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한옥문학관에서의 하룻밤
새로운 시작을 앞둔 계절 하동에 새로 생긴 한옥문화관에 다녀왔다.

2층 구조로 된 별채의 대청마루. 삼면으로 창문을 냈다.
경남 하동은 진입하는 순간부터 사람의 마음을 위무한다. 차창 너머로 섬진강이 흐르고 수면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바깥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순하다. 서울보다 기온이 3~4℃ 높은 대기, 청명한 하늘을 따라 뭉친 마음의 올이 스르르 풀린다. 이곳에만 오면 문학가들의 말이 떠오른다. 지리산 자락 아래로 어깨동무하듯 둥지를 튼 구례, 하동, 산청은 산에도, 들에도 먹을 것이 넘쳐 거지가 없다고. 이런 풍광과 온기를 지닌 땅에서는 마음의 허기로 가난한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목적지는 최근 새로 생긴 하동 한옥문화관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 ‘최참판댁’보다 높은 곳에 있어 대청마루에 앉으면 저 멀리 목숨 같은 평야가 펼쳐진다. 전국 곳곳에 한옥 스테이가 생겨나는 시기. 완결된 작품성이 없는 곳이라면 굳이 시간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동군에서 오래전 매입해둔 땅에 들어선 한옥문화관은 내·외부를 모두 선수들이 맡았다. 외관은 구가도시건축을 이끄는 조정구 소장이 설계했다. 경주한옥호텔 ‘라궁’과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 수상자 페터 춤토르가 한국에 오면 꼭 들른다는 진관사 템플스테이 역사관이 그의 대표작이다.

1 한옥문화관 전경.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 일원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탁 트인 조망을 자랑한다.
2 대문 밖에선 사시사철 대나무가 흔들린다. 대나무 잎 나부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정연해진다.
조정구 건축가의 호방하고 담백한 미
그의 설계는 호방하면서도 단정하다. 서울의 오래된 한옥에 살아 ‘땅집’에서 중요한 것과 극대화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이를테면, 창호문. 앞서 말했듯이 한옥문화관은 평사리 최참판댁 일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시야가 뻥 뚫린다. 방에서도, 마루에서도 앞쪽 대나무 숲과 그 너머 지리산이 강처럼 흐른다. 이런 풍경을 온전히 선사하기 위해 조정구 건축가는 가장 단순한 모양의 띠살창호를 택했다. 단순한 격자무늬. 빛이 창호문을 비추면 사각 프레임 무늬가 방 안 깊숙이 시시각각 다른 길이와 모양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게다가 문 바깥쪽을 유리로 마감해 방 너머 자연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따뜻한 양지에서 그런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종국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머릿속에 빛이 가득하고 식물처럼 순한 상태가 된다. 인간의 머릿속을 그렇듯 순식간에 비울 수 있다니, 자연의 화학작용은 실로 대단하다.
하동에 들어선 숙박용 한옥은 총 4채다. 안채를 팔작목 구조로, 사랑채를 맞배목 구조로, 2동의 별채를 우진각목 구조로 만들어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소년 합창단처럼 언뜻 비슷해 보이면서도 얼굴과 개성이 조금씩 다른 집.

가장 규모가 큰 안채 전경. 조경수 한 그루 없이 잔디만 깔린 마당 너머로 평사리와 지리산 일대가 아득히 펼쳐진다.
하동 한옥문화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 중 하나는 내부를 꾸민 감각이다. 번듯한 외관을 갖췄으면서도 정작 가구와 인테리어가 엉망이라 실망한 적이 얼마나 많던지. 하동군은 이번 한옥 스테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옥의 미감과 인테리어를 책임질 이로 문화 기획자 김선경 씨를 선임했다. 호텔리어 출신으로 SK행복나눔재단에 있으면서 안동에 자리한 ‘전통 리조트 구름에’와 서촌의 ‘일상다반사’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다. 지역의 공예가, 장인, 기술자를 일일이 찾아다니고 이불의 누비와 촉감, 욕실 타일, 방에 놓을 찻잔까지 신경 쓴다. 이번에 동행한 그는 “크게 세 가지 컨셉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사리 풍경, 하동 차(茶) 풍경, 마지막으로 박경리의 <토지>를 중심으로 한 문학 풍경. 총 세 가지 형태의 숙소가 있는데, 도드라지는 각각의 풍경이 제각각 다르다”라고 전했다.

