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피노의 선물
프랑수아 피노와 베르나르 아르노의 라이벌 관계로 알아보는 파리의 새 미술관 건립 소식.

미술관 외관 예상 이미지.
작년 한 해 프랑스 미술계의 가장 큰 뉴스는 케링 그룹의 설립자이자 아트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회장이 파리에 새로 오픈하는 미술관 소식이었다. 옛 상품거래소(La Bourse de Commerce de Paris) 건물을 장기 임대한 그는 일본의 세계적 건축 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에게 미술관으로 개조할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작년 4월 27일, 파리 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와 함께 기자간담회를 열어 야심찬 계획을 세상에 알렸다. 건축 디테일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안도 다다오는 “이 미술관은 브렉시트를 비 롯한 전 세계의 불안한 정치 상황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건물의 구조를 최대한 살려 전시장으로 디자인하고, 지하에는 300석 규모의 강당을, 꼭대기 층에는 레스토랑을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약 1300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할 예정. 이미 베니스에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와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미술관을 연 피노가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파리에 또 다른 미술관을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와의 오랜 라이벌 관계에서 그 답을 찾는 이도 있다. 피노는 생 로랑과 구찌, 프랑스 최고의 온라인 쇼핑몰 르두트의 소유자고 아르노는 디올과 루이 비통, 모엣 & 샹동, 헤네시 등 글로벌 럭셔리 회사를 거느린 거부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이들이 미술계에서 쌓아온 라이벌 관계다. 둘은 이름난 전시에는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 미술 애호가이자, 세계 정상급 마스터피스를 소장한 컬렉터다.

프랑수아 피노와 안도 다다오.
특히 피노는 어드바이저를 대동하고 우아하게 갤러리를 방문하는 아르노와 달리, 전시가 오픈하기도 전에 갤러리를 방문해 작품을 고르는 열정적인 컬렉터로 알려졌다. 그가 1998년 영국 경매 회사 크리스티의 최대 주주로서 오너 타이틀을 거머쥐고, 세계의 컬렉터 순위를 매기는 리스트에서 수차례 정상을 차지한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난 2006년, 그는 이탈리아 베니스의 18세기 궁전 팔라초 그라시를 근사한 미술관으로 개조해 제프 쿤스와 데이미언 허스트 등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선보였다. 원래 그는 파리 근교의 도시 불로뉴비양쿠르(Boulogne-Billancourt)의 세갱(Seguin)섬에 미술관을 짓고자 했으나, 답답한 프랑스의 행정 처리를 견디다 못해 이탈리아로 발걸음을 돌렸다. 3000점이 넘는 그의 정상급 컬렉션을 이탈리아로 넘겨준 프랑스는 세계 미술계의 조롱을 감내해야 했다. 2009년에는 베니스의 옛 관세청 건물인 푼타 델라 도가나에 두 번째 미술관을 오픈, 세계 미술계에 자신의 위용을 과시했다.

미술관 동서 단면도.
한편, 크리스티의 오너가 된 프랑수아 피노에게 자극받은 베르나르 아르노는 1999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경매 회사 필립스를 인수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LVMH 그룹의 영업이익률이 떨어지는 악재가 겹치면서 3년 후 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지분을 팔아야 했다. 그는 피노가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에 미술관을 지은걸 은근히 비난이라도 하듯, 자신의 미술관은 반드시 조국 프랑스에 짓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그러다 지난 2006년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를 불러 파리 16구 아클리마티시옹 공원에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을 지을 계획을 세웠고, 2014년 문을 열었다.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돛단배를 연상시키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감탄하게 했다. 여기에 파리 시립근대미술관의 큐레이터 쉬잔 파제(Suzanne Page)를 전시 디렉터로 영입하며 오픈하는 전시마다 큰 뉴스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17년 팔라초 그라시에서 데이미언 허스트가 선보인 거대 작품 ‘Demon with Bowl’.
프랑수아 피노의 새 미술관 건립 소식은 베르나르 아르노의 미술 행보에 대한 멋진 응수로 평가된다. 피노는 그동안 아무도 손댈 엄두를 못낸 골칫덩어리 건물의 수리비는 물론 미술관 운영비까지 모두 책임질 예정이다. 또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50년 후 파리시로 귀속되는 조건. 이에 파리 시장 안 이달고는 “이 미술관은 프랑수아 피노가 파리시에 주는 커다란 선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프랑수아 피노와 베르나르 아르노의 라이벌 경쟁으로 인한 혜택은 프랑스인과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 누리게 됐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프랑스인보다 문화를 중요시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으로 많은 돈을 벌어온 이들은 누구보다 문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해마다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수많은 입장객을 생각해보라. 미술관마다 길게 늘어선 줄은 문화 예 술이 프랑스인에게 삶의 일부를 넘어선 본질임을 느끼게 한다.

미술관 내부 예상 이미지.
역사적으로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의 흔적을 영원히 남기는 수단으로 건축물을 택해왔다. 해마다 600만 명이 찾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태양왕 루이 14세는 그 건축물 덕에 불멸의 이름으로 남았다.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퐁피두 센터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국립도서관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케브랑리 미술관을 지어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겼다. 미래의 후손은 구찌나 컨버스 운동화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 그리고 파리의 옛 상품거래소를 멋지게 미술관으로 개조하 고 소유한 주인으로서 프랑수아 피노를 기억할 것이다. 2019년 초 파리에서 들려올 새 미술관 개관 소식에 귀 기울여보자.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글 최선희(초이앤라거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