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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품다

LIFESTYLE

여행 칼럼니스트 이태훈 작가가 이번엔 전국의 아름다운 한옥을 카메라에 담고 우리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옥을 촬영하며 어느새 한옥 전문가가 된 그에게 한옥의 무엇에 그토록 마음을 빼앗겼는지 물었다.

 

길을 떠나는 자, 아직 만나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다시 짐을 꾸리는 이에게선 어떤 선연한 에너지가 배어난다. 여행자를 움직이게 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내달리게 하는 동력. 그것은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되는 ‘여행하는 삶의 묘미’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일 것이다. 세계 80개국 500여 개 도시를 여행한 이태훈 작가를 여행자의 길로 이끈 것도 지적 호기심이다. 그 시작은 중학교 3학년 때 떠난 무전여행이었다. 강원도 태백이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이 궁금해 여행가를 꿈꾸었고, 마침내 끊임없이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기자가 되어 10년간 여행 전문 기자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바쁜 시간을 쪼개 여행 책을 쓰고, 사진과 예술 문화를 가르치고, TV 여행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등 여행에 뿌리를 둔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2003년 <뷰티풀 유럽 여행>을 출간한 후 지금껏 부지런히 13권의 단행본을 완성했다. 그것으로 모자라 이번엔 한옥을 통해 곧은 선비정신과 한국의 미를 바라본 <한옥, 하늘과 땅과 사람이다>를 출간했다. 지난 10년간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옥의 사계절을 포착해 설명을 곁들인 350페이지의 단행본이다.
“20여 년 전 유럽을 여행하다 뮌헨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설전을 벌인 일이 있어요. 우리나라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200년 앞선 것이라고 자랑했는데 그것이 인류를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거예요. 그 물음에 말문이 막혀 교과서에서 배운 것만 몇 자 읊을 뿐 더 이상은 설명하지 못했어요. 아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때부터 내 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1000원짜리 지폐를 수십 장 준비해 가지고 다니며 외국인 친구에게 기념으로 선물하고, 지폐 앞면의 한글과 뒷면의 한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죠.” 젊은 시절 여행하다 겪은 일종의 문화적 열등감이 결국 한옥 탐구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자연풍광을 촬영한 <하늘에서 본 대한민국>(2010)이나 국내 여행지를 선별한 <뷰티풀 코리아>(2004) 역시 외국인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이태훈 작가의 ‘병산서원’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 ‘매화’

<한옥, 하늘과 땅과 사람이다>를 발간하기까지 그가 차곡차곡 쌓아온 자료는 방대하다. 그 때문에 그가 소개하는 한옥 이야기는 집에 깃든 역사와 건축 지식을 망라한, 그야말로 제대로 빠져든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내용이다. 그에게 한옥은 왜 이토록 흥미로울까? “몇 년 전부터 뿌리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종갓집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조선왕조와 당쟁, 동인과 서인 등 역사적 사실을 거꾸로 짚어가며 공부하다 선조들의 집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송시열의 제자 윤증이 직접 지은 윤증고택을 찾아가 30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한옥의 정갈한 멋을 보았고, 성리학자 유성룡의 후손인 풍산유씨의 고향 하회마을을 방문해 양반가의 기품을 확인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가닥을 짚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한옥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도 생겼다.
한옥은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한 공간에 자연 친화적 재료를 사용하고, 집주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미학적 요소를 더해 지은 집이다. 이를 사진에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건 생활자 시점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방 안에 앉아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풍경이 담겼고, 처마 밑에 들어가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계절의 변화가 세밀하게 드러난다. 사랑채와 안채가 맞붙은 작은 한옥에서 두 공간을 나누는 내외담이나 담에 꽃을 새겨 넣은 꽃담, 집안의 부와 관련된 갖가지 문살을 촬영한 사진 등 가까이 다가간 덕분에 얻은 귀한 장면이 많다. 그는 한옥의 숨은 매력을 외국인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책의 번역을 추진 중이다. 올봄에는 책에 실린 한옥 사진들을 전시하고 기증할 계획도 세웠다.
“한옥은 우리가 지닌 경쟁력 있는 고유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우리만의 집이고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죠. 한옥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반대로 국내에선 전통 방식으로 지은 한옥을 자꾸 없애버리죠.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최근 현대인의 편의에 맞춘 새로운 한옥이 등장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어 답한다. “자연적 요소와 미학적 요소를 배제했으니 진정한 한옥이라 하기 어렵습니다”라고. 집주인의 가치관과 미적 감각 없이 기능성만 강조한 집은 겉모양만 한옥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가 최고로 치는 한옥은 창덕궁 안에 자리한 낙선재와 연경당 그리고 운현궁이다.
하늘과 땅에서 한옥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업이 이제 막 끝났건만 그는 벌써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작업도 시작했다. 주제는 궁과 절. 궁의 사진 촬영은 현재 70% 정도 끝냈다. 올 초에는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내부 촬영을 진행하기 위해 현재 문화재청에 촬영 허가를 요청한 상태다. 그가 추구하는 궁 사진은 ‘왕의 시선에서 바라본 조선 궁궐’. 또 한 번 특별한 작품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그는 누구든 쉽게 사진을 찍고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사진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단 한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의 좋은 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셔터를 누를 때 비로소 떨림이 있죠. 그 떨림이 사진에 표현되어야 감동이 오래갑니다. 쉽게 생산한 것은 금방 잊히죠.”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안미영(프리랜서)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