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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감히 정의할 수 없는

ARTNOW

20세기 초, 예술계 전반에서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성행하면서 유럽 예술은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현대 추상회화를 선도한 파울 클레가 있다. 10월 1일부터 내년 1월 21일까지 스위스 바이엘러 재단에서 그를 주목한 전시가 열린다. 하지만 스위스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아트나우>와 함께 앉은자리에서 그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으니까.

화가이자 판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년)는 1879년 12월 18일 스위스 뮌헨부흐제의 어느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에서 다양한 표현 요소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음악에 노출된 가정환경이 한몫했으리라. 음악이 그의 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지만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여행이다. 아프리카와 이탈리아로 떠난 여행은 그의 시각적 감수성을 깨웠고, 작품 세계에도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는 1902년 피아니스트 릴리 스텀프(Lily Stumpf)와 결혼해 독일 뮌헨으로 이주하면서 현대미술 신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10년대부터 뮌헨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아방가르드 전시에 참여하며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나간 파울 클레는 청기사파, 신분리파, 바우하우스 같은 다양한 사조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특정 예술 사조나 화풍으로 규정할 수 없는 작가다. 모든 미술 사조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은 파울 클레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Hilterfingen, Ink on Paper, 9.5×16.9cm, July 19, 1895

파울 클레의 부모님은 그가 음악가가 되길 원했다. 그는 실제로 어린 시절 음악에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이미 10대에 자신의 진로를 미술가로 결정하고 이후 쭉 미술에 매진했다. 그를 추상화 작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많으나 초기엔 사회를 풍자한 캐리커처, 판화, 선화, 드로잉을 주로 선보였다. 특히 드로잉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베른주의 힐터핑겐(Hilterfingen) 마을 풍경을 잉크로 그린 이 드로잉도 그의 수준급 묘사력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완성한 당시 그의 나이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 이후 추상화 작품에서 드러나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안정적인 구도는 탄탄한 드로잉 실력이 바탕이 됐다. 파울 클레가 컬러에 몰두하기 전 1980년대 후반에 제작한 드로잉과 1900년대 초의 에칭 작업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거 소장하고 있다.

Red Balloon, Oil (and Oil Transfer Drawing) on Chalk-primed Gauze, Mounted on Board, 31.7×31.1cm, 1922

뮌헨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1914년에 동료와 함께 아프리카 튀니지로 떠난 여행은 파울 클레의 작품 세계에 큰 전환점이 됐다. 이때 튀니지의 풍경을 보고 색채에 눈뜨면서 그의 작품에서 컬러가 중심이 된 것. 이후 계속해서 색채를 다양하게 혼합해 강하게 시선을 끌어들이는 밝은 톤의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또 초기의 판화나 드로잉과 달리 점차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상징을 드러내며 추상화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풍선, 나무, 집 같은 고유의 모양을 드러내면서도 원, 사각형, 삼각형 등 기하학 형태로 승화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구상화와 추상화 양식을 동시에 취하는 독창적인 추상 언어를 구축했다. 빛바랜 듯한 색채도 이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Portrait of Mrs. P. in the South, Watercolor and Oil Transfer Drawing on Paper, with Gouache and Ink on Paperboard Mount, Sheet: 37.6×27.4cm, Mount: 42.5×31cm, 1924

1924년 여름 파울 클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해에 제작한 이 작품이 말해주듯 시칠리아에서 마주한 황금빛 태양과 붉은 노을은 튀니지 여행과 마찬가지로 파울 클레의 작품에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을 종이에 그대로 옮긴 듯한 붉은색과 오렌지색의 활용은 이전 작품에선 볼 수 없는 대담함이다. 그는 주인공의 모자를 삐뚤게 그려 신분을 짐작할 수 없게 했고, 가슴에는 하트 문양을 더해 생명력을 상징했다. 이 문양은 그가 이 시기 작품에 종종 활용한 이미지로, 때로는 입, 코, 몸통에 유사한 모양을 그려 넣기도 했다. 작품 표면에 퍼져 있는 어두운 얼룩도 파울 클레가 자주 사용한 전사 기법으로 완성했다. 구상화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마치 카툰처럼 코믹하게 그린 초상화도 그의 전매특허 스타일이다.

Flowering, Oil on Priming on Canvas on Stretcher, 81.5×80cm, 1934

파울 클레의 작품은 스타일, 테크닉, 주제, 재료 면에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모자이크 패턴이 마치 물결처럼 흐르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이 작품은 그가 색채의 명암과 채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형태와 색채의 움직임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이 작품처럼 형태뿐 아니라 색채를 작품의 주요 구성 장치로 사용하면서 점차 고유한 추상화의 틀을 구축했다. 색의 명암과 채도를 달리하며 색 자체로 그림에 리듬과 숨을 불어넣어 색채 활용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 이 시기에 그는 컬러 자체의 고유한 성질과 순수성을 탐구했으며, 색채를 정신성과 영혼, 심리를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해 추상화에 정신성을 담아냈다.

Signs in Yellow, Pastel on Cotton on Colored Paste on Burlap on Stretcher, Original Frame Strips, 83.5×50.3cm, 1937

파울 클레가 죽기 3년 전 완성한 이 그림은 말기 작품 중에서도 컬러감과 율동감이 돋보이는 명작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을 다수 보유한 바이엘러 재단도 이 작품을 대표 소장품으로 인정할 정도. 그는 작품 전반에 음악적 구조를 대입, 캔버스에 율동적인 선과 색채를 얹어나가며 규칙과 불규칙 사이를 조율했다. 193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기호를 주로 표현하면서 특히 선과 도형의 리드미컬함이 도드라졌다. 일정한 선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무작위로 형상을 얹어나가며 완성한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듯 그에게 캔버스는 곧 악보였고, 물감은 음표나 마찬가지였던 것. 그는 194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듬과 패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캔버스에 다양한 색조와 율동감을 드러낸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제공 바이엘러 재단,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