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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보다 둘

LIFESTYLE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대표가 그리고, 하이코어의 박동현 대표가 만드는 어떤 미래.

왼쪽부터_ 자전거 하나로 새 비즈니스를 펼치는 김영세 대표와 박동현 대표

지난해 5월,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눈에 띄는 기사 하나를 읽었다. 전기자전거 구동에 필요한 배터리와 모터 등을 모두 뒷바퀴 휠 안에 설치한 제품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사진 한장을 싣고 그것이 국내 스타트업 ‘하이코어’에서 나온 것이라 전했다. 일반 자전거를 전기자전거로 만들어주는 유니크한 기술.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김 대표는 그 제품을 실물로 보고 싶다는 생각에 거의 안달이 났다.
김 대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전화했다. 그리고 다음날 직접 회사에 찾아갔다. 거기엔 그가 기내에서 상상으로 그린 그 제품이 완성품으로 놓여 있었다. 갑작스레 김영세 대표를 맞이한 하이코어의 박동현 대표는 어리둥절했다. 우선 국내 산업디자인업계의 선지적 인물인 김 대표가 자신을 찾아온 게 신기했고, 이어 나온 그의 제안은 더욱 그러했다. 이날 김 대표는 ‘센티넬 휠(Centinel Wheel)’이라 불리는 전기자전거 휠에 자신이 수년 전 개발해 특허를 받은 접는 자전거 디자인 프레임을 접목해보자는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박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저를 직접 찾아오신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기획력이었어요. 저희 제품을 보자마자 (김 대표님)아이디어를 들려주셨는데, 기술과 디자인의 접목부터 제품화까지 전부 머릿속에 그리고 계시더라고요. 물론 저도 그 아이디어에 끌렸고요.”
김 대표가 반한 센티넬 휠은 쉽게 말해 뒷바퀴 휠을 일반 자전거에 달아 전기자전거로 탈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기존 올인원 휠과 달리 모터와 배터리 등 내부 구성품을 사용자가 쉽게 교체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사용 중 모터가 고장 나면 모터만 택배로 보내 수리하면 된다. 박 대표는 26인치 휠을 개발했는데, 무게도 6kg밖에 나가지 않는다. 일반 자전거의 무게가 10~12kg 수준이니, 휠을 장착해도 20kg이 안 된다는 얘기다. 보통 전기자전거가 25kg 정도인 걸 감안하면 그의 제품은 거의 ‘유레카’ 수준이다. 센티넬 휠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당시를 김 대표는 이렇게 기억했다. “대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딱 제가 생각한 모양새와 같아 더 흥분했어요. 가장 끌린 건 역시 바퀴 하나에 모든 구동품을 넣은 거죠. 이게 제품으로 나왔으니 ‘아 이럴 수 있겠네’ 하지, 기술로는 정말 구현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여기에 ‘디자인’을 입히자고 제안했습니다.”
다소 소개가 늦은 감이 있지만,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국내 산업디자인계의 1세대 디자이너로, 198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센터(현 이노디자인 USA)를 설립한 인물이다. 지난 30년간 미국과 국내를 오가며 독창적인 디자인 제품을 선보였고, 디자인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IDEA’ 금상(1993년)과 은상(1999년), 동상(1991년)을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1999년 한국 지사 설립 후 그는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열풍을 일으킨 MP3 ‘아이리버’와 삼성의 ‘가로본능 휴대폰’, 라네즈의 ‘슬라이딩 컴팩트’, LG전자의 ‘양문형 냉장고’ 등을 디자인해 국내외의 디자인상을 싹쓸이했다. 이노디자인의 이노는 혁신(innovation)을 뜻한다. 지금은 흔해빠진 단어지만, 30년 전 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는 미국에서도 사용 빈도가 낮았다.

이노디자인의 특허인 접는 자전거 프레임과 하이코어의 센티넬휠이 만나 완성된 자전거. 올 상반기 중 출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박 대표는 지난해 미국 소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센티넬 휠을 등록한 전적이 있다. 얼마 후 글로벌 유수업체에서 공급 제안이 쏟아지는 경험도 했다. 실제로 김 대표가 찾기 전 그는 미국의 전기 자전거 시장점유율 1위 기업 ‘페데고’와 위탁 방식 공급 계약을 진행 중이었다. 지금도 대만의 자전거 기업 ‘퍼시픽사이클’과 주문자생산방식(OEM) 공급 계약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이런 사업 모델은 엄연히 말해 각 업체에 ‘부품’을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니크한 기술은 있지만, 그걸 완제품으로 내놓을 만한 자전거 디자인(프레임)이 그에겐 없다. 실제로 박 대표가 2012년 설립한 하이코어는 그 이듬해부터 국내의 여러 기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디자인이 약점으로 지적되어 완제품 생산은 꿈도 못 꿨다. 그런데 이 둘의 만남으로 ‘완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대표님과의 만남으로 회사의 사업 모델이 확장돼 할 일이 늘었어요. 간단히 말해 부품의 판로만 생각하던 회사가 디자인을 등에 업고 완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된 거죠. 심지어 앞으로 나올 자전거는 어디서든 접었다 펼 수 있는 접이식이에요.”
두 사람은 벌과 꽃 같은 공생 관계라 할 수 있다. 박동현 대표의 하이코어는 세계 수준의 기술을 갖춘 전기자전거 휠이 무기고, 김영세 대표의 이노디자인은 앞서가는 디자인과 기획력 그리고 자본이 무기다. 둘은 서로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은 버리며 올 상반기 안에 접는 자전거 디자인 프레임에 센티넬 휠을 결합한 초유의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 준비 단계로 김 대표는 하이코어의 모든 디자인을 새롭게 손봤다. 회사 로고부터 패키지, 매뉴얼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말이다. “이번 협업은 제가 (박동현 대표를) 꼬셨다고 보는 게 맞아요. 제품이 너무 좋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기로 했죠. 회사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각종 디자인을 손봐 ‘브랜드를 브랜딩’할 수 있게 말이에요. 이런 의미 있는 발명품을 준비도 없이 내놓을 순 없잖아요.” 김 대표의 말이다. 한편 박 대표는 “김 대표님은 워낙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게 빠른 분이에요. 이런 분과 몇 달을 함께 일하며 반성 참 많이 했어요”라며 겸손을 떨었다.
사실 국내에서 박 대표의 하이코어처럼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은 기존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기관)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기술이 좋아야 하고 그걸 눈길을 끄는 제품으로 만들 능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을 제품으로 만드는 데엔 높은 수준의 디자인이 필수다. 그러니까 이 둘의 만남은 기술과 디자인의 결합 또는 기술과 브랜드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만들어놓은 특허가 살아나 상품으로 변신하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이번 협업을 계기로 사업 기회가 생긴 것이 기쁘고, 또 무엇보다 제품을 새로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아요. 이전에 ‘디자인 경영’이 비즈니스 화두로 잠깐 떠오른 적도 있지만, 저는 반대예요. 지금 저희의 비즈니스 모델은 ‘디자인 활용’이죠. 이런 비즈니스야말로 미래형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김 대표의 말이다.지금 예술과 문화, 기술 등 협업이 화두다. 둘의 장점을 모아 더 좋은 걸 만드는 협업은 애초에 음악과 미술, 패션 등 문화 영역에서 시작했지만, 이젠 전 산업 영역으로 확대돼 새 시대를 맞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치 있고 활용 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 두 사람의 협업. 디자인과 기술의 결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비즈니스다.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 김상곤(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