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하우스 식 미식
정체성을 담은 F&B 공간을 통해 세계관을 확장하는 오늘날 하이패션 브랜드의 행보.
하이패션 브랜드의 시선은 더 이상 제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고객이 브랜드와 교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최근 브랜드들이 가장 주목하는 영역은 F&B다. 일반적 카페나 레스토랑을 여는 수준이 아니라 브랜드가 존중하는 셰프나 전문가들과 협업해 맛과 공간, 서비스가 어우러진 정교한 경험을 설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브랜드의 미학과 철학이 메뉴와 인테리어, 플레이팅, 서비스 전반에 촘촘히 스며들어 고객은 식사 그 이상으로 브랜드가 구현하는 라이프스타일과 미학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루이 비통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지난 몇 년 사이 루이 비통은 패션과 미식, 문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콘셉트 ‘하이엔드 스내킹(High-end Snacking)’을 로컬과 조화롭게 접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 9월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 문을 연 ‘르 카페 루이 비통’이 대표적이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임프레션’을 이끈 윤태균 셰프를 필두로, 프랑스 장인정신과 한국의 풍미를 결합한 독창적 공간을 선보였다. 카페와 도서관을 결합한 이곳은 문화적 영감에 둘러싸여 몰입할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 연출로 주목받고 있다. 또 지난 4월, 루이 비통은 19세기 신고전주의 건물 팔라초 타베르나를 복원해 완성한 밀라노 플래그십 스토어 비아 몬테나폴레오네 2번지에 하우스 최초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다브 바이 비토리오 루이 비통’과 ‘다 비토리오 카페 루이 비통’을 동시에 공개했다. 두 공간은 모두 미쉐린 3스타 셰프 가문인 다 비토리오(Da Vittorio)와 협업한 것으로, 테이블 위를 비롯해 곳곳에서 루이 비통의 창의적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다.
한편 구찌는 2022년에 문을 연 이탤리언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을 한남에서 청담으로 옮기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리뉴얼을 기념해 ‘셰피아 바이 셰피아’, ‘부로 에오로’, ‘아스티체 에드 온데’ 등 총 14종의 단품 메뉴를 새롭게 준비했는데, 이는 전형규 총괄 셰프가 구찌 오스테리아 메뉴를 기획한 마시모 보투라의 비전을 토대로 이탈리아 전통에 한국적 해석을 더해 현대적 감각으로 완성한 결과물이다. 공간 역시 구찌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의 ‘수직 공원’ 콘셉트를 반영해 도심 속 자연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라다 역시 지난 3월 영화감독 왕가위와의 협업 소식과 함께 큰 기대를 모은 ‘미 샹 프라다 롱자이’를 공개했다. 이곳은 아시아 최초의 단독 프라다 레스토랑 겸 카페로, 왕가위 감독의 영화적 미장센과 프라다의 예술적 감각이 결합된 공간이다. 특히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나 <해피 투게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감각적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이탈리아 요리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한 퓨전 다이닝과 카페 메뉴를 제공하며, 프라다의 예술적 브랜드 정체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 외에도 생 로랑은 대대적 레노베이션을 거친 파리 리브 드와 매장 내 피터 파크 셰프가 운영하는 일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스시 파크’를 선보였고, 티파니는 긴자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나쓰코 쇼지 셰프와 함께 일본 최초의 ‘블루 박스 카페’를 열었다. 디올은 긴자와 청두에 각각 안-소피 픽 셰프를 영입해 세운 ‘카페 디올 바이 안-소피 픽’을 통해 미식 분야로 본격 진출했다.
이처럼 하이패션 브랜드의 미식적 확장은 패션이 담아온 역사와 미학, 그리고 감각적 세계를 식탁 위로 확장하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 끼 식사는 브랜드가 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창이며, 이를 통해 고객은 브랜드와 더욱 깊이 있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연결된다.
에디터 손지수(jisus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