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 기자의 이런 문화생활
원하는 대로 움짤과 영상 편집하는 법 그리고 여름을 달구는 한강 나이트 카약 탐험.

나의 길티 플레저는 NCT라는 보이 그룹의 안무 영상이다. 정확히 말하면 특정 멤버가 춤추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영상인데, 사실 보면서 길티는 사라지고 플레저만 남은 지 오래다. 어쩜 그리 몸놀림이 가볍고 군무가 딱 맞아떨어지는지, 보고 있자면 한없이 무겁기만 한 내 몸이 함께 날아다니는 것 같아 그 영상을 반복해 보던 중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영상 편집 기술을 배우자. 그러면 원하는 장면만 쏙쏙 골라 볼 수 있을 테니까.”
마침 얼마 전 만난 박혜민 작가가 작품 영상을 직접 찍고 편집했다던 말이 생각났다. 영상 편집과 움짤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포토샵으로요? GIF? MPEG?”라는 질문이 돌아왔고 그때부터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다녔다. “그냥 원하는 장면을 갖고 싶어요”라는 내 대답에 말문이 막힌 듯 수화기 너머에 정적이 흐른 것도 잠시, 그녀는 친절하게도 움짤의 근원을 설명했다. “원래 움짤은 포토샵으로 사진을 이어서 만드는 움직이는 이미지예요. 요즘은 영상을 짧게 끊어서 만들기도 하지만, 그건 애플리케이션만 있으면 간단해요.” 기계치인 나에게 이 말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화가나 셰프가 툭 내뱉던 “참 쉽죠?”나 다름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간단하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가장 중요한 점을 잊고 있었다. 동영상을 내려받아 무단 배포하는 건 저작권법에 위배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물론 상업적 용도가 아니라 개인 PC에 저장할 의도라 해도, 자신이 직접 촬영하거나 저작권 문제가 없는 영상과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움짤의 탄생은 2000년대 초반이지만 이제는 PC와 스마트폰에서 움짤을 만드는 애플리케이션을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 보편화됐다. 하지만 “움짤 만들기 참 쉽죠?”가 “참 어렵죠?”로 들리는 나는 전문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모바일 앱 스토어나 인터넷 포털에서 ‘GIF’ 혹은 ‘움짤’을 검색해 나오는 프로그램을 내려받는다면 움짤 제작의 99%는 성공한 셈이다. 대부분 유료지만 자신이 만든 움짤에 로고나 광고가 떠도 상관없다면 무료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나의 일일 선생님은 “너무 쉬워서 가르칠 게 없다”며 1분 만에 움짤을 만들어 보였는데, 움짤 메이커 프로그램을 켜고 영상을 재생한 다음 원하는 장면에서 커서를 끌어당긴 게 다였다. 사진을 캡처하듯 움직임을 캡처하는 과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했고, 수업은 바로 심화 과정인 영상 편집으로 이어졌다.
대표적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어도비의 ‘프리미어’와 소니에서 출시한 ‘베가스’로, 수업에선 베가스 프로를 사용했다. 단, 베가스는 윈도용 프로그램이라 맥(Mac)에서는 쓸 수 없다. 영상, 사진, 음악을 실행한 다음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수많은 효과 툴로 꾸미면 되는데, 사용법은 포토샵이나 파워포인트와 유사했다. 완성도에 차이가 있을 뿐 편집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BGM을 깔고, 사진과 영상을 이어 붙여 페이드아웃효과를 첨가하고, 자막을 삽입하니 그럴싸한 뮤직비디오 한 편이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공들여 만든 과정을 실제 영상으로 변환하는 ‘렌더링’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용도에 따라 파일 형식을 달리해 저장해야 한다는 점을 주의하자. 모바일로는 재생할수 없는 형식으로 변환해 다시 렌더링을 걸어야 한 것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테다. 전문 프로그램을 썼다고 보기 어려운 퀄리티지만 처음 만든 4분짜리 영상에 내심 뿌듯했고, 이제 기계치가 아니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우선 선생님이 내준 숙제부터 마무리해야 하지만, 나의 길티 플레저 영상도, 곧 있을 부모님 생신 축하 영상도 이제 다 직접 만들어보련다.

