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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듀오

LIFESTYLE

운명적으로 가족이 되었고, 어쩌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되었다. 대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홍세영·홍기쁨 부녀와 부산에서 빵을 만드는 정복식·정호연 부녀. 이들은 가족이라 가능한 환상의 호흡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코디언 연주자 홍기쁨과 홍세영 교수(왼쪽부터)

아코디언은 추억이다
아코디언 연주자 홍세영·홍기쁨 부녀

아코디언은 추억의 악기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시기에 서민의 애환을 달래는 대중음악에 쓰였고, ‘섬집아기’와 ‘과수원길’ 등 동요를 부르던 음악 시간에 쓰이기도 했다. 추억을 소환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아날로그적인 그 소리. 계명대학교 작곡과를 나와 현재 대구예술대학교 작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홍세영 교수가 아코디언을 본격적으로 연주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0년 초, 한 병원의 말기 암 센터에 있는 환우들을 대상으로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병동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많은 것을 보고, 문득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위해 잠시 배운 아코디언을 떠올렸죠. 아코디언 연주로 어르신들이 젊고 건강한 시절을 떠올리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음악이 지닌 치유의 힘을 몸소 느낀 홍세영 교수는 지금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봉사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의 딸 홍기쁨 역시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봉사 활동을 따라다니며 점점 아코디언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처럼 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한 후, 졸업할 무렵 본격적으로 아코디언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술적 습득이 완성된 스물아홉 살에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와 달리 저는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고자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국내엔 아코디언 악보란 것이 거의 없어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등과 협연하려 해도 아코디언이 포함된 악보가 없으니, 작곡을 전공한 제가 모두 새로 편곡해 악보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업이 참 만만치 않아요.”
그럼에도 홍세영·홍기쁨 부녀는 1년에 크고 작은 공연을 20~30회씩 소화하며 아코디언의 매력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클래식부터 대중음악, 동요, 성가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 멜로디와 반주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 전기를 쓰지 않아 실내외 어디서든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 악기 사이즈에 비해 사운드의 볼륨이 매우 커서 아코디언만으로 야외에서 완벽한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 등 홍세영·홍기쁨 부녀가 밝히는 아코디언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여기에 이들만이 발휘할 수 있는 매력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연주할 때의 시너지다.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읽는 가족이라는 관계. 그렇기에 부녀의 앙상블은 그 어떤 연주보다 울림이 크다. 그것이 세대를 아우르고, 시대를 관통하며, 정서를 공유하기에 충분할 만큼.

겐츠베이커리 정호연 대표와 정복식 실장(왼쪽부터)

빵은 멋이다
겐츠베이커리 정복식·정호연 부녀

부산의 3대 빵집 중 하나, 15년의 역사, 7개의 직영점, 180여 명의 직원, 200평이 넘는 제빵 공장, 그리고 제빵 경력 40년 차인 창업자 아버지와 올해 31세로 대표직에 오른 딸. 겐츠베이커리의 대략적 히스토리는 이렇다. 흥미로운 점은 아버지가 실장, 딸이 대표 자리에 있다는 것. 그러나 직원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매장을 분주하게 오가는 정호연 대표는 자신의 자리가 큰 의미는 없다고 말한다. 지금 겐츠베이커리 운영의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고 있기 때문. 그녀는 베이커리 오픈 시간인 오전 6시 30분부터 마감 시간인 오후 11시까지, 사무실과 각 지점 그리고 빵 공장을 오가며 24시간 대기조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영국에서 10년 동안 건축 디자인을 전공하고, 작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어요. 무남독녀라 언젠가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일을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40여 년간 쉴 틈 없이 일만 해온 아버지가 많이 지쳐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차마 모른 척,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계속할 수는 없었어요.”
작년에 대표직에서 물러나 오직 빵 생산과 신제품 개발에 매진하는 아버지 정복식 실장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된 딸 정호연 대표를 두고 “이심전심의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31세의 딸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온전히 신뢰하고 물심양면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200평이 넘는 제빵 공장을 신설했습니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동래점, 센텀시티점, 창원점 등에 효율적으로 겐츠의 맛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지요. 저만 생각했다면 이렇게 규모를 키우진 않았을 겁니다. 단순히 빵 가게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베이커리 ‘사업’을 하려고 보니, 준비하고 갖추어야 할 서류와 조건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 벤처기업 자격으로 지원금을 얻고, 까다로운 식품 관련 규정에 맞게 공장 시설을 갖추고, 백화점 같은 협력업체에 각종 공문서를 보내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런 것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 일을 다 해내는 딸이 대표 자리에 있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호연 대표의 건축 디자인 전공 경력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겐츠베이커리를 알리는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입점할 때, 기존의 베이커리에서는 볼 수 없던 디자인과 색깔로 세련미를 더한 것. 포장지와 쇼핑백, 제빵사의 모자를 아이콘으로 쓴 겐츠베이커리의 로고 디자인 변경까지, 정호연 대표는 유학 시절 보고 배운 디자인 감각을 과감하게 적용하고 있다. “베이커리도 경영이 아닌 디자인이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름답고 멋진 걸 보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독일어로 ‘멋쟁이’를 뜻하는 겐츠(Gentz)라는 이름도 제가 지었고요. 그리고 제 취미 중 하나가 맛있고 예쁜 요리 레시피 책을 보는 겁니다. 지금 신제품 개발에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막상 일을 해보니 보람도 있고 즐겁습니다. 제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그것이 다음 날 바로 빵으로 만들어져 손님의 반응으로 이어지고… 이 일은 아이디어 적용 후 피드백이 무척 빨라서 좋아요.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니 성취감도 있고요.”
밀가루 대신 국내산 쌀가루로 만든 빵, 수백 개의 제품 개발, 합리적인 가격, 당일 분할 생산으로 신선하게 빵을 공급하는 시스템 등.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지역 베이커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즘, 부산의 대표 브랜드로 겐츠베이커리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성공 요인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정복식·정호연 부녀의 의기투합이다. 바로 빵의 맛을 아는 아버지와 빵의 멋을 아는 딸이라는 환상의 복식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