의 희귀한 차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콘코르소 델레간차 이벤트를 제외한 비정기적 옥션에서는 다양한 차를 거래한다. 파가니나 코닉세그 같은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슈퍼카는 이런 경로를 통하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으로 RM 옥션의 최고 경매가는 4370만 달러(약 497억 원)를 기록한 1936년식 부가티 타입 57SC 아틀란틱 쿠페다. 총 3대를 제작한 부가티 타입 57SC 아틀란틱 쿠페는 현재 2대가 남아 있으며 그중 한 대는 디자이너 랄프 로렌의 소유다.

RM 옥션에 출품되는 차는 대부분 유럽 클래식 카와 슈퍼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본 차의 진출도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대표적 예가 닛산의 스카이라인과 페어레이디 Z, 토요타 2000 GT다. 일본 클래식 카는 그동안 국제 클래식 카 시장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생산한 초대 스카이라인(하코스카)은 미국 RM 옥션을 통해 소개한 후 일본을 대표하는 클래식 카로 꼽히고 있다. RM 옥션에서 기록한 스카이라인 경매가는 1억2000만 원 정도로 유럽 클래식 카에 비해 그리 높지 않지만 상태와 모델에 따라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클래식 카만 놓고 볼 때 RM 옥션은 클래식 카 관련 업체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적정한 값을 책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세계적 경매 회사 소더비와 손잡고 규모를 키우고 있다. 미술품을 비롯해 골동품과 각종 보석을 경매하는 소더비는 클래식 카 분야를 RM 옥션과 함께 다루는데,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전체 RM 옥션 거래량의 40%에 육박할 정도다.RM 소더비와 구조가 비슷한 영국의 본햄스 역시 클래식 카를 취급하는데, 이 두 회사는 클래식 카 경매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워낙 고가의 차량을 다루다 보니 RM 옥션에는 세계적인 부호들이 모인다. 이들이 오래된 클래식 카를 찾는 이유? 자신이 가진 부의 가치를 클래식 카를 통해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중국이나 중동, 러시아의 신흥 부호들이 RM 옥션을 찾는 경우가 많지만, 보수적이고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유럽 중심의 상위 클래식 카 분야에서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RM 옥션 입찰 자격을 갖추는 것만 해도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콧대 높고 도도한 유럽 귀족의 정신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에디터 | 이기원 (lkw@noblesse.com)
글 |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 B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