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그인 베이비
오스트리아 빈에서 아우디의 첫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A3 e-트론을 타고 담백하게 달렸다.
태양이 온 힘으로 빛을 쥐어짜던 오후. 아우디에서 준비한 승합차로 빈 국제공항을 빠져나오며 제일 처음 본 건 낡은 흰색 벽돌로 지은 말 목장이었다. 거름 냄새가 바람을 타고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왔고, 덩달아 오래 숙성된 나무 냄새도 느껴졌다. 창밖의 건물은 18세기의 것 그대로. 도로 위 차들은 또 국적이 따로 필요 없었다.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달리는 벤츠, 아우디, 토요타, BMW, 폭스바겐, 현대, 포르쉐가 서로 뒤엉켜 있었으니, 이곳은 예스러움과 낭만으로 상징되는 도시 오스트리아 빈이다.
아우디가 이번에 공개한 신차는 이들의 첫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이하 PHEV) 모델인 A3 e-트론이다. PHEV란 스팀다리미처럼 플러그를 꽂아 전기를 충전하고, 충전한 전기를 다 쓰면 다시 엔진이 전기를 만들어 동력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를 휩쓸고 있는 ‘전기차 혁명’에 독일 고급차 브랜드 아우디는 PHEV라는 카드를 꺼냈다. 100% 전기로 구동돼 주행거리가 짧은 EV(전기차), 내연기관과 전기를 함께 쓰는 기존의 하이브리드카 사이에서 절충안을 선택했다. 가정용 전원(220V)으로 3시간을 충전하면 전기로만 최대 50km(강남역에서 김포공항까지 왕복 거리)를 달리는데 그 사이 휘발유는 단 한 방울도 쓰지 않는다. 50km를 넘어선 순간부터는 가솔린엔진으로 리터당 66.7km(유럽 기준)를 달린다. 통상 유럽 연비가 국내 기준보다 20~30%가량 높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66.7’이란 숫자는 A3 e-트론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스마트한 차인지 바로 보여준다.
미디어 행사가 열린 밀리아 비엔나 호텔 2층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아우디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너무 많은 변화를 요구하지 말자는 게 PHEV 방식을 채택한 이유”라고 했다. 전기차의 역할을 조금 줄여 운행 중 전기 충전소를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다는 얘기다. 그는 높은 효율성으로 도심 운행에 탁월한 전기차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장거리 운행 시 아우디 특유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설명도 곁들었다.
A3 e-트론의 겉모습은 기존 A3 스포트백과 다르지 않다.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의 엠블럼 뒤에 숨은 충전 콘센트를 찾지 못했다면, PHEV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엉덩이 부분이 뚝 떨어지지 않고 루프에서 자연스럽게 낮아져 어딘가 은근한 매력이 느껴졌지만, 그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엉덩이’였다. 측면과 후면에 부착한 ‘e-tron’이라는 글자가 전기차임을 말해줄 뿐, 나머진 거의 똑같다. 다만 기존 모델에 없던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추가로 장착하면서 차의 무게는 A3 대비 약 300kg 더 나가는 1540kg이 됐다. 하지만 늘어난 중량은 전기 모드로 충분히 극복 가능해 효율에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는다. 실내 역시 A3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한 가지 있다면 전력 효율과 파워 그리고 충전 여부를 표시하는 직관적 디자인의 계기반이 생겼다는 정도다.
다음 날 아침 시승이 시작됐다. 붉은색을 머금은 A3 e-트론 수십 대가 어제와 같은 붉은 태양 아래 우아한 자태로 서 있었다. 주행 코스는 시내와 교외를 거쳐 다시 도심으로 들어오는 83km의 구간이다. PHEV의 경우 도심과 교외를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는 차종이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한 코스 설계라는 게 아우디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최고속도는 222km/h.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km에 도달하는 데 5초면 충분했다. 100km/h까지 달리는 덴 8초가 조금 안 걸렸다. 전기 모드에서 최고속도는 130km/h로 제한됐다. 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전기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최고속도를 굳이 높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처음 70km/h의 속도로 빈 시내를 20여 분간 달리자 북악스카이웨이를 3배로 늘려놓은 듯한 산길이 나왔다. 10여 분간 좁은 산길이 시냇물 흐르듯 잔잔히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용 문신처럼 휘어지는 오르막을 달리기도 했다.
왼쪽_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의 아우디 엠블럼을 옆으로 젖히면 충전할 수 있는 홈이 나온다. 오른쪽_ 센터 콘솔이 운전자를 향해 있어 운전 중에도 기기 작동을 쉽게 할 수 있다.
A3 e-트론엔 EV(전기차), Charge(배터리 충전), Hybrid Hold(배터리 소비 중단), Hybrid Auto(배터리 연료 최적 소비) 4가지 모드가 있다. 센터페이스의 매뉴얼을 조작해 EV 모드로 설정하고 액셀을 밟으니, 출발부터 33.6㎏·m의 최대토크가 날것으로 뿜어져 나와 어깨가 들썩였다. 전기는 일반적으로 모터에 공급되는 순간부터 최대토크를 발휘해 오히려 휘발유보다 저속에서 가속감이 좋다. 한적한 교외 도로의 언덕을 치고 오를 때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갈 땐 일단의 재미도 있었다. A3 e-트론이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달리기’에 집착하는 차는 아니지만, 밟으면 확실히 잘 튀어나가긴 했다. EV 모드를 택하면 전기로만 구동되니 정숙성도 뛰어나다. 흔히 전기로 구동될 땐 실내가 너무 조용해 상대적으로 노면 마찰음이나 풍절음이 크게 들리기 마련이지만, 좋은 흡차음재를 썼는지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시내 주행에선 일부러 전기 모드만 사용했다. 신호에 자주 걸리는 도심에서 전기 구동은 탁월한 선택이다.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처음 출발할 때, 언덕을 오를 때, 그리고 가속할 때 가장 많은 연료를 쓰는데, 이런 구간이 수십 번씩 반복되는 도심의 경우 전기 모드를 사용하는 게 연비를 높이는 데도 좋다. 말하자면, A3 e-트론은 도심의 일상과 한적한 주말 드라이브에 최적화한 차인 셈이다.
100% 순수 전기차의 속 터지는 스펙이 답답하거나, 한창 과도기를 걷고 있는 수소전기차엔 눈길이 가지 않거나, 기존 하이브리드카들의 못 미더운 고효율 엔진에 질려버린 이들의 지갑은 대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수렴돼 열릴 것이란 생각이다. 아우디에선 A3 e-트론이 그 자리에 있다. 순수 전기로 운행해 전기가 부족하면 차가 전혀 움직이지 않던 기존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뒤로한, 완전히 새로운 버전의 아우디 A3 e-트론은 유럽에서 지난 7월 1일부터 3만7900유로에 사전 예약이 들어갔고, 올겨울부터 공식 판매를 시작한다. 한국엔 내년 상반기에 출시 예정이다.
아우디 A3 e-트론
최대출력 150마력을 뿜어내는 1.4리터 TFSI 가솔린엔진에 전기모터는 75㎾ 출력이다. 전기모터와 엔진을 합친 출력은 최대 204마력까지 올라가고, 최대토크는 35.7㎏·m이다. 최고속도는 222km/h,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 데는 7.6초가 걸린다(유럽 출시 기준).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아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