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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여행법

LIFESTYLE

이 계절의 통과의례는 어디든 떠나야 한다는 것. 여행 좀 다녀본 이에게 ‘부산에서 4~5시간 안에 훌쩍 떠나기 좋은 곳’을 물었다. 그래서 지금, 타인의 취향대로 여행을 간다.

보홀의 알로나 비치.

보면 홀딱 반할_세부·보홀
여행자 |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마케팅본부 지배인 이동영

“세부를 스무 번 넘게 여행했다. 길게는 두서너 달, 짧게는 일주일 정도. 리조트, 스파, 망고. 내게 세부 여행의 목적은 늘 이 세 가지다. 혹자는 그 시간과 비용에 다른 곳도 가보라지만 갈 때마다 매번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 곳으로, 내게는 이만한 데가 없다. 결혼 전과 후, 아이를 낳고 3대가 함께 세부를 여행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세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든 품어주는 곳이라는 걸. 15년째 호텔리어로 일하다 보니, 여행지의 리조트는 거의 ‘시장조사’ 기준으로 선택하게 된다. 올 초 100m의 인피니티 풀을 자랑하는 두짓타니 리조트도 세부 막탄에 오픈했다. 또 떠나야 할 이유가 생겼다. 세부는 여행자의 취향과 목적에 따라 리조트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것이 매력이다. 관광과 휴양, 액티비티와 쇼핑 등을 한 번에 해결하는 것도 장점. 그러나 세부 여행에서는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풀 보드 서비스를 신청해 ‘지칠 때까지’ 쉬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다 두 시간 거리의 보홀로 훌쩍 떠나거나, 해가 떨어지면 야시장과 탑스 힐 야경을 즐기거나. 보홀은 최근에 다양한 리조트가 들어섰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비교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천혜의 자연환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알로나 비치, 맨 메이드 포레스트, 로복강, 초콜릿 힐 등에 몸을 맡겨보길. 미세먼지에 잔뜩 시달린 내 몸이 이 섬의 매력을 먼저 눈치챌 것이다.”

1 갓파바시 브리지.
2 가미코지의 여름 풍경.

아낌없이 주는 숲_ 나가노현 가미코지
여행자 | 북유럽 빈티지 가구 전시장, 미미화컬렉션 대표 정지헌

“부산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거리에 알프스가 있다? 스위스가 아니라 일본 나가노현의 가미코지 얘기다. 알프스의 빼어난 절경과 비슷해 ‘일본의 북알프스’라 불리는 이곳은 히다 산맥의 해발 1500m 고지에 위치한 오지 산악지대다. 가미코지 남쪽으로 향하면 ‘다이쇼(大正)’라는 칼데라 호수가 나오는데, 그야말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띤다. 물색없이 빠져들게 하는 물색. 호수에 비친 하늘과 산세는 자연에 안긴 인간이 한없이 겸손해질 수 있음을 실감케 한다. 가미코지에서는 꼭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해야 한다. 다이쇼이케(大正池)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는 호수 너머 장대한 숲을 지웠다 새기며,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펼쳐낸다. 삼림욕을 즐기며 산길을 걷다 보면, 500엔 정도로 1일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작은 호텔도 곳곳에 있다. 산행에 지친 몸을 온천탕에 뉘는 순간, 굳어 있던 감각이 녹진하게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천국이 코앞에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가미코지 여정에 꼭 넣는 것이 다카야마에 있는 기타니(Kitani) 공방을 찾는 일이다. 라이선스로 북유럽의 명작 가구를 자체 제작하는 곳. 일본 특유의 완벽주의 근성이 재현해낸 북유럽 명작 가구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훌륭하다. 일본의 작은 목가 마을 공방에서 생산한 덴마크의 핀 율 가구가 전 세계에서 판매된다는 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무언가에 ‘혼을 담았다’는 흔한 말의 기원이 어쩌면 이 공방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가미코지에서의 명료한 시간도, 공방 목 가구의 뭉클한 감촉도, 모두 숲에서 비롯한다.”

