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포스트 단색화’의 두 얼굴

LIFESTYLE

한동안 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단색화’의 열기가 식자 ‘포스트 단색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우리가 쉬이 넘기지 못할 어떤 사연이 숨어 있다.

‘포스트 단색화’의 주요 작가로 거론되고 있는 이배

지난 몇 년, 세계 미술 시장은 한국의 단색화를 주목했다.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와는 또 다른 동양적 사유의 깊이 그리고 중국과 일본 작가에 비해 그간 저평가된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이 맞아떨어져 높은 인기를 끌었다. 박서보와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 등 1930년대생이 주축인 대표적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자연스레 수직 상승했다. 이들의 2016년 평균 호당 가격은 단색화가 비싼 가구와 세련된 인테리어에 잘 어울린다며 여의도 증권맨 사이에서 반짝 유행한 2007년도보다 10배가량 뛰었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열기가 다소 주춤하다. 이는 경매 시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 11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 당시 김환기의 1970년 작품 ‘노란색 전면점화’가 63억2626만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세우긴 했지만, 나머지 단색화 작가의 작품 경매 분위기는 냉랭했다.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의 작품은 유찰이 늘었고, 박서보의 경우 정확히 1년 전인 2015년 11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 당시 1975년 작품 ‘묘법’이 약 11억6300만 원에 낙찰되며 이우환과 정상화에 이은 ‘10억 클럽’ 단색화 작가가 된 것과 달리 최근엔 추정가를 밑도는 2억4000만 원 선에 낙찰되는 데 그쳤다. 단색화의 인기가 완전히 사그라졌다고 하긴 뭐하지만, 분위기가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대형 갤러리 사이에선 단색화의 인기를 이을 ‘포스트 단색화’ 찾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사실 지난해 초 김정헌과 주재환, 최민화 등 ‘민중미술’로 분류되는 작가들의 전시가 잇따라 열린 것도 이 같은 움직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주로 198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출발해 유난히 ‘선언’과 ‘선동’이 많은 민중미술 특유의 ‘분노의 캔버스’가 현재를 사는 컬렉터들의 거실에 어울릴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등장한게 바로 국내 추상화가다. 지난해부터 국내 주요 갤러리는 기존 단색화에 쏠린 관심을 그동안 저평가돼온 국내 추상화가의 작품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김태호와 김용익, 이배, 오세열, 김춘수 등이 그 중심에 섰고, 이들은 지난해부터 국내외에서 전시 수를 점점 늘리며 지명도를 올리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작가는 김태호다. 그는 지난 1년 사이 미술 시장에서 가장 핫한 작가가 됐다. 1980년대 이래 ‘내재율’이라는 타이틀로 작업해온 그는 지난해 5월에 열린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작품이 시작가의 2배 이상을 웃도는 1억2000만 원에 낙찰됐고, 이후 열린 ‘KIAF 2016’에선 아예 작품이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팔려나가 ‘작업실 밖으로 작품이 나가면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캔버스에 물감을 수없이 쌓고 긁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는 그는 현재 노화랑 전속 작가로 활동 중인데, 최근 2〜3년간 작품 가격이 30% 가까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호만큼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작가는 김용익이다. 단색화 1세대인 박서보 작가의 ‘애제자’이기도 한 그는 지난 1~2년 동안 런던과 상하이 등 국제 아트 페어에서 작품을 거의 ‘완판’시키며 작품 가격을 올렸다. 한데 그것으로 모자라 지난 9월엔 일민미술관에서 회고전을, 11월엔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까지 치르며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갤러리의 개인전 당시 실제로 그는 “칠순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작품이 팔려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원형을 반복적으로 캔버스에 그리는 이른바 ‘땡땡이’ 시리즈 작업을 하는 그는 오는 5월에도 뉴욕에서 개인전 일정이 잡혀 있어 앞으로 인기가 지속될 전망이다.
숯으로 독특한 추상 세계를 그려내는 이배 또한 포스트 단색화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파리에 살며 세계 무대에서 활동해온 그는 지난해에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했고, 이어 지난 11월에는 부산 조현화랑에서 13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새까만 탄소 덩어리인 숯을 회화와 조각 등 특유의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작가로 해외에선 가장 ‘동양적인’ 작가로 통한다.

1 한국 미술 사상 최고 금액인 약 63억 원에 낙찰된 김환기 작가의 ‘12-V-70 #172(노란색 전면점화)’. Oil on Cotton, 236X173㎝, 1970
2 2월 22일부터 3월 26일까지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여는 오세열 작가의 2013년작 ‘무제’

한편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린 화면을 긁어 숫자를 반복적으로 새기고 그 위에 단추와 숟가락, 분홍 넥타이, 조롱박 등 장난감 같은 이미지를 더한 회화로 유명한 오세열도 빠질 수 없다. 특유의 암시적 기호로 화면을 구성해온 그는 지난해에 상하이 학고재에서 전시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서울 학고재에서도 2월 22일부터 개인전을 열어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다. 학고재의 우정우 큐레이터는 이번 오세열의 전시가 “지난 30여 년간 (작가의) 작품 활동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이자, 특유의 시적 언어와 회화적 상징성을 병합한 기술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자리”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이외에도 캔버스를 온통 울트라마린색으로 칠하는 김춘수, 한지로 조형 작업을 하는 권영우, 오리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이강소, 선 자체로 공간을 표현하는 남춘모 등이 포스트 단색화 시대를 책임질 주자로 꼽히고 있다.
한데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하나 있다. 바로 ‘단색화’ 이후 ‘포스트 단색화’의 시장이 형성되는 어떤 기류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그간 미술계에선 국내 미술의 흐름을 ‘단색화’와 ‘포스트 단색화’로 나누는 것이 정녕 옳긴 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왔다. 쉽게 말해 우리의 내적 미의식에 대한 연구도 없이 미술품 유통시장의 트렌드로 접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말이다. 실제로 몇몇 미술인은 이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트스페이스 휴의 김노암 디렉터는 “단색화 이후 포스트 단색화를 찾거나 만드는 움직임이 상업 갤러리에선 자연스러운 기획이겠지만, 미술계 입장에서 볼 땐 그것이 미술계 안에서 어떤 보편성을 획득한 작품은 아닐 수 있다”며 단색화에 이어 포스트 단색화가 주목받고 있는 미술계의 현상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또 국내에 단색화 열풍이 휘몰아치기 전인 2013년, 단색화 대표주자인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을 열어 주목받은 우손갤러리의 김은아 대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전했다. 그녀는 “지금의 단색화와 포스트 단색화의 배후엔 사실 시장 관점의 요인만 존재한다”며 “사실 ‘단색화’라는 단어도 철저히 시장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포스트 단색화’로 또 다른 유행을 만드는 것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 두 미술인의 말처럼 지금 유명 갤러리에서 사용하는 포스트 단색화라는 단어엔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다른 의미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제껏 단색화를 잘 팔았는데, 그다음 잘 팔릴 작가는 누구냐’라는 의미가 내재됐을 수도 있고, ‘단색화의 다음 주자가 아니라 포스트 한국 미술을 논할 만한 작가는 누구냐’라는 의미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한데 그것이 정녕 단순히 표피적으로 단색화와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찾는 거라면 분명 문제는 있을 것이다. 단색화 열풍이 단순히 소수 작가에게 집중되고, 컬렉터층도 너무 얇다는 이유로 포스트 단색화를 주창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단색화의 다음 주자가 아닌, 포스트 한국 미술로 우리 미술의 발전 가능성을 보는 포스트 단색화를 응원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서울 옥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