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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로스타미와 눈 속으로의 산책

LIFESTYLE

세계적 영화감독이자 사진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첫 국내 갤러리 전시가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설원 위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운 유희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소울아트스페이스에 전시 중인 키아로스타미의 작품,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앞두고 영화계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진전이 열린다고 해 해운대 요트경기장 옆에 위치한 소울아트스페이스를 찾았다. 첫 국내 갤러리 전시라 오픈 전부터 기대가 컸고, 무엇보다 사진가로서의 그가 궁금했다.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체리 향기>,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특별상을 수상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등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품 덕에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이름은 익숙했지만, 사진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낯설었던 게 사실이다. 알고 보니 그가 사진가로 활동한 세월만 무려 40년. 뉴욕 현대미술관 PS1(MoMA PS1), 런던의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 토론토의 아가 칸 박물관(Aga Khan Museum) 등 굵직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 만큼 사진가로서도 큰 명성을 얻었다. 테헤란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이너, 북 일러스트레이터, 시인으로도 활동하며 예술적 기질을 발휘해온 가운데 사진은 그를 표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였고 가장 큰 애착을 보인 분야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의 전언에 따르면 “아버지는 생전에 ‘가장 열정을 가진 분야는 사진이고, 영화는 사진 찍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해왔다”고.

전시장 한편에서 상영 중인 키아로스타미의 유작 <집으로 데려다주오>.

영화감독인 그가 카메라를 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979년 이란혁명 당시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어떤 작업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그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필름에는 비 내리는 창밖 풍경, 눈 쌓인 새하얀 풍경 등 오직 자연만을 담아냈다. 한 인터뷰에서 “그 누구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고문일 수 없다”며 자연에 집중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자연을 테마로 한 많은 작품 중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하는 작품은 20년 넘게 촬영한 ‘스노우 시리즈(Snow Series)’다. 김선영 대표는 전시 작품 37점이 모두 같은 시리즈, 같은 사이즈의 흑백사진이라 디스플레이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지만, 자신이 느낀 감동을 관람객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 내용과 분위기에 따라 4개의 공간에 나눠 전시, 조화로운 디스플레이에 특히 공을 들였다고. ‘스노우 시리즈’는 순수함과 깨끗함을 상징하는 ‘눈’을 자아 성찰의 도구로 삼아 지속한 작업이다. 전시 작품은 하나같이 눈 쌓인 풍경이지만 각 프레임이 전하는 느낌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것은 눈부실 만큼 새하얀 장면인가 하면, 어떤 것은 진한 잿빛 그림자를 만들어 오후의 햇살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구름이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흐린 풍경이다. 마치 설원에서 펼쳐지는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운 놀이를 보는 듯하다.

1 ‘Snow No.4’, 2002   2 ‘Snow No.8’, 2002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사진 속 장소는 키아로스타미가 나고 자란 이란의 시골 마을이다. 작가는 강설이 내리는 날이면 새벽녘에 집을 나서 티끌도 찾아볼 수 없이 눈으로 완벽하게 뒤덮인 곳을 물색했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 속 눈은 공사장에 쌓인 모래를, 날카로운 철조망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즘을 전한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담은 새하얀 겨울 풍경임에도 그의 프레임에서 포근함이 전해지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터.
추상에 가까운 작품들은 그의 미니멀리즘적 영화 연출 방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작가 역시 자신의 사진을 최소한의 미학으로 자연을 찬양하는 하이쿠(일본 정형시의 일종)와 문인화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소울아트스페이스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 기간에 그의 영화 2편을 함께 상영한다. 마지막 유작인 단편영화 <집으로 데려다주오-Take Me Home>(2016년)와 그의 사진 작업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키아로스타미와 함께한 76분 15초>(2016년)가 그것. 작가의 시선이 담긴 영화와 사진으로 채워진 공간을 산책하듯 걷노라면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이번 전시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맞춰 9월 8일부터 10월 21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놓치지 말고 방문해보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터.

문의 051-731-5878

 

에디터 이도연(프리랜서)
사진 제공 소울아트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