조선시대 반촌의 모습을 간직한 양동마을.

오래 봐야 예쁘다_ 경주 양동마을
여행자 | 독일 아트북 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의 국내 에이전시 디렉터 & 독립서점 반달북스 큐레이터 우탁

“‘무엇을 볼 것인가? 어디서 차 혹은 커피를 마실 것인가?’ 어디를 여행하든, 하루 일정을 이 두 가지 목적에 맞춰 움직인다. 계획은 간소하게, 일정은 하루에 하나만. 여행은 이렇게 해야 충분히 보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은, 휴가 시즌에 맞추거나 어떤 계기가 있어야 떠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을 하듯 여행을 ‘치를’ 때가 많다. 시간에 쫓기고 비용에 조급해지는 곳은 내가 떠날 곳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 보아 익숙하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조금씩 꺼내놓는 곳이 내가 사는 근처에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그런 곳이 경주다.경주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부산에서 차로 1~2시간 안에 훌쩍 떠날 수 있다. 즐겨 찾는 곳은 조선시대 반촌 마을인 양동마을.

3 백년찻집.
4 수령 약 550년의 향나무.

경주는 도시 전체가 신라시대 문화유산이라 양동마을의 풍경이 마냥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 역사마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큼 500년 넘는 시간이 마을 곳곳에 스며 있다. 종택, 살림집, 정자, 서원과 서당 등 기후 환경에 철저히 순응한 건물 형태와 유교 예법에 따른 가옥 구성은 선조의 순박한 정신을 가늠하게 하는 유형의 유산이다. 자연을 내리누르며 군림하려는 도심 풍경에서 벗어나 하늘을 들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복잡하고 불필요하던 일상의 찌꺼기가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양동마을에서 차로 40분 정도 내려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추령재 산중에 자리한 ‘백년찻집’도 자주 들르는 곳이다. 솟을대문을 지나 보이는 작은 구름다리, 풀꽃이 핀 정원이 매력적이다. 안채에 앉아 주인이 직접 내려주는 깊고 진한 전통차의 풍미를 즐길 때면, 마치 다른 세상에 뚝 떨어진 듯한 기분마저 든다.”

싱가포르의 대표 관광명소가 모인 도심.

도시 전체가 예술_ 싱가포르
여행자 | 현대미술을 다루는 아리랑갤러리 대표 신은영

“싱가포르는 여행자에게 프리패스 같은 곳이다. 미식과 쇼핑, 관광, 휴양, 액티비티 등 안 되는 게 없기 때문. 최근엔 부산~싱가포르를 연결하는 직항이 생겨 그 매력이 배가되었다. 여기에 싱가포르가 예술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도시라는 점을 꼽고 싶다. 현재 싱가포르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 허브인 홍콩의 위상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예술적 성취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헬릭스 브리지,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 에스플러네이드, 가든스 바이 더 베이와 마리나베이 샌즈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싱가포르 대표 관광명소 역시 현대건축의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싱가포르 국립미술관(내셔널 갤러리)과 길먼 배럭스 현대미술 단지까지 둘러보면, 예술 도시 싱가포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아시아권 현대미술을 볼 수 있는 국립미술관.

1920~1930년대부터 시청과 대법원으로 쓰이던 두 건물을 연결해 만든 국립미술관은 싱가포르, 한국, 인도네시아, 대만,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일본 등 8000여 점의 작품을 전시, 아시아권 현대미술을 아우른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군의 막사였던 길먼 배럭스 현대미술 단지는 유럽, 미국, 아시아권에서 온 갤러리가 모인 곳으로 싱가포르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싱가포르의 예술적 정취를 만끽했다면,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인 미식의 세계에도 발을 들여볼 것. 과거 영국군의 주둔지였던 뎀시힐의 이국적인 레스토랑과 카페, 글로서리 숍을 방문하거나 싱가포르의 유서 깊은 더 플러톤 베이 호텔에서 즐기는 근사한 한 끼 식사라면 여정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하다.”

 

에디터 손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