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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서 만나는 예술

LIFESTYLE

요즘같이 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엔 루프톱 카페에서 즐기는 티타임이 무척 달다. 시원한 칵테일 한잔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가 루프톱을 찾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뮤지엄 루프톱에 올라 예술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루프 가든.   Courtesy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hoto by Hyla Skopitz

뉴욕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하 메트)엔 이른 아침부터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방대한 컬렉션과 다양한 특별전이 물론 첫 번째 이유겠지만, 메트 정문 앞에 있는 계단이 꽤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니까. 하지만 당신이 어퍼이스트의 뮤지엄 마일을 걷다 지쳐 메트 앞 계단에 잠시 걸터앉아 쉬고 싶다 해도, 이번만큼은 참아야 한다. 계단에 앉아 책을 읽는 중년 여인과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커플을 유유히 지나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엘리베이터에 올라 꼭대기인 5층 버튼을 누르는 것.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그다음부터가 진짜다. 메트는 매년 작가 한 명을 선정해 박물관 옥상에서 작품을 전시한다. ‘루프 가든 커미션’이 그 이름인데, 북적이는 전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붐벼 오롯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다. 물론 방문 시간이나 전시에 따라 사람이 몰리기도 하지만, 탁 트인 맨해튼 풍경이 오로지 나만의 차지가 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작년 봄엔 영국의 설치미술가 코닐리아 파커가 에드워드 호퍼와 히치콕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거대한 집을 설치해 인기를 끌었고, 올해는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an Villar Rojas)가 10월 29일까지 3D 프린터로 만든 조각 ‘The Theater of Disappearance’를 선보이고 있다. 평소엔 5시 30분이면 문을 닫지만 금요일과 토요일엔 밤 9시까지 오픈하니, 스펙터클한 야경을 즐기고 싶다면 이 시간에 찾아가자. 5월부터 10월까지는 한편에 자그마한 ‘Canton Roof Garden Bar’를 운영해 시원한 음료도 즐길 수 있다.

