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패셔널한 그녀의 리더십
부와 지위에 안주하는 대신 전문성을 살려 책임을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새로운 모습을 만난다.

1 백악관 텃밭에서 아이들과 만난 미셸 오바마. 그녀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비커밍> 오디오 북은 2020년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스포큰 워드 앨범을 수상했다. 오바마 재단은 부부의 고향인 시카고 남부에 지역주민을 위한 ‘오바마 프레지덴셜 센터(Obama Presidential Center)’를 짓고 있다.
전 세계의 팬데믹 뉴스 속에서 민낯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요즘, 그 틈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 딸이자 선배인 여성 리더들의 행보는 그래서 더욱 눈에 띈다. 설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자리가 타고난 부(富)나 권력에 의한 것일지라도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데에는 강한 의지가 필요한 법.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특기를 살려 숙련된 활동가로 거듭난 사회 지도층 여성의 면모를 살펴보면 바이러스의 맹위가 한풀 꺾인 뒤 이 시대가 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카리스마형 리더,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는 지금 적어도 영어권에서 대본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적할 만한 몇 안 되는 연설가 중 한 명이다. 한때 정적이던 힐러리 클린턴을 같은 여성으로서 응원하는 2016 대선 지지 연설 영상은 리더십과 연설문에 관심이 높은 이라면 ‘완벽(perfect)’이란 수식을 달고 포스팅해둘 정도. 매번 당당한 태도로 정확한 의사 전달을 위해서라면 다소 과장된 표정이나 비속어도 기꺼이 사용하는 그녀의 접근 방식은 백악관 시절 정치적 공격의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간미 넘치는 리더십의 표상으로 꼽힌다. 미셸이 지적재산권에 능통한 변호사이자 행정가, 대형 병원 부원장을 지낸 사실을 떠올리면, 핵심을 짚어내고 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탁월한 능력은 어쩌면 당연하다. 또 사회적 취약계층에 자신 같은 강력한 희망의 상징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그녀는 직시한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에도 유력 정치인이 가지 않는 중소 대학을 찾아가 졸업 축사를 하도록 제안한 그녀. 특히 그녀는 자서전 <비커밍>(2018년)과 SNS, 공개 강연을 통해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자신이 시카고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거치면서 겪은 ‘가면 증후군(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것도 운이라 여기며 불안해하는 것)’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부부가 공동 운영하는 오바마 재단에 존재하는 ‘Girls Opportunity Alliance’처럼 사회적 연대를 통한 멘토링 프로그램이 좋은 예다.

