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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실에 달의 은빛을 매다는 곳

FASHION

2년여의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더욱 매력적인 공간으로 돌아온 까르띠에 파리 뤼 드 라 뻬 13번지 부티크를 찾았다.

아트리움. 건물의 수직축을 이루면서 여유로운 공간감을 제공한다. Lucie et Simon © Cartier

요즘엔 매장을 방문하는 일이 더없이 흥미롭다. 각 브랜드가 내놓는 갖가지 제품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매장이 한 권의 책처럼 혹은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매장은 그 브랜드나 제품의 DNA를 응축해놓은 장소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최근 새로 문을 여는 또는 다시 문을 여는 매장은 그 전과 다른 확장된 스펙트럼을 통해 브랜드의 일대기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그래서 더 눈여겨보게 된다.
까르띠에가 시작된 장소인 뤼 드 라 뻬(Rue de la Paix) 13번지 부티크의 리오프닝은 올해 초부터 기다려온 소식이었다. 드디어 10월 20일, 오픈 소식을 접하고 파리로 날아갔다. 매장이라는 특성상 한 번에 초대할 수 있는 VIP 수가 50여 명으로 제한된 리오프닝 행사는 공식 오픈 전 단 5일간 진행되었다.
오래도록 브랜드를 알아왔다고 생각하는 에디터가 까르띠에에 놀라는 점 중 하나는 ‘시대를 아우르는 능력’이다.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다. 과거와 현재의 병치가 아닌, 두 가지 요소를 융합해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야말로 까르띠에의 재능이라고 여겨왔다. 이러한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파사드와 계단 등은 살리면서 장식 모티브를 새롭게 해석한다든지, 역사적 인물이 사용하던 살롱을 현대식으로 장식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창조의 융합을 엿볼 수 있었다.

위쪽 레지던스에 자리한 팬더 월. Lucie et Simon © Cartier 아래쪽 쟌느 투상 살롱. Fabrice Fouillet © Cartier

까르띠에 역사에서 이곳은 런던의 뉴본드 스트리트, 뉴욕의 5번가 맨션과 함께 메종의 세 가지 뿌리와 세 가지 스타일의 원천인 동시에 템플이라고도 불린다(제네바의 매장도 템플이라 불리는데, 의미가 조금 다르다). 1899년 아버지 알프레드의 사업에 합류한 루이 까르띠에가 가족 사업의 기점으로 삼은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뤼 드 라 뻬에 터를 잡은 이래 이곳은 전 세계 예술가와 특별한 인물들이 교류하는 것은 물론 영감을 제공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까르띠에의 전설적 인물인 쟌느 투상(1887~1976)도 이곳에 집무실을 마련했다. 이미지, 헤리티지 & 스타일 디렉터 피에르 레네로는 “이곳은 모던 주얼리의 초석을 다지고 현대적 손목시계의 발명과 팬더의 탄생을 목격한 곳입니다”라고 그 의미에 방점을 찍는다.
레노베이션은 모이나르 베타유 에이전시와 스튜디오파리지앵 에이전시, 라우라 곤살레스의 협업으로 이루어졌고, 6층 건물은 유니버설하면서도 까르띠에 고유의 매력이 곳곳에 살아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6개 층 중 지상층부터 3층까지는 상업 공간으로, 그 위는 하이 주얼리 워크숍, 메종의 아카이브 그리고 레지던스로 이어진다.
블랙 대리석 외관의 전설적 파사드는 그대로 보존한 반면 입장하는 순간 부티크 뒤쪽에 자리한, 파리의 건물 안뜰에서 영감을 받은 아트리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트리움은 건물의 수직축을 이루면서 여유로운 공간감을 선사한다. 유리 지붕을 통해 전 층에 햇살이 쏟아지면서 다른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지상층과 1·2층의 레노베이션은 모이나르 베타유 에이전시가 맡아 완성했다. 워치메이킹과 빈티지 크리에이션이 선보이는 지상층에 자리한 역사적 살롱 두 곳에는 세심한 복원과 장식 요소로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시인 장 콕토에게 헌정한 살롱에서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학술원 회원 검을, 루이 까르띠에를 기리는 살롱에서는 그의 집무실을 재현해 희귀본 장서와 고문서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장 콕토의 시구(까르띠에, 태양의 실에 달의 은빛을 매다는 섬세한 마술사)는 아틀리에 미다베인에서 제작한 칠기 패널 위에서 찾을 수 있다. 지상층 오른쪽에 자리한 식물 모티브 난간이 인상적인 메인 계단은 쟌느 투상의 살롱으로 인도한다. 1933년부터 1970년까지 디자인 수장으로서 그녀가 사용하던 집무실이 있던 곳이다. 살롱 밖은 언약과 웨딩을 위한 공간이다. 2층은 하이 주얼리 공간으로 스페셜 오더를 위한 살롱이 자리하며, 파우나 앤 플로라 살롱에서는 메종의 주요 시대별 주얼리를 감상할 수 있다.

