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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 CNSMD de Paris

LIFESTYLE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배경인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은 근현대 클래식 음악의 요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립 이후 200년 동안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해내며 지금도 여전히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1990년 빌레트 지구로 이전한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의 외관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은 1795년 설립한 세계 최초의 음악원(conse-rvatory)이다. 200년이 넘는 음악원의 역사는 곧 프랑스 음악의 역사라 할 정도로 클래식 거장을 많이 배출했는데 베를리오즈와 드뷔시, 라벨, 메시앙, 뒤프레 등 걸출한 졸업생은 물론 포레, 생상스, 블랑제 등의 교수 명단만 봐도 프랑스 음악의 계보가 한 번에 나온다.
프랑스 음악의 요람인 만큼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지원과 관심은 전폭적이다.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뛰어난 소수의 학생을 선별하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구조다. 한 학생당 2만 유로(약 3500만 원)가 넘는 연간 교육비를 모두 나라에서 부담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입생 우선으로 기숙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일부 기숙사에서는 피아노 전공자에게 그랜드피아노를 빌려주는 등 학생을 위한 복지가 남다른 점도 이곳의 장점이다.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은 현재 파리 북동쪽 19구 라빌레트(La Villette)에 위치해 있다. 본래 음악원은 파리 8구의 마드리드 가에 설립했으나 1990년 미테랑 대통령의 지시로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한 현재 장소로 옮긴 것. 파리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빌레트 공원은 물론 파리의 유명 콘서트홀 중 하나인 시테 드 라 무지크(Cite de la Musique)가 지척에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열람이 가능한 대규모 음악 도서관 CDMC와 파리를 대표하는 악기 박물관, 학생들의 아파트와 음악원이 하나의 큰 단지에 모여 있어 이 모든 혜택을 누리기에 더없이 편리하다.
학생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열거할수록 놀랍다. “현악, 관악 전공생의 경우 ‘오케스트라 세션’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합니다. 매년 피에르 불레즈를 비롯해 쿠르트 마주어, 정명훈, 세이지 오자와 등 세계적 지휘자가 학생을 이끌고 함께 연주하는 수업인데 최근에는 정명훈 지휘자가 이끄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함께 공연하고 연주 여행을 떠나기도 했어요. 그 외에도 여러 혜택이 있어요. 관악 전공생에게는 재학 중 악기의 리드와 피스를 제공하고 작곡 전공생에게는 작품을 연주한 후 녹음해주죠. 프랑스 방식으로 교육하는 음악 분석, 이론, 초견 수업은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도 학생들이 느끼는 자부심 중 하나예요.”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을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은지 씨의 말이다.
라빌레트 지구로 옮기며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이 꾀한 변화 중 하나는 재즈와 음향, 음악 교육, 무용 전공을 개설한 것이다. 그래서 학교 이름도 ‘Conservatoire National Superieur de Musique et de Danse de Paris(CNSMDP)’로 바꿨다.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은 단순히 재능만 보기보다 현재 다소 덜 완성되었더라도 ‘탁월함’ 또는 ‘잠재력’을 지닌 학생에게 좀 더 문을 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지원자의 연령 제한도 엄격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하프, 오보에 전공은 21세 이하, 성악과 비올라, 타악기, 피아노 반주와 즉흥연주 전공은 26~27세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지원 횟수도 3회로 한정한다. 세 번 떨어지면 더 이상 입학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셈.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을 빛낸 음악인
샤를 카미유 생상스(Charles Camille Saint-Saens, 1835~1921년)_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모음곡 ‘동물의 사육제’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생상스는 13세부터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 1845~1924년) 생상스를 사사한 포레는 ‘달빛’, ‘레퀴엠’ 등을 남긴 대작곡가로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출신은 아니지만 교수로 재직하며 라벨, 슈미트, 에네스코 등의 대작곡가를 길러냈다.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년) 바그너로 대표되는 독일음악이 후기 낭만파 음악의 기조를 만들 때 반대편에서 ‘프랑스 음악’의 상징으로 꼽혔던 획기적인 인물.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년) 14세 때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화성법을 배웠다. 드뷔시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라벨만이 구축한 프랑스 고전음악의 명확하고 간결한 형식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년) 11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 뒤프레와 뒤카 등에게 작곡과 오르간을 배운 그는 35세에 음악원 교수로 부임해 불레즈 등의 수재를 배출했다.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년~) 메시앙에게 화성학을 배우고 1945년 Premier Prix를 받으며 졸업했다. 현대프랑스음악의 사조를 이끄는 인물.

