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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파올로 피촐리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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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을 지배하는 이탈리아식 감성과 불완전함을 통해 아름다움을 논하는 일본의 관념이 조우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기질로 가득 찬 발렌티노의 2019년 프리폴 남성 컬렉션 이야기다.

거리 곳곳이 단풍으로 물든 지난해 11월 말, 발렌티노는 2019년 프리폴 컬렉션 이벤트를 위해 도쿄에 잠시 정박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점처럼 무수히 많은 도시 중 그의 나침반이 도쿄를 가리킨 연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미(美)에 대한 불완전성과 영구적 변화를 인정하는 오리엔탈리즘에 늘 매료되곤 했습니다. 이 관점이야말로 현대적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도쿄는 늘 미래로 가는 여정과 이해의 발판으로서 전통을 고수했어요. 고전적 아름다움과 열정을 지닌 이탈리아와 전통,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쿄의 문화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그의 말처럼 2019년 프리폴 컬렉션에는 이탈리아의 통합적 공간감과 고전적 아름다움에 일본의 두 가지 전통 사상을 융합했다. 무형의 공간 ‘마(Ma)’와 불완전한 것을 통한 미학을 의미하는 ‘와비 사비’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이자 마치 긴 러닝타임을 염두에 둔 배우의 인터미션처럼 숙고와 창조를 통한 발렌티노 맨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대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런웨이 현장, 피아노와 현악사중주의 풍부한 선율을 따라 쇼가 시작됐다. 남녀 통합 컬렉션인 만큼 첫 시작은 하우스의 도상학적 러플과 레이스를 장식한 레드 드레스의 행렬이었다. 이윽고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상징적 레드 컬러는 남성의 슈트 룩으로 이어졌다. 색은 강렬하지만 자연스러운 실루엣에서 여백과 간명함이 드러났다. 비움의 미학과 여유에 관한 고찰은 또 다른 블랙 컬러의 코트와 슈트 룩에도 묻어났다. 정교하지만 자유로운 테일러링을 부여받았고, 소재의 불규칙적 주름 장식으로 직선적 실루엣을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백과 슈즈 역시 담담해졌다. 신드롬적 인기를 구가한 VLTN 로고 대신 백의 로고 장식도 변화를 맞았다. 아카이브에서 차용한 V 모티브는 금속으로 완성했고, 매끈한 가죽 위에서 빛을 발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모든 남성 룩과 짝을 이룬 스니커즈. 근래 줄곧 청키 스니커즈를 선보인 것과 달리 보드화를 본뜬 것으로 이날 쇼를 관람한 이들의 뜨거운 눈도장을 받은 주인공이다. 내딛는 발걸음을 따라 너울대는 타조 털 장식 버킷 해트와 스터드 이어링은 솔리드 컬러 룩에 활기를 더한 흥미로운 액세서리. 재킷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셔츠 스타일링 역시 슈트의 실루엣에 자유를 불어넣었다. 모델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선 피날레 무대 위로 붉은 꽃비가 흩날렸다. 무대 뒤에서 숨을 가다듬고 쇼의 정점을 목도했을 피에르파올로 피촐리가 관중의 갈채 속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새로운 막을 여는 환희에 찬 모습으로!

 

에디터 정유민(ymjeong@noblesse.com)
사진 제공 발렌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