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트, 사진의 기술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진 한 점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궁금하다면 캡션에서 프린트 방식을 확인해보자. 작가들은 프린트 방식을 통해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실험했다. 광화학적 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사진이 본모습을 드러낸다.
올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의 기술>전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진의 영역에서 펼친 기술적 실험을 소장품을 통해 조명하는 전시였다. 전시장 곳곳에 작품 설명과 사진 기술에 관한 안내문을 붙여 사진의 기술에 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도왔다. 전시가 던진 중요한 메시지는 이랬다.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의 기원이 광화학적 기술 발전에 있다는 것.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의 탄생과 발전으로 팔색조처럼 변신을 거듭했다. 비록 인간의 ‘위대한’ 손이 아니라 기계의 도움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예술계에서 외면당한 설움이 꼬리표처 따라붙었지만, 작가들은 사진의 본성인 기계적 특성을 오히려 극대화하며 예술적 입지를 다져나갔다. 특히 카메라로 필름에 포착한 이미지를 화학반응을 활용해 평면에 정착시키는 프린트 과정은 사진의 매체적 성격을 실험하는 최적의 단계였다. 필름, 잉크, 화학약품, 인화지 등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인화 과정을 거쳐 완성한 사진은 아무리 같은 이미지라 해도 엄밀한 의미에서 ‘똑같다’고 말할 수 없다. 전시장이나 책에서 암호 기호처럼 보이던 프린트 방식은 대개 프린트 과정에서 사용한 약품이나 잉크에 따라 붙인 것이다. 프린트 방식을 하나 둘 알아가면 화학책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흑백사진을 얻는 전통적 프린트 기법인 젤라틴 실버 프린트 외에 백금을 사용하면 플래티넘 프린트, 이미지가 탄소 성분으로 되어 있으면 카본(carbon) 프린트, 젤라틴 대신 아라비아 고무를 유기용제로 사용하면 검(gum) 프린트, 은색소 표백법을 활용하면 시바크롬(cibachrome) 프린트, 피그먼트 잉크를 사용하면 피그먼트 프린트로 적는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진 한 점이 어떤 기계적 프로세스로 탄생했는지 프린트 방식을 살피면서 사진 감상의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가장 흔하게 만나는 프린트 방식 몇 가지를 간략히 소개한다.
로버트 애덤스(Robert Adams), Longmont, Colorado, 젤라틴 실버 프린트, 12.7×12.7cm, 1979
ⓒ Robert Adams, Courtesy of Fraenkel Gallery, San Francisco and Matthew Gallery, New York
Gelatin Silver Print
사진을 개척한 20세기 사진가의 흑백사진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젤라틴 실버’다. 한국에서는 ‘은염’이라고도 부른다. 쉽게 말해 ‘은’을 접착제 역할을 하는 ‘젤라틴’으로 고정해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이다. 1873년 피터 모즐리(Peter Mawdsley)가 처음 종이에 젤라틴 용액을 사용했으며 1885년에 상업적으로 생산했다. 사진은 보통 필름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친다.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사진 재료를 감광(感光, photosensitization, 빛을 쬐면 물리적·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하는 노광을 거치면 현상이 되고, 이때 빛을 받은 부분과 받지 않은 부분에 따라 은이 이미지를 만들면 흑백사진이 된다. 가장 안정적으로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작가들이 오랫동안 애용했다.
윌리엄 이글스턴, Greenwood, Mississippi, 다이 트랜스퍼 프린트, 40.5×50.6cm, 1973
ⓒ Eggleston Artistic Trust, Courtesy of Cheim & Read, New York
Dye Transfer Print
다이 트랜스퍼는 젤라틴판에 용액을 바르면 염료(dye, 염착성이 있는 색소)를 흡수해 컬러 이미지가 나타나는 효과적인 프린트 방법이다. 1940년대에 이스트먼 코닥에서 대중화했다. 색상이 영구적으로 유지될 정도로 보존력이 좋고, 보색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색을 변경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프린트 방식을 대표하는 작가로 ‘컬러사진의 대가’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초기에 흑백사진을 제작하다 1960년대부터 다이 트랜스퍼 방식을 사용하면서 독창적 앵글과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풍부한 색감을 지닌 컬러사진을 세상에 발표했다.