학교 이전 후 2008년에는 200여 년 동안 고수해온 학제 시스템도 바꿨다. 그전에는 학사와 석사 과정을 구분하지 않고 3~5년 과정의 학제 시스템 안에서 3년 이상 교육을 받은 후 능력에 따라 졸업이 가능했다. 졸업 자격 시험에서 ‘Premier Prix(1등상)’를 받았던 피아니스트 임수연은 이렇게 말한다. “졸업자격시험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졸업 예정자 3분의 1이 ‘Premier Prix’를 받고, Second Prix(2등상), Troisieme Prix(3등상)를 받게 되는데, 시험을 두 번 볼 때까지 순위에 속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퇴학이었어요.” 최근에는 글로벌 종합대학에 비준해 학사(3년), 석사(2년), 박사(Licence, Master, Doctorat) 과정으로 학제를 변경했다.
타교에 비해 한국 학생은 매우 적은 명문이지만 음악원 출신 한국인 연주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실내악단 가뭄에 시달리는 국내 음악계에 등장한 ‘트리오 제이드(Trio Jade)’의 이효주, 박지윤, 이정란도 모두 이 음악원 출신. 작곡가 류재준에게 “밀리언달러 트리오가 나타났다”는 극찬을 받은 이들은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일찌감치 최고의 앙상블로 다듬어졌다.
오랜 역사와 자랑할 만한 전통이 있다는 것은 후배 음악인에게 자부심이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피에르 푸르니에, 모리스 장드롱, 앙드레 나바라, 자클린 뒤 프레, 아스토르 피아졸라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은 학생으로, 교수로 이 학교에 흔적을 남겼다. 마스네, 드뷔시, 메시앙, 라벨, 포레, 생상스, 불레즈, 블랑제 등 세기의 음악가들은 이 학교를 일으키고 이끌고 발전시켜왔다. 서양 클래식 음악사에 프랑스 음악이 굵고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의 공이 절대적이다. 무엇보다 최고(最古)의 역사와 최고(最高) 수준의 교육 시스템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지영(음악 칼럼니스트)

창립 연도 1795년 학과 구성 무용, 교육학, 톤마이스터, 음악(고전·현대음악 전공의 기악과, 고음악 재즈와 즉흥연주, 성악과, 작곡 이론과 작곡, 오케스트라 지휘, 음악학과 분석) 한국 학생 비율 2014년 음악 전공 기준 피아노 5%, 현악 10%, 관악 10%, 작곡 5~7% 등록금 없음(프랑스 정부에서 전액 지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_ 이효주, 박지윤, 이정란

밀리언달러 트리오가 나타났다
2005년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재학 당시 ‘우정을 다지기 위해’ 이효주, 박지윤, 이정란이 모여 만든 트리오 제이드와의 5문 5답.

