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데만트, 이미지 너머 진실
현실 세계를 묘사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가가 조각하고 재창조한 사진이다.

토마스 데만트 작가. Photo by Brigitte Lacombe
토마스 데만트
1964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베를린과 LA를 오가며 활동하는 토마스 데만트는 세계적 현대사진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뮌헨 미술 아카데미(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München)와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akademie Düsseldorf),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Goldsmith College)에서 수학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퐁피두 센터, 테이트 모던 같은 세계적 미술관 컬렉션에 포함돼 있다.

〈Canopy〉, 2020, C-프린트, 디아섹, 180×14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tthew Marks Gallery / Sprüth Magers / Esther Schipper, Berlin / Taka Ishii Gallery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토마스 데만트는 조각과 이미지, 건축양식, 역사의 교차점을 포착해 탐구하는 독일의 사진작가다. 그는 1993년부터 사진을 찍을 목적으로 건축물을 만들었다. 뉴스 등 미디어에서 선별해 발췌한 이미지, 특히 정치 이슈에 관한 장면을 기반으로 종이와 판지를 사용해 실물 크기 모델로 재현한 다음 사진을 찍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렸다. 사진을 찍은 뒤 모델은 파괴한다. 그의 이미지는 겉보기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현실 세계와 진부한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재창조한 인공적 이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미묘하게 불안정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그가 종이와 판지로 재창조한 세계 사이엔 간극이 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찍은 사진을 재현해 다시 촬영하는 것, 자신이 만든 모델을 촬영한 후 파괴하고 사진만 남기는 것, 이 과정 자체가 그의 작업의 핵심이다.
지난해엔 영국의 건축사무소 카루소 세인트 존 아키텍츠(Caruso St John Architects)와 함께 덴마크 텍스타일 전문 브랜드 크바드라트(Kvadrat) 본사 건축물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3개의 파빌리온 [트리플 폴리(The Triple Folly)]를 종이 접시, 메모지, 종이 모자와 유사하게 구성, 마치 종이로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그동안 이렇듯 사진, 조각, 건축 요소를 자유자재로 담아내는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토마스 데만트의 첫 건축 프로젝트인 크바드라트 본사. 로엘 반 투르(Roel van Tour)의 〈The Triple Folly〉 필름 스틸(2022). ©Roel van Tour

〈Control Room〉, 2011, C-프린트, 디아섹, 200×3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tthew Marks Gallery / Sprüth Magers / Esther Schipper, Berlin / Taka Ishii Gallery © Thomas Demand, VG Bild-Kunst, Bonn
작가님은 건축과 조각을 공부했고, 조각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죠. 이후 사진 매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두 분야를 공부한 것이 작품 활동에 좋은 자양분이 된 듯한데,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조각품을 보관할 공간이 없었어요. 그런 실용적인 이유로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결국 수년에 걸쳐 제가 사진이라는 매체, 더 넓은 의미에서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죠. 여전히 조각품을 보관할 공간이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요.
프리즈 서울 기간에 서울에서 열리는 슈프뤼트 마거스(Sprüth Magers)의 팝업 전시 《가능성 있는 세계(Mondi Possibili)》에도 참여하고, 8월 9일에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Israel Museum)에서 작가님의 개인전 《역사의 말더듬이(The Stutter of History)》가 개막했습니다. 내년 2월 10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상하이 미술관 UCCA와 협력해 발전시킨 회고전이에요.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UCCA에서 선보인 전시의 순회전이죠. 한국, 일본과 달리 중국에서는 전시를 한 적이 많지 않은데 중국 관람객의 관심이 고맙더군요. 전시는 지난 20년 동안 제작한 작품 중 선별해 제 아이디어와 작업 진행 과정을 소개하는 자리예요.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길 바랍니다.
지난 2월 14일부터 5월 28일까지 파리 국립미술관 죄드폼(Jeu de Paume)에서도 순회전을 개최해 큰 관심을 모았죠. 저는 제 작품이 각 전시 공간에 침투하길 원하기 때문에 벽지, 영상, 건축적 요소를 활용해 작품의 이미지 너머까지 끊이지 않는 몰입형 경험을 선사합니다. 파리 전시에서는 작품을 통한 건축적 재해석 과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공간을 향유하는 방식을 재정의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파리에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왕립 튈르리 정원의 보석과도 같은 죄드폼 국립미술관이 익숙해요. 그 위치가 주는 느낌은 제가 2009년에 전시를 연 곳으로 하이드파크에 자리한 서펀타인(Serpentine)과 비슷하게 다가오네요.