레지던스 공간. 문화 이벤트 등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고안했다. Lucie et Simon © Cartier

1912년과 1913년 당시의 부티크 모습. Archives Cartier Paris, Andre′ Taponier © Cartier

3·4층은 아트리움에서 이어지는 두 대의 승강기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 관리, 수선, 퍼스널라이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3층에는 주얼리나 워치에 인그레이빙하는 주문 제작 바와 산토스 프라이빗 살롱, 어린이들이 메종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까르띠에 데 프티(Quartier des Petitis)가 자리한다. 4층 하이 주얼리 공간에는 작업대 18개가 구비되어 있으며, 5층 일부 구역에는 메종의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다. 3층에서 5층까지 레노베이션은 스튜디오파리지앵 에이전시가 맡았다. 스튜디오파리지앵은 “파리 감성을 재해석하기 위해 파리의 하늘, 돔, 천장, 궁전의 조명 기구, 도보의 바닥, 오스만 스타일 등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5층과 최상층은 라우라 곤살레스가 디자인한 레지던스와 아카이브가 자리한다. 이곳의 인테리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고급스러운 장인의 공예품이다. 아름답게 수놓은 실크 벨벳 위 페인팅, 라우라 곤살레스·아틀리에 고아드·루시 투레가 공동 제작한 가림막, 전체가 유리로 된 화관 등등.
전체적 레노베이션은 공간을 채운 특별한 작품으로 매력을 극대화했다. 하이 주얼리 브레이슬릿에서 영감을 받은 유리 패널, 1943년에 선보인 앵무새 브로치가 연상되는 마드리드의 돋을새김 디테일, 아르데코 스타일의 화장품 케이스에서 영감을 받은 상하이의 칠기 제품, 팬더를 형상화한 모나코·뉴욕·두바이의 다양한 작품이 그 예다. 브랜드 특유의 장인정신과 노하우를 보여주기 위해 수십 명의 프랑스 예술 거장과 40곳에 달하는 워크숍이 한데 모인 것.
부티크가 더욱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철저히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까르띠에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전문 기업인 EODD와 함께 가장 까다롭다는 브리엄(BREEAM) 인증 과정에 참여했다. 이 인증은 운영 관리, 건강·웰빙, 에너지, 교통, 수자원, 자재, 폐기물 관리, 생태, 오염, 침수 관리, 혁신 같은 11개 기준을 고려해 측정한다. 까르띠에는 생태 기후 디자인과 효율적 단열, 녹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빗물 재생 및 재사용, 목재 벽 외장재와 금속 재사용을 통한 건축자재의 탄소 배출량 감소, 도심 생물 다양성 존중 등 활동을 통해 브리엄 인증에서 ‘매우 좋음’을 획득했다. 트렌드를 이끄는 프레스티지 브랜드로서 전 지구적 관심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가장 파리적이면서 글로벌한 접근 방식과 미래 지향적 스타일을 경험하고 싶다면 뤼 드 라 뻬 13번지를 방문해보자. 한 브랜드의 부티크가 아닌 당대 예술과 영감이 모이고 퍼져 나간 중심지로서 그 모습을 진득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13 Paix Paris’나 ‘13 Paix’라는 문장을 새긴 팬더 주얼리와 워치 세트 등 익스클루시브 피스와 아카이브 피스는 방문객을 위한 보너스나 다름없다.

장 콕토 살롱. 시인 장 콕토에게 헌정한 살롱이다.

메종을 위해 제작한 에티엔 레이사크의 부조. 회반죽한 새는 쟌느 투상이 디자인한 브로치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틀리에 고아드의 페인팅과 루시 투레의 자수 디테일을 더한 가림막 작업 과정.

 

에디터 이윤정(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까르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