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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의 정원

LIFESTYLE

성락원, 바람과 물이 흐르는 그곳에 자연 그리고 예술과 혼연일체가 된 인생이 머물다 간다.

송석지와 송석정이 있는 성락원의 후원 풍경.

예부터 성북동의 계절은 ‘봄’이었다. <동국여비지고> 한성부 명승 편을 보면 성북동 일대는 봄철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해 도성 사람들이 다투어 꽃구경을 하던 곳이라 했다. 당시 북저동이 정식 행정 명칭이었으나 항간에서는 ‘도화동’으로 부를 정도였다. 맑은 시내의 언덕을 따라 주민들이 복숭아나무를 심고 살던 곳. 더 이상 복숭아꽃 향기는 맡을 수 없지만, 늦은 봄의 정취를 찾아 성북동에 갔다.
성락원(城樂園)은 성북동, 아니 서울 도심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 전통 정원이다. 복숭아꽃이 지천으로 물든 그 시절엔 몇 개의 정원이 더 있었겠지만, 현대 도시 개발 단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곳은 처음엔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 대감의 별서 정원이었다고 회자된다. 이후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하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지형도>에 ‘이강공별저’라고 언급한 기록이 있다. 심상응 대감의 후손인 제남기업 심상준 회장이 1950년 4월에 매입해 개인 사유지가 되었으며, 이후 한국가구박물관에서 관리해왔다. 성락원이라는 이름도 심상준 회장이 지었다. 한자 뜻 그대로 자연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거대한 철문 너머 이런 녹음이 펼쳐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성락원의 첫인상은 작은 감탄사와 함께 마주하게 된다. 정원은 경사가 가파른 수원지에서 인공 연못을 거쳐 작은 계곡으로 흘러 내려가는 물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성했고, 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 관람 순서다. 성락원은 크게 진입 공간인 전원, 내원, 후원으로 구분한다. 전원 오른쪽에 ‘쌍류동천(雙流洞天)’이라는 각자(刻字)를 새긴 바위 아래로 작은 개울이 흐르는데, 그 물소리가 마치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듯 설렘을 부추긴다. 북한산을 따라 흘러온 두 계류가 만나 1970년대까지 성북천을 지나 청계천으로 이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지하로 스며들어 문 밖에선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왼쪽엔 ‘용두가산(龍頭假山)’이 있다. 용 머리의 산 모형물로 안뜰을 가려주고 바깥의 시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일보일경, 한 걸음에 한 경치라는 말처럼 은근하게 길을 돌아가는 미학을 전해주는 장치다. 전원과 내원의 경계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가 호젓하게 서 있다. 그 앞으로 바위에 둘러싸인 ‘영벽지’라는 연못이 등장하는데, 여기가 바로 성락원의 하이라이트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암반에 고이도록 인공으로 물길과 홈을 만들었다. 이는 자연의 모습과 인공적 모습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한국 정원의 특징을 대변한다. 바위에는 선인이 남긴 한시가 음각돼 있다. “온갖 샘물을 모아 고이게 하니, 푸른 난간머리에 소(沼)가 되었네. 내가 이 물을 얻은 뒤부터 약간의 강호놀이를 하네.” 뱃놀이를 하거나 물에 비친 달을 감상하던 선비의 풍류를 눈으로 상상해볼 수 있다. 그 옆으론 추사 김정희가 새긴 ‘장빙가’라는 글씨가 또렷하다. 아마 이전에 연못가에 지은 본채(살림집)에 겨울이 되면 고드름이 많이 달렸으리라.
내원을 지나 오솔길을 오르면 후원 영역인 ‘송석정’ 일대다. 송석정은 1953년에 지은 수각으로 경회루를 본뜬 것이다. 송석정 앞에는 ‘송석지’라는 큰 연못이 있는데, 지금은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지만 복원 공사가 끝나면 송석정 뒤편에 흐르는 물줄기가 작은 폭포를 이뤄 내원까지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송석지를 등지고 서면 멀리 남산이 보인다(남산을 향해 시야가 트인 이곳은 뒤로 북한산을 두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전통적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이는 한국 전통 건축의 ‘차경’ 개념으로 이어진다. 차경은 발견에 관한 이야기로, 인간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의 안목과 부지런함으로 찾아낸다는 의미다. 여기에 풍수에서 사용하는 비보, 자연이 넘치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돋아준다는 개념을 더해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완성한 정원이 바로 성락원이다. 물질적으로 화려하게 꾸민 공간이 아니라 선비의 정신적 문화가 담긴 공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음미해야 성락원의 진짜 가치를 경험할 수 있다.

1 후원에서 내려다본 내원과 영벽지.
2 추사 김정희가 쓴 장빙가 각자와 돌확. 돌확의 사각형은 땅, 원은 하늘로 땅이 하늘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비가 내리면 안에 물이 차고 그 안에 달이 담기는데 그 달을 보며 선비가 차와 시, 음악을 향유한 것으로 여겨진다.
3 성락원 임시 개방 기간(4월 23일부터 6월 11일까지)에 송석정에서 꼭두박물관 특별 전시를 열었다. 꼭두는 상여에 다는 나무 인형으로, 조선 시대 민중의 해학과 미학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정원은 박제된 물체가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다. 소유주의 취향을 반영하기 마련으로, 이에 따라 성락원도 조금씩 모습을 달리해왔다. 지금 우리는 현대화가 아닌 최초의 과거 모습, 전통을 그리워한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품위가 깃든 자연 풍경식 정원의 모습 말이다. 1992년 대한민국 사적 제378호로 지정되었지만 전통 정원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5호로 재분류된 성락원. 그 후 여러 차례 복원을 거쳐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나 아직 30% 정도 작업이 남아 있다. 물과 바위, 소나무 그리고 사람이 완벽한 화합을 이룰 그날을 기다린다. “십년 동안 긴 휴가를 얻어 북성 아래 누워 있네/ 산수풍경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 마음대로 노니는데/ 어느 사이 귀밑털이 백발이 다 되었다네/ 때로는 한가하게 졸음을 즐기고/술이 있으면 친구 불러 더불어 마시누나/ 일만여 아름다운 골짜기엔 구름이 덮이는데/ 이 내 누대엔 가을 달빛이 밝기만 하구나” 고종 때문인 서파 황수연이 시 ‘와성북동(臥城北洞)’에서 노래한 것처럼 시시때때로 이곳에 와 계절과 세월 놀이를 할 수 있는 그때를.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