UCCA에서 선보인 《Thomas Demand: The Stutter of History》 전시 전경. Courtesy of UCCA

UCCA에서 선보인 《Thomas Demand: The Stutter of History》 전시 전경. Courtesy of UCCA
[Control Room](2011) 등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의 배경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기 전 마지막 식사를 준비한 은신처, 1997년 다이애나 비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소 등 극적인 장소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장면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나요? 제 작품은 단순히 터널, 주방, 발전소 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직접 가보지 않은 제가 사람들이 구글에서 5초 안에 검색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정보를 알려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특정 사건이 일어난 당시 전 세계가 무엇을 공유하는지, 정치 세력이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어떤 이미지를 어떻게 확산하는지, 그리고 그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각자 어떤 정체성을 확립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특정한 일화의 이면에는 더 오래 지속될, 은유적인 또 다른 이미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작품을 통해 우리 삶에서 특정 장면을 재조명하고 다양한 경계를 탐구하시죠. 장면을 선택할 때 작가님만의 기준이나 철학,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다양합니다. 이미지마다 저만의 관심사가 담겨 있어요. 하지만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것에 관심이 갈지 알 수 없기에, 무언가 흥미로운 걸 찾지 못했을 때는 아예 작업을 하지 않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사진을 매개체로 사물이 세상에 들어온다고 믿어요. 우리가 현실이라 여기는 것은 사실 매우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구조를 지녔죠.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기술을 통해 주변 환경을 필터링하는데, 그중에서도 사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지배적이고 중요한 기술로 자리매김했어요.
작품을 구성할 때 무엇을 빼고 넣을지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해지네요.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남겨두지만, 그렇다고 왁스로 인물 모형을 만드는 마담 투소(Madame Tussauds)나 영화 세트장 같은 화려함을 의도하지는 않아요. 미적이고 외적인 포장은 부수적 요소일 뿐이니까요.
관람객은 작가님의 사진 작품만 보지만, 실물 크기의 세트를 촬영용으로 직접 제작하시죠? 세트를 만드는 데 두 달 정도 걸려요. 하지만 저는 인형의 집이 아니라 실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저는 미니어처가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 논의하고 싶습니다.
작품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벽지죠. 벽지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벽지는 이미지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캐나다 출신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제프 월(Jeff Wall)이 말했듯, 사진이 제 스튜디오의 창문이라면 벽지는 스튜디오의 외관(façade)입니다.

UCCA에서 선보인 《The Stutter of History》 전시 전경. Courtesy of UCCA

UCCA에서 선보인 《The Stutter of History》 전시 전경. Courtesy of UCCA
세트를 만들 때 종이와 판지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서지기 쉬운 재료들이에요.종이는 찢어지기 쉬워요. 누구나 매일 종이를 만지면서 촉각적이고 실용적인 경험을 하죠.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시적인 준비 과정에서 혹은 급히 필기를 하거나 상품을 교환할 때 종이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언어에는 유화 물감보다도 오히려 이 소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많을 정도예요.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볼 때 그 모든 특성과 우리가 그것에 부여하는 상징성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잖아요. 저는 그 점을 이용하고자 합니다. 또 수년에 걸쳐 모형, 가상현실, 데이터 시각화, 사진에 대한 개념 등이 많이 발전했어요. 이제 제 작품은 세상과 관계 맺기를 돕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구축하는 것 그 자체가 됐습니다.
작품 시리즈에 따라 인화 방식이 다른데, 무엇에 따라 달라지나요? 물론 이미지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지만 소재는 끊임없이 변해요. 그에 따라 새로운 기회도 생기죠. 저는 전문적으로 훈련한 사진작가가 아니라 백금인화(platinum print, 백금을 이용한 사진 인화 기법) 같은 특정 방식을 고집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어요. 대형 이미지의 인화 기술이 발전해 모든 것이 ‘백라이트로 밝힌 손때 묻은 휴대용 유리 조각’, 즉 스마트폰에 갇혀 있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고 리서치하세요?제가 집 앞에 앉아 무언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어떤 것은 반복되고 어떤 것은 새롭게 등장하겠죠. 그리고 둘 다 제 사고를 자극할 겁니다. 그러니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네요. 제가 뭔가를 찾는 게 아니라 뭔가가 저에게 오는 거예요. 영감의 원천을 안다면 전 오히려 그곳에 가지 않을지도 몰라요.
작가님은 늘 창작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죠. 그렇게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저는 명성을 얻거나 유명해지기 위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어요. 제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우고, 또 제 작품 활동이 예술의 범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죠. 저는 여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전보다 제 작업에서 더 큰 가능성을 보곤 해요.
멋진 얘기네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최근 화제인 가짜 뉴스에 대한 논의를 예로 들어볼게요. 저는 무려 30년 동안이나 가짜 뉴스를 다뤘습니다. 문화적 기법으로 어떤 모형(model)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점차 이루어지고 있지만, 저는 1992년부터 모형을 사용했거든요. 기억과 서사, 이미지 조작,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 사회에서 다루는 주제는 무궁무진한데, 저는 작업을 통해 수년 동안 이런 주제를 다뤘어요. 그렇다고 제가 천재라거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제 작업이 여전히 우리 모두 공유하는 동시대의 고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요. 저는 추상적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까요.
최근엔 어떤 작업을 하세요? 또 『아트나우』 독자에게 올해 준비 중인 전시나 프로젝트를 공유해주시겠어요?얼마 전 덴마크에 제 첫 번째 건축 작품인 3개의 파빌리온 〈트리플 폴리〉를 지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죠. 이스라엘 건국 75주년을 기념하는 커미션도 얼마 전에 마쳤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매우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라 제 이미지에도 그 긴장감이 생각보다 많이 반영됐더라고요. 2024년에는 미국 휴스턴 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MFAH)에서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에요. 그 후에는 대만 타이베이를 순회할 예정이니 한국 관람객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년엔 뉴욕과 베를린에서 갤러리 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슈프뤼트 마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