나는 종종 상상한다. 뉴욕 이스트리버의 황금빛 스카이라인과 리버티섬의 아름다운 풍광, 연어알처럼 환하게 빛나는 허드슨강과 그 위를 부드럽게 통과하는 저녁 노을. 그리고 그 모든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호화 요트에 올라 사랑하는 여인과 레몬빛 칵테일을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을. 아…
하지만 꿈은 꿈으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탐하면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오랫동안 가슴 한편에 묵혀둔 이 꿈을 최근 다시 떠올리게 한 일이 있었다. 뉴욕의 매끈한 마천루와 자유의 여신상이 주는 감동엔 미치지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환희를 느끼게 해준다는 어느 수상 레포츠 회사의 광고. “서울의 노을, 감상해보셨나요? 시끄러운 자동차와 도시의 소음을 떠나, 물 위를 유유자적 떠다니는 카약에서 한강의 숨소리를 들어보세요.” 아니, 한강에서 노을을 즐기며 카약을 탄다고? 할리우드 미남 배우들만이 즐긴다는 그 카약을 한강에서?
며칠 뒤, 나는 서울 뚝섬유원지에 위치한 카약 체험장에 있었다. 평소 궁금한 걸 잘 참는 성격이지만, 한강에서 타는 카약은 뭐가 달라도 다를 거란 기대에 체험 예약을 한 것이다. 저녁 7시가 되자, 대략 20명쯤 되는 카약 체험 희망자들이 모여들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생애 처음 카약을 타는 그들의 표정은 설렘으로 그득했다. 우리는 지구력과 순발력,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카약에 대한 기본 소개와 패들링 교육(노 젓기)을 마친 뒤 구명조끼를 입고 한강으로 나갔다. 마침 서쪽 하늘을 노을이 물들이기 시작했다. 대화는 없었지만, 우린 어딘가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지켜봤다.
사실 이날 처음 본 카약에 나는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그것의 몸통이 너무 가녀렸기 때문이다. 마치 장맛비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걱정은 이내 기우로 드러났다. 카약에 앉아 중심을 잡고 양손으로 패들을 젓자 그것은 예상보다 멀리, 누구보다 빨리, 무게 있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따금 강한 바람에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첫 항해에 이 정도면 제법 재능이 있군’ 하며 어깨에 온 힘을 실어 래프팅을 이어갔다(이땐 미처 몰랐다. 이것이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는 마녀의 제안 같은 것임을).
잠실대교에서 시작해 청담대교를 찍고 돌아오는 왕복 3km 구간. 한강 정중앙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은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이었다. 저녁노을을 정통으로 맞아 아른거리는 잠실운동장. 밤하늘의 인공위성처럼 빛나는 수많은 아파트. 그리고 붉게 젖은, 누가 빠져버린다 해도 그 색에 취해 해가 되지 않을 것 않은 아름다운 강물. 가끔 물살을 일으켜 다리를 적시는 강바람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이런 게 인생 아니겠냐며 나는 또다시 열심히 패들을 저었다.
하지만 매혹은 거기까지였다. 청담대교를 찍고 잠실대교로 돌아가는 길. 나는 거짓말 조금 보태 지옥을 맛봤다. 카약 체험이 시작된 이래 이어진 남서풍이 점점 거세지더니, 나를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밀어낸 것이다. 장맛비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에서 일순간 전진밖에 모르는 옛 독일군의 잠수함처럼 변해버린 나의 카약은 이제 강물 위에서 말춤 추듯 통통튀었다. 충격에 빠진 나는 더 강하게 패들을 저었다. 계속 반대 방향으로 갔다간 다음 날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100개나 받을 게 뻔해서였다. 한데 온힘을 다해 방향을 바꾸려다가 더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너무도 평온하게 래프팅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 교관 중 누군가가 “다리와 몸에서 힘을 빼고, 엉덩이에만 힘을 주세요”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나는 패닉에 빠져 다음 날 아침 서해 바다 어딘가에서 발견됐을 것이다.
나의 첫 카약 체험은 이렇게 끝났다. 이날, 나는 안전 교육을 제대로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한강에서 고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바닥의 물집을 덤으로 얻었다. 잠시나마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도시의 소음을 피해 한강의 숨소리를 듣는 여정은 아름답고도 힘겨웠다. 카약은 가보고 싶어도 가지 못한 곳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 그 자체다. 누군가, 뉴욕 허드슨 강물 대신 한강을 배경으로 오래 묵혀둔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카약을 꼭 추천하고 싶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선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