휘트니 미술관의 루프톱.   Photo by Ed Lederman

그런 메트의 이웃사촌이자 뉴욕 어퍼이스트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였던 휘트니 미술관은 2년 전 다운타운의 미트패킹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2개의 루프톱을 열었다. 메트의 옥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나만의 세상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특전을 준다면, 휘트니 미술관의 루프톱은 전시장과 통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된 공간이다. 그만큼 접근성이 높은 건 당연지사. 각기 다른 층에 있는 테라스 형식의 루프톱 두 곳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전시에 따라 작품을 바꾸거나 상설로 선보일 때도 있다. 한쪽에선 맨해튼 하이라인을, 다른 한쪽에선 뉴저지와 허드슨강을 응시하며 자연스레 예술을 느낄 수 있다. 야외라는 특성상 조각이나 설치물을 주로 전시하며, 메리 헤일맨(Mary Heilmann)의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의자 작품 ‘Sunset’은 이미 미술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로어이스트로 고개를 돌리면, 현대미술에 주목하는 뉴 뮤지엄이 기다리고 있다. 뉴 뮤지엄은 주말마다 건물 7층에 있는 루프톱 ‘스카이 룸’을 개방한다. 천장이 높아 다른 건물이라면 11층에 해당하는 높이나 마찬가지다. 다양한 전시 연계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 공간은 엄밀히 말하면 뚜껑이 없는 옥상은 아니지만 유리 천장과 야외 테라스를 통해 도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여느 루프톱 못지않게 장관이다. 때로는 프라이빗 이벤트를 열어 소수에게만 오픈하기도 한다. 메트와 휘트니 미술관은 전시장과 루프톱의 오픈 시간이 동일하지만, 뉴 뮤지엄의 루프톱은 주말에만 문을 연다. 뉴욕의 다른 루프톱에 비해 아늑한 이곳 또한 다른 층에 비해 덜 붐비는 터라 아스라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기 좋다.
파리에도 루프톱 미술관 명소는 많다. 그중 케 브랑리 미술관(Musee du Quai Branly)은 놓치지 말고 올라가야 한다. 2006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은 원주민과 원시미술에 집중하는 기관으로 에펠탑, 샤요 언덕, 센 강변 등 파리의 주요 관광 명소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2013년엔 레나 냐드비(Lena Nyadbi)의 작품을 전시하며 호응을 얻었는데, 미술관이 에펠탑에서 상당히 가까워 당시 에펠탑에서 그녀의 작품을 내려다보는 관람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암스테르담 NEMO 사이언스 뮤지엄의 루프 스퀘어.   Photo by DigiDaan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만든 암스테르담의 NEMO 사이언스 뮤지엄 또한 기가 막힌 루프 스퀘어를 제공한다. 루프 스퀘어를 사람들이 자주 오가고 노니는 도시의 광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렌초 피아노의 바람처럼 가족 단위의 많은 관람객이 현장을 찾고 있다. 현재 에너지를 상징하는 인터랙티브 조각을 상설 전시 중이며 6월부터 8월까지 여름철엔 9시까지 개방한다. 암스테르담의 역사적 상징인 항구와 도시의 전망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꼭 미술 작품을 전시하지 않더라도 루프톱 명소를 자처하는 미술관이 많다. 앞서 말한 NEMO를 설계한 렌초 피아노의 대표적 건축으로 유명한 파리의 퐁피두 센터는 전시 입장권 외에 이색 티켓을 판매한다. 일명 ‘파리의 경관(View of Paris)’이라 불리는 이 티켓은 단 5유로(약 6600원)에 센터의 루프톱으로 직행할 수 있는 티켓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2016년에 블라바트니크 빌딩을 새로 개관하면서 꼭대기에 루프톱 테라스를 만들었다. 작품을 설치하려는 목적보다는 바와 레스토랑을 위한 장소지만, 테이트 모던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들러볼 만하다.
각 도시마다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 전망대가 있다. 하늘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360도 파노라마 전망을 마다할 이도, 아름다운 건축물과 스카이라인을 병풍 삼아 찍는 사진을 꺼리는 이도 없을 것이다. 높은 곳에 오른다는 것,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거기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이나 건물 내부에 머무르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루프톱에 오르는 건 마치 금지된 영역에 들어서는 듯한 희열까지 선사한다. 그 위에서 파티를 열고, 음료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수영까지 하는 걸로 모자라 이제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천장 높이라는 한계가 없으니 규모가 큰 설치 작품도 얼마든지 전시할 수 있다.
이런 희열을 한국의 미술관에서 느낄 수는 없을까? 국내에서도 루프톱 예술을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해 간단하게 추천한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본격적으로 미술 전시를 열거나 작품을 설치하진 않더라도 꽤 멋진 풍경을 선사하는 곳이 많다. 신사동에 있는 K현대미술관은 전시 오프닝 때 종종 루프톱을 개방하니 아래층에서 전시를 즐긴 다음 잊지 말고 꼭대기에 들러볼 것. 지하 1층에 전시 공간 아뜰리에 에르메스를 둔 메종에르메스 도산 파크도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땐 루프톱을 개방한다. 평창동에 있는 가나아트센터 카페 모뜨와 삼청동의 PKM갤러리 가든 카페 등 갤러리 루프톱이나 테라스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곳도 많으며, 커피 전문점 탐앤탐스도 얼마 전 영등포에 복합 문화 공간 루프톱 아트라운지 탐을 개관하며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그동안 더운 날씨에 지쳐 방 안에만 있었다면, 아직 여름휴가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화이트 큐브가 아닌 드높은 하늘을 배경 삼아 작품과 하나 될 수 있는 루프톱 예술 공간을 주목하자. 예술을 즐기기에 이보다 근사한 곳이 또 있을까?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