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떠오르는 갤러리스트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철골 구조물을 품은 오래된 건물에 디자인 갤러리 시너스가 들어섰다. 실험과 사유가 가득한 독창적 큐레이션을 통해 파리 디자인 신의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감각적 공간 속으로.

지난해 진행된 전시 〈Then And Now〉로 연출한 갤러리 전경.
파리 20구 메닐몽탕 거리의 한 슈퍼마켓 옆, ‘시너스 갤러리(Sceners Gallery)’라는 작은 명패와 함께 아담한 검은색 철문이 보였다. 벨을 눌러 문이 열린 뒤 계단을 오르면 문 밖 장면과는 동떨어진 이질적인 공기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철제 트러스가 그대로 드러난 시간의 흔적을 품은 이곳은 전통적 화이트 큐브 갤러리의 격식을 거부한 채 한 시대의 유산과는 또 다른 시대의 감각이 충돌하고 다시 교차하며 새로운 미학을 창조해낸다.
2024년 말, 시너스의 등장은 파리 디자인 신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높은 천장의 로프트 구조와 곳곳이 떨어져 나간 콘크리트 벽, 이를 받치고 있는 철골 구조물(1909년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했다)의 건축적 특별함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산업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특별한 공간을 알아본 두 명의 공동대표, 조너선 해대드(Jonathan Haddad)와 다비드 아틀랑(David Atlan)은 완전한 레노베이션 대신 오히려 날것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 안에 다양한 시대의 감각을 입히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마치 버려진 구조물 같았어요. 현재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갑갑한 구조인 데다 먼지로 가득했죠. 하지만 철골 구조와 유리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순간 이 특별한 건축물의 결을 존중하면서 작품과 공간이 공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그려졌죠. 그렇게 운명처럼 4시간 만에 계약서에 사인했어요.”
건축가이자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조너선 해대드와 금융계 출신의 다비드 아틀랑은 1년 반이라는 시간을 거쳐 작년 하반기에 공식적으로 갤러리 문을 열었다.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하지만 빈티지 컬렉터블 가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방문 가능하며, 직접 작품을 체험하는 것은 물론 충분한 관람 시간을 두고 자유롭게 디자이너와 가구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처럼 고객 한 명 한 명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독창적 갤러리 문화를 형성하고 싶은 것이 젊은 두 대표의 바람이다.

갤러리 공동대표 조너선 해대드(우)와 다비드 아틀랑(좌). © Victor Jacques
시너스에서 선보이는 가구와 오브제는 시대별로 나누거나 디자인 완성도를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브제를 특정 시기나 디자이너 이름으로 구분하지 않아요.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떻게 감각과 관계 맺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곳에는 1920년대 아르데코 탁자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책상, 15세기에 만든 일본 도자기, 릭 오웬스의 콘크리트 의자를 만날 수 있다. 유럽 근대 디자인의 역사와 아방가르드의 실험 정신, 그리고 21세기 기술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며 각각의 오브제는 고립된 작품이 아닌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구성 요소가 된다. 관람객은 정해진 동선 없이 무의식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면 된다. 빛과 그림자, 재료의 온도, 바닥 감촉, 심지어 공기 흐름까지 전시에 포함되는 구조인 셈이다. 해대드는 이를 “시각적 관람이 아닌 촉각적 경험”이라고 말하며 파리의 다른 갤러리와 차별화된 공간이 될 거라고 자신했다.

왼쪽 장 드고텍스의 회화 작품 ‘Ecriture’(1964)와 지나이 사카타(Jinnai Sakata)의 테라코타 디시, 1905년 제작한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 구스타프 시겔(Gustav Siegel)의 플레더마우스 체어를 매치한 큐레이션이 돋보인다. © Omri Roengart
오른쪽 아이코닉한 브라질 가구 브랜드 포르마(Forma)의 1955년 리버서블 암체어.
이러한 철학은 전시 큐레이션에서도 잘 드러난다. 올해 3월에 시작해 6월 14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저 너머에서의 메아리(Echoes from Elsewhere)>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에 맞춰 정렬된 컬렉션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원과 의미를 지닌 오브제가 마주하며 사유의 기류를 만든다. 사물의 존재감이 작가 이름보다 우선시되는데, 전시에 등장하는 도자기·금속·목재·종이 등의 재료는 제각기 다른 역사와 기능을 지니지만 서로 응시하며 조용한 대화를 형성한다. 일본의 무명 장인이 만든 고대 도자기는 장 드고텍스의 해체된 캘리그래피와 함께 공간의 여백을 채우고, 조르지 잘스주핀의 유기적 곡선과 장 프루베의 구조적 합리성이 각자의 경계를 탐색한다. 전시 제목처럼 메아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지금 이곳에서 울리는 감각적 파편으로 작용하는 것. 이 메아리는 시간과 문화, 기능과 장식의 경계에서 울려 퍼지며 각각의 작품에 반응하고 본질에 대해 묻는다. 이렇듯 시너스의 전시 방식은 오브제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의 동선, 눈높이, 움직임, 관람 시간까지 감각적으로 고려한 연출을 통해 완성된다. 오브제는 단독으로 놓이는 대신 구조물처럼 서로 기대고 밀어내며 상호 유기적 형태로 작동한다. 갤러리의 조명과 그림자, 자연광 유입, 심지어 바닥 마모 상태까지 작품의 일부로 흡수되는 것. 이러한 방식은 갤러리를 단지 전시장이 아닌 하나의 살아 있는 구조물로 전환하며, 관람객은 이를 통과하는 경험 속에서 감각적이고 능동적으로 전시에 참여하게 된다.
시너스는 지리적으로 파리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다. 마레, 생제르맹 같은 고급 갤러리 밀집 지역이 아닌 외곽에 자리 잡은 것 또한 두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된 결과다. 해대드와 아틀랑은 이러한 주변성이 오히려 기회라고 설명한다. “도시 중심의 규범과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야말로 보다 자유롭게 실험하고 실패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변두리에서 다른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이 언젠가 중심을 흔들 수 있기를 바라요.” 중심이 아닌 곳에서 새로운 리듬과 언어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오늘날 시너스는 파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인 갤러리 중 하나로 성장했다. 철학적 기획과 실험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파리 동쪽 외곽이라는 지리적 맥락을 오히려 창조적 에너지로 바꾸며 차세대 디자인 신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과거 구조 위에 현재 사유를 쌓고 미래 가능성까지 엿보는 이곳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감각과 서사가 공존하는 미적 장치이자 오래 기억될 장면이다. 시너스는 그렇게 과거 철골 아래서 새로운 장면을 펼쳐 보이며 다음 시대의 감각을 써 내려가고 있다.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글 양윤정(파리 통신원)
사진 잔 리에주아(Jan Liégeo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