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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보다 둘, 둘보다 여덟

LIFESTYLE

20대 중반, 모두 8명, 꽤 화제를 모은 두 번의 컬렉션, 각기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개인이 아닌 팀으로 보이길 바라는 의뭉스럽고도 분명한 옷 만들기. 바로 쿠시코크 얘기다.

조기석을 구심점으로 한 쿠시코크와 ‘실패할 권리’를 구호로 한 이들의 첫 컬렉션

쿠시코크(Kusikohc)는 패션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 패션 에디토리얼 등으로 알려진 조기석을 구심점으로 하는 브랜드다. 조기석과 일하다 만났거나 친구 소개로 인연을 맺게 된 패션 디자이너와 주얼리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등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8명이 한 팀을 이루며, 지난해에만 두 차례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들은 협업을 어떤 유행쯤으로 여기는 여타 패션 브랜드와는 분명한 차별을 둔다.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매진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쿠시코크’라는 팀이자 브랜드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것. 즉 그래픽 디자이너도 패션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참여하고, 주얼리 디자이너도 컬렉션 어딘가에 자신의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투영하는 식이다. 더불어 개인이 아닌 팀으로 온전히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진 조기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팀원의 얼굴은 공개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서로 얘기하고 상하 관계 없이 그것을 수렴하며 차곡차곡 아카이브를 쌓아가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상승시키는 이들의 사고는 꼭 ‘인터넷’스럽다. “서로 생각하던 멋지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팀을 꾸렸어요. 간단히 말하면 ‘퀄리티’ 때문이었죠. 사실 촬영이며 디자인이며 전부 혼자 할 수도 있었지만 추구하는 지향점이 같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요.” 조기석의 말이다.
지난해 1월에 발표한 이들의 첫 컬렉션 ‘실패할 권리(Right to Fail)’는 프랑스의 ‘68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 많은 소재 중에서도 이들이 이역만리 프랑스 땅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유는 간단했다. 꿈을 좇기보다 제대로 사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지금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프랑스의 68운동 당시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68운동 당시 학생들이 쓴 복면은 쿠시코크 첫 컬렉션에서 자수로, 과격한 시위를 상징하는 횃불은 주얼리 케이스를 태우는 것으로 표현해 당시의 가치를 재창조했다. “첫 컬렉션은 옷만큼이나 컨셉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이제껏 살며 저희가 느껴온 억압이나 획일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끄집어내려 했죠. 의상에서도 가능한 한 서로 상반되는 텍스처나 안감 등으로 우리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려 했어요. 단, 옷의 전체적 형태나 제작 방식은 최대한 웨어러블하게 하려고 했죠.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사실 쿠시코크의 첫 컬렉션 이름은 이들의 팀 슬로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전보다 안정을 취하려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이때, ‘실패할 권리가 있다’는 구호로 패션계에 작은 울림을 만든 것 그 자체가 이들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 번 실패해도 그것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얘기할 수 있다는 기조는 얼마나 건설적인가.
한편, 지난 10월에 선보인 두 번째 컬렉션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정확하게는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역사책 어딘가에 기술된 단 한 줄의 텍스트. “당시 독일군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독일식 에스닉’ 디자인을 강요했대요. 피가 난무하는 전쟁통이었음에도 그들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흰색의 전원풍 프릴 원피스와 꽃무늬 자수가 놓인 옷을 디자인하라고 엄포를 놓았다죠. 그런데 저희는 이런 게 재미있는 거예요. 거기서 생각이 발전하죠. 그런 옷은 대체 누가 입었을까? 그는 어떤 집에 사는 사람일까? 가족은 있을까? 혹시 집이 산 중턱에 있진 않을까? 그렇게 팀원들과 대화를 통해 점점 이야기에 살을 붙이며 컬렉션을 만들어요.”
대화만으로 이렇게 한 브랜드의 컬렉션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요 근래 주목받는 스타트업들의 보편적인 작업 스타일. 잘못된 점을 찾아내기보다 어떤 부분이 비는지 알아보고, 그 부분을 채워주려고 개개인이 두 팔 걷어붙이고 뛰어드는 움직임이다. “옷을 만드는 건 실제 옷을 만드는 분들(기술자)의 일이라고 봐요. 사실 그걸 만드는 과정까지 가는 기간이 더 길고 험난하죠. 첫 번째 컬렉션에서도, 두 번째 컬렉션에서도 저희는 반년 이상 대화를 하며 이야기의 틀을 잡았어요. 그러다 보니, 그게 몇 권의 책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일도 생겼죠.(웃음)”

1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감을 얻은 쿠시코크의 두 번째 컬렉션 2 팀원들과의 대화 내용이 빼곡히 담긴 아카이브 노트 3 첫 컬렉션 ‘실패할 권리’는 이들의 팀 슬로건이 되었다.

실제로 이들은 지난 두 차례 컬렉션을 진행하는 동안 팀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문서화해두는 노력을 들였다. 좋은 건 더하고, 싫은 건 빼가면서 차곡차곡 이미지를 쌓은 것이다. 물론 의견을 주고받으며 몇 차례 충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서로를 설득해 대화로 해결한다. “두 번째 컬렉션 당시 의상에 전반적으로 그래픽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있었어요. 하지만 다수결로 해결했죠. 간단한 방법이지만, 한 사람의 판단으로 컬렉션이 좌지우지되는 걸 막기 위한 저희의 중요한 토론 방법 중 하나예요. 그리고 이렇게 팀원들끼리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없던 열정과 괴상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되죠. 그런 게 또 아카이브에 쌓이고요.”
아, 그런데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생길 법도 하다. 왜 쿠시코크의 컬렉션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시즌에 맞추지 않고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것인가 하는 의문. 지난해 1월과 10월 각각 한 번씩 컬렉션을 발표한 이들은 여전히 세 번째 컬렉션을 작업 중이다. “지금은 시즌보다는 저희 팀과 브랜드의 전반적 흐름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카이브 형식의 1-2-3과 같은 순서로 컬렉션을 발표하는 거죠. 곧 세 번째 컬렉션도 발표할 예정인데, 그 또한 지난 한 해 대장정의 대화를 통해 이룬 거예요.”
첫 컬렉션을 발표한 지 어느덧 1년, 쿠시코크의 행보는 여전히 처음처럼 인상적이다. 이들의 옷은 보통 멋진 옷을 사는 1차원적 개념을 넘어, 브랜드가 어떤 정신을 알리고 말하려는지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찾는다. 그들의 컬렉션을 판매하는 매장도 없고, 인스타그램(@Kusikohc)과 홈페이지(kusikohc.com)만이 유일한 홍보 수단이지만, 높은 판매율을 보이며 개성 강한 셀레브러티들이 그들의 옷을 입는다. 쿠시코크 외에 각자 다른 직업을 가졌음에도 이들은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그것이 있기에 오늘도 팀으로 함께 활동한다. 과거의 혁신은 실력이 좋은 한 명의 훌륭한 기술로 이루어졌지만, 오늘날의 혁신은 이렇게 협동과 협업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 하나의 팀으로서 도전을 중시하고, 새로운 걸 갈구하는 쿠시코크의 새 컬렉션을 기대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박용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