이효주(피아니스트)
1 2000년 러시아 모스크바 콩쿠르에서 1등을 했는데, 심사위원인 마리안 리비츠키가 프랑스에 초청하면서 프랑스를 자주 오가기 시작했다. 당시 내 연주를 본 자크 뤼비에 선생님이 강력하게 입학을 권유하셨다.
2 라벨과 드뷔시, 포레를 선배로 배출한 학교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기초 과정을 엄격하게 공부해야 하는 학교로 초견, 시창 청음, 음악사, 악보 분석, 건반 화성, 화성학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통과할 때까지 재시험을 봐야 했고 이수하지 못하면 피아노과도 졸업을 할 수 없었다. 음악가로서 필요한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었고 피아노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3 자크 뤼비에 선생님이다. 지금도 연주하다 답답하거나 잘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이메일이나 전화로 묻는다. 피아니스트는 언제나 연습실이 가장 문제인데 선생님은 언제든 당신 집에서 연습할 수 있게 해주셨고, 이따금 식사도 직접 만들어주는 마음 따뜻한 분이었다. 그곳에서 공부하며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좀 더 독립적으로 변했다.
4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출신이에요”라고 하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유럽에서 가장 전통 깊은 학교로 기초 공부가 워낙 엄격한 편이라 상대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으니 음악가로서 믿을 만하겠구나’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 같다.
5 누구나 학창 시절은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시기인데, 그 시기를 파리에서 같이 지냈기 때문에 굉장히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서로 잘 안다는 것은 음악적 결속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정란(첼리스트)
1 2서울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스무 살에 파리로 갔다. 필리프 뮐러 선생님께 사사한 양성원 선생님의 영향이었는데, 나도 뮐러 선생님의 클래스에 들어가 그 역사를 잇고 싶었다.
2 우리가 아는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는 다 이 학교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그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우리 학교는 학생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행했다. 내가 입학하자마자 받은 첫 오케스트라 수업이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와의 세션이었는데 그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또 파리 오케스트라나 라디오 프랑스 등 프랑스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아카데미 시스템을 구축해 원하면 오디션을 거쳐 오케스트라의 객원 단원으로 일할 수 있고, 그것을 학교 수업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제도였다.
3 올해 초 은퇴하신 필리프 뮐러 선생님이다. 힘들 때 고민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을 정도로 선생님을 많이 의지했다. 지난 4월 선생님의 OB, YB 제자들과 첼로 앙상블 연주를 했는데, 그런 멋진 분을 스승으로 둘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는 늘 등수와 점수에 연연했는데, 프랑스에 가서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이 등수보다 중요함을 알았다. 첼로 뿐 아니라 보다 넓은 음악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만큼 내 음악도, 세계관도 깊어졌다.
4 명문 학교라 상대가 연주를 듣기도 전에 내 실력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지윤(바이올리니스트)
1 예원학교 3학년 재학 당시 나를 가르치신 양성식 선생님의 추천으로 가게 됐다. 만 16세였다.
2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은 현대음악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작곡과 학생들과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에센바흐, 마주어, 정명훈, 크리빈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함께 연주할 기회가 많다. 방대한 실내악 교수진이 있어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실내악 지도를 받을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로 나가기 전에 졸업생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사회생활을 미리 맛볼 수 있다. 나도 오디션을 통해 졸업생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1년 하며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3 로랑 도가레일 선생님께 6년 넘게 가르침을 받았다. 표현하는 데 부끄러움이 많고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나에게 항상 최우선으로 온전한 음악 만드는 걸 강조하셨다. 바쁜 스케줄에도 레슨을 취소하거나 늦는 법이 없는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성실한 음악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조교수 선생님께 레슨을 받는 점이 특별한데, 교수님께 음악적 가르침을 받고 조교수님의 레슨을 통해 기초를 다지는 식이었다.
4 유학 생활 중 힘들고 외로울 때 서로 위로하며 좋은 시간을 함께 나눈 추억이 많다. 우정을 밑바탕으로 서로 신뢰하며 함께 만드는 음악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트리오 제이드는 그런 면에서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연습 중 수다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건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웃음)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의 근거있는 자부심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수석 주자로 활동하던 중 프랑스 국비장학생으로 발탁,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과 에콜 노르말, 베른 음악원을 거쳐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피호영 교수를 만났다.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은 1795년에 개원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를 다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명문 학교를 말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역사죠. 절대적 시간의 축적을 통한 경험과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훌륭한 졸업생을 많이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긴 역사 덕분이었죠.
스물네 살에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 입학했는데 사실 열두살 때 그곳에서 유학할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당시 양해엽 교수님께 배우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그곳 출신이었어요. 당시 프랑스 대사관에 작은 연주홀이 있었는데, 하루는 제게 그곳에서 연주를 하라고 하셨어요. 근데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교수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제라르 폴레가 거기 계셨더라고요. 제라르 폴레는 저를 파리로 데려가고 싶다 했고, 그렇게 유학 이야기가 나왔죠.
그런데 왜 안 가셨나요? 그때가 1970년대 초반이었어요. 유학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었고, 제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프랑스 가정으로 입양되어야 유학이 가능한 상황이었어요. 당연히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고,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어요. 만약 그때 제가 입양되었다면 지금 저는 프랑스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겠죠(웃음).
그래서 뒤늦게 가신 거군요. 그때도 양해엽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셨나요? 네. 졸업하고 서울시향에서 활동하던 중 선생님께서 1984년 봄에 갑자기 전화를 주셨어요. “국비 장학생이 되었으니까 우선 파리로 가라”고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매해 분야별로 국비 장학생을 뽑아 해외에 유학을 보내는 제도가 있었어요. 저는 특별히 프랑스에서 3년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주셨죠.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학교의 역사와 선배들의 리스트를 보면 내가 그 학교에 몸담았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또한 프랑스는 예술에 대한 조기 교육이 일찍부터 이뤄진 나라예요. 교육 자체가 굉장히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조기 입학이나 월반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입학 연령 제한이 있죠. 바이올린은 스물한 살까지만 입학이 가능했는데, 저는 당시 스물네 살로 엄격히 따지면 입학이 불가능했죠. 그런데 외국인이라는 걸 감안해주신 것 같아요. 재학 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 하나는 저랑 열 살 차이가 났어요. 음악원에서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그곳만의 독특한 커리큘럼은 뭔가요? 일단 입학하면 시창 청음 과목을 수강해야 하는데, 수업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배운 건 유치원에서 동요 부르는 수준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대학교에서 다 배우고 갔는데도 첫 번째에 패스하지 못하고 다음 해에 통과했어요. 음악 분석도 필수였고, 무엇보다 초견(악보를 보고 짧은 시간 안에 곡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시해서 시험을 많이 봤어요. 대기실에서 곡을 받은 후 10분 만에 연주를 해야 해요. 초견은 프로 연주자로 활동할 때 특히 필요한 능력이라 졸업 후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국내에는 그런 수업이 별로 없나요? 있는데 수준이 높지 않죠.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전공 외에 교양과목 등 신경 쓸 것이 많은데, 음악원에서는 음악만 배우죠. 그것이 결국 전문가를 길러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걸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은 긴 역사를 통해 인지했고, 실제 훌륭한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이를 증명해냈습니다.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한 앙상블이 있다고 들었어요. 네.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학생들과 함께 만든 앙상블 유니송(Unisongs, 하나의 소리)이에요. 1997년에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재학생 11명이 모여 시작한 자선 모임으로 교민을 대상으로 음악회를 열곤 했더라고요. 5년 전에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서울에서도 해보자고 제안해서 매년 한 번, 여름방학인 7월에 공연하고 있어요. 지금은 25명 정도 되는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7월 25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섭니다.

에디터 |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 안지섭, 김보라 디자인 | 이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