이정진, 파고다 98-5, 한지에 비은염 프린트, 188×66cm, 1998_<사진의 기술>전 출품작
C-Print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Chromogenic Color Print)’의 줄임말이며, 표면이 젤라틴으로 된 전통적 은염 방식으로 제작한 컬러사진을 의미한다. 동시대 사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프린트 기법이다. C-프린트에서 ‘C’는 크로모제닉의 첫 자를 땄고, 이는 ‘발색’을 뜻한다. 인화할 때 노광 후 약품 처리를 하는데, 이때 컬러 네거티브 인화지에는 RA-4, 컬러 슬라이드 필름용 인화지에는 R-3라는 약품을 사용한다.
Digital C-Print
레이저를 이용한 화학 프린트 방식이다. 디지털 사진 혹은 스캔한 필름의 데이터를 받아 빨강(R), 녹색(G), 파랑(B) 3가지 레이저를 인화지에 노광한 후 기존의 C-프린트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주로 출력 장비에 따라 더스트(Durst)의 람다(Lambda), 코닥(Kodak)의 라이트젯(Lightjet)으로 나뉜다. 작가 중 프린트 방식을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 마음에 ‘람다 프린트’ 혹은 ‘라이트젯 프린트’라고 캡션에 기재하는 이도 있지만 기계 이름을 적은 것에 불과하다. 두 기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진의 출력 크기다. 람다는 폭 128cm, 라이트젯은 폭 180cm 정도의 사진을 출력할 수 있다. 기술 발달에 따라 점차 대형 출력이 가능해지고 있다. 원하는 작품의 사이즈를 해결하면 색감에 대한 취향에 따라 출력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작가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람다는 노란 기가 좀 많이 돌아서 코닥 필름 같고, 라이트젯은 녹색이 강해 후지 필름 같다.” 국내에서 작가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출력업체는 포토피아와 이미지원 등이다.
Inkjet Print
잉크젯 프린터는 사진 출력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한다. CMYK 잉크를 프린터 헤드의 노즐을 통해 고압으로 분사, 종이 면에 뿌려 인쇄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매체를 다루기 쉽고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며 색 관리와 보존 효과가 우수해 많은 작가가 선호한다. 잉크젯은 염료와 안료(pigment, 물과 대부분의 유기용제에 녹지 않는 착색제) 방식으로 나뉜다. 잉크의 가짓수에 따라 색감을 더 풍부하게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CMYK를 각 잉크별로 4단계로 나눠 색을 입히는 식이다. 기계의 성능이 점점 좋아지면서 보다 풍부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폴 엠파기 세푸야(Paul Mpagi Sepuya),
Theodore 201” – 15(Figure/Studio/Ground Study 0702), 아카이벌 프린트, 254×183cm, 2015
Courtesy of the Artist
Pigment Inkjet Print
잉크젯 프린터에 피그먼트 잉크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피그먼트는 물과 유기용제에 녹지 않는 분말상의 착색제로 안료 잉크를 말한다. 다른 프린트 방식에 사용하는 염료 잉크가 색상 표현에서는 조금 더 우수하지만 안료 잉크보다 보존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특히 염료 잉크는 물에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안료 잉크는 프린트가 끝난 후 잉크가 마르면 물에 번지는 현상이 확연히 줄어든다. 그리고 현재 안료 잉크 색상의 단점이 많이 보완되어 전문적 프린트를 위한 장비 대부분은 안료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토너를 사용하는 레이저 프린터와 리본을 사용하는 열 전사 방식 등이 있지만 높은 품질의 사진 출력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 제작에는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라는 설명도 종종 볼 수 있다. 아카이벌 안료 잉크를 사용해 잉크젯 프린트를 했다는 말이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도움말 김도균, 김태균, 정희승(작가). 장순강(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