2 프리실라 챈은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의 CEO로서 실질적인 기획 운영을 맡고 있다. 재단은 얼마 전 코로나19 연구에 2500만 달러(약 305억 원)을 기부했다.
프리실라 챈(Priscilla Chan)은 자신이 확실히 아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온화로운 전문가’ 타입이다. 자식을 위해 열심히 사는 부모를 보며 열세 살에 하버드행을 결심한 프리실라는 하버드 대학교와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거쳐 소아과 의사가 됐다. 그 전에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한 그녀는 당시 페이스북 입사를 권하던 남자친구 마크 저커버그의 권유도 물리치고 자신의 커리어를 꾸준히 쌓았다. 대학 시절 외톨이나 다름없던 저커버그를 글로벌 기업가로 거듭나게 해준 사람도 그녀라는 것이 ‘정설’. 저커버그 역시 늘 주변을 배려하는 그녀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프리실라는 2017년 사회 전체에 기회를 넓혀주는 맞춤 교육과 질병 치료에 집중하는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 재단을 설립했다. 그녀는 현재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외계층 학생들이 원격 학습 단계에서 느낄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130만 달러 이상 기금을 투입하고 관련 콘퍼런스에 토론자로 나서는 등 전문성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 2015년 3월 뉴욕에서 열린 UN여성기구 행사 연단에 선 멀린다 게이츠. 2013년 전 세계인이 경청하는 빌 게이츠의 연례 서한에 피임과 가족계획에 대한 메시지를 포함시킨 것도 그녀의 결정이었다.
멀린다 게이츠(Melinda Gates)는 ‘셰도 매니저’ 타입이다. 지금도 남편과 숫자 놀이를 즐기는 그녀는 듀크 대학교 공대 출신으로,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입사 직후 빌 게이츠를 만나 1995년에 결혼했다. 2년 뒤 첫아이가 생기자 그녀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저서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속 고백에 따르면, 자신이 다니던 MBA 과정 중 유일한 여성이었지만 페미니즘에 관한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뉴욕 타임스>를 읽은 뒤 아직도 설사병으로 죽는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 피임약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여성이 자신의 삶과 미래를 가늠할 수 없고, 결국 개발도상국에서 빈곤으로 이어진다는 현실을 자각한 그녀는 주부만의 통찰력을 발휘해 빠르게 움직였다. 2000년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세계 빈곤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여성 자립 교육, 생활 위생과 치료제 개발에 힘썼고, 스스로를 열렬한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게 됐다. 지금 코로나19 대책 마련에 민관의 참여를 독려하는 빌 게이츠의 모습은 그녀가 20년간 쌓아 올린 활동 중 일부다.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정부가 나서지 못하는 생활 영역을 찾아 세밀하게 파고들었다. 개발도상국에 소아마비 백신과 피임약을 보급하고, 글을 읽지 못하는 여성을 위해 토마토 재 배법을 라디오 쇼에서 홍보할 때는 남편들이 라디오 채널을 좌우하는 시간대를 피하는 식이었다.

4 수전 록펠러는 시계 브랜드 지라드 페리고와의 컬래버레이션에 이어 올해는 스와로브스키 아틀리에와 나뭇잎, 거북이 등을 모티브로 한 ‘뷰티풀 어스’ 액세서리 라인을 런칭했다.
한편, 사람들에게 즐길 수 있는 사회 공헌을 제안하는 ‘창의형 리더’ 수전 록펠러(Susan Cohn Rockefeller)가 있다. 환경 다큐멘터리로 여러 번 수상하기도 한 영화 제작자이자 주얼리 디자이너인 그녀는 북극 생태 영화를 촬영하며 남편 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를 만났다. 이후 해양 보호 재단 오세아나(OCEANA)를 비롯해 패션 업사이클링 브랜드 ‘더 R 컬렉티브(The R Collective)’, 책임감 있는 혁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웹 매거진 <뮤징스> 운영과 필진 등 몇 개의 환경보호 관련 단체와 기업에 관여하고 있다. 오랜 시간 이어온 록펠러가의 사회 공헌은 자연에 관심이 많은 그녀가 합류하며 동식물 모티브의 주얼리 아이템을 만들어 기부를 독려하는 등 더욱 다채로워졌다. 수전은 사회 공헌에 관심 있는 <노블레스> 독자를 위해 부활절 기간에 직접 메일을 보내주었다. 그녀의 첫 번째 조언은 “With great wealth, comes great responsibility.”로 시작한다. 특히 기혼 여성에게는 자신이 가진 ‘포켓 북’의 힘을 인식하길 권했다. 작게는 음식 메뉴 선택부터 주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메뉴가 많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어요. 아직도 우리 사회와 환경은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위기와 함께 더 나은 결정을 내릴 때도 있음을 직시하라고 전했다.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과 커리어를 살린 활동이 유리하다는 점도. 록펠러 부부는 과학적 검증을 토대로 남획, 서식지 파괴 등 부조리한 조업 규정을 바로잡고 어류 서식지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연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따라 살아왔어요. 그 길에서 저처럼 수영과 보트를 즐기고 아름다운 바다를 지키고 싶어 하는 남편을 만났죠. 우리 가족의 사랑, 인류애 가치 전달의 기둥이 되어준 환경을 지켜야 할 책임감을 느껴요. 자연이 건강하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건강할 테니까요.”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