차 한잔 마시며 대청마루에서 볕을 쬐고 있으면 머릿속이 맑아진다. 자연과 함께하는 디톡스 시간.
김선경 문화 기획자의 철학과 디테일
8명까지 수용 가능한, 가장 넓은 안채를 먼저 보자. 이곳에서 말을 거는 것은 차의 풍경이다. 너른 방 한쪽에 자리한 것은 크고 듬직해 보이는 차탁. 내촌목공소 이정섭 목수의 작품이다. 벽면에는 사방탁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선반을 걸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받침대만 박아 공간이 한층 시원하고 넓어 보인다. 한지는 고(故) 김백선 건축가가 직접 개발한 ‘김백선 한지’를 택했다. 안에서 빛이 일렁이는 듯 환한 제품. 무늬를 보면 구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침구는 쑥색 누비로 골랐다. 차의 풍경과 연결한 색상이다. 잠시 차탁에 앉아 바깥을 바라본다. 햇살이 닿은 바닥은 기분 좋게 따뜻하고, 안쪽은 아직 차갑다. 마당 너머 대나무가 슬로모션처럼 고요히 흔들리고 새소리가 상쾌하다. 나는 이런 한옥의 시간을 ‘직접경험’이라 부른다. 눈을 감으면 햇살이 눈꺼풀 위를 간질이고, 시각은 물론 청각과 후각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시간. 아무리 풍경이 좋은들, 나와 자연 사이에 두꺼운 창문과 새시가 끼어들면 ‘간접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좋다’ 하는 감동은 시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3, 4 김선경 문화 기획자의 디테일을 실감하는 장면. 하동의 차를 염두에 둔 녹색 이불과 전통 한옥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깨끗하고 단정한 얼굴의 조명이 인상적이다.
5 객실 서가에는 박경리 작가의 대표작이 상징처럼 꽂혀 있다.
“한옥을 계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이용하는 사람 스스로 만들어낸 그림. 어떤 이는 핸드 드립 커피 머신을 가져와 커피를 내리고, 또 어떤 이는 턴테이블을 가져와 음악을 듣는다. 낭독하는 이도 있을 거다. 정자 너머 풍경을 마음으로 들이면서. 그런 행동을 유도하고 그런 마음이 들도록 공간의 서정을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선경 기획자의 말이다.
그렇게 차탁과 침구, 선반을 빼면 방 안에 남는 게 없다. 흙과 나무로 만든 한옥이 ‘자연의 집’이라면 그곳은 지음과 동시에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빛과 그림자, 소리, 시간을 담는. 풍경이 훌륭하면 쓸데없이 가구가 많을 필요 없다는 것을 김선경 기획자도 잘 알고 있다.
한옥이라 한지 조명을 달고 나무 의자를 두는 뻔한 답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들보에 건 조명 재질은 황동. 바깥에도 청사초롱 등이 아닌 검은색 금속 조명을 달았다. 김선경 기획자는 “한옥 내부는 모던한데, 외관은 그렇지 못하다. 전통에 얽매여 있지도, ‘무겁지’도 않은 변화를 시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채는 서가를 강조했다. 안채의 반 정도 되는 규모. 여기에도 널찍한 대청마루가 있는데, 그곳과 연결된 벽에 커다란 책장을 짜 넣어 박경리의 시집과 소설을 비치했다. 대나무 숲은 이곳에서도 약속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어 너울거리는 나무들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소슬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인이라면 별채가 좋다. 2층 구조. 1층 기단부는 큼직하게 자른 돌을 쌓아 만들었다. 큼지막한 주초석 위에 나무 기둥을 박은 모습이 한옥 건축의 미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방은 2층에 자리하는데 마루로 나가면 망루에 있는 것처럼 한옥문화관 일대가 시원스레 바라다보인다. 쪽문으로 보이는 풍경도 소담하다.

6, 7, 8 한옥문화관 아래쪽에 자리한 박경리문학관. 돋보기, 이불장, 부채, 라이터 하나하나 모두 빼어난 미감을 자랑한다. 박경리의 삶과 생활, 정신과 문체에 흐르는 도저한 품격이 드러난다.
9 이른 아침 한옥문화관의 모습.
소설가 박경리의 힘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온 밤, 보송보송한 요에 누워 방 안에 비치된 박경리의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와 <김약국의 딸들>을 읽는다. 전자는 긴 산문 형식이다. 수필 같은 시. 엄마 이야기,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놨는데 한 편 한 편 끝날 때마다 묵직한 울림이 전해져 ‘대단하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김약국의 딸들>은 또 얼마나 생생한지. 일제강점기 통영을 배경으로 한 가정의 몰락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토지>는 말해 뭐하랴. 한 편의 소설을 26년간 쓸 수 있다니, 너무 아득해 그 고통과 인내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밤의 시간은 유달리 빨리 흘러 금세 새벽 1시가 되었는데, 그 책들을 천천히 읽으며 하루 더 머물고 싶은 바람이 간절했다.
한옥문화관 아래쪽에는 박경리의 대표작과 생전 그가 사용하던 유품을 한데 모아놓은 문학관이 있다. 꼭 둘러볼 만한 곳이다. ‘공부하는 걸 좋아했고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이었다는데,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물건. 옷장이며 돋보기, 반짇고리며 부채, 주병과 라이터 하나하나 기품과 감각이 넘친다. 스스로의 시간을 귀하게 매만질 수 있었기에 그렇듯 깊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 이곳 문화해설사의 파이팅이 대단한데, 한자리에 모인 장년층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꿈이 있나요? 꿈이 있어야 해요. 박경리 선생이 그랬어요. 70대에도 꿈이 있으면 청춘이요, 청춘이어도 꿈이 없으면 노인이다!” 그러더니 한 어르신을 가리키며 “어르신은 꿈이 뭔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분이 하는 말. “나는 다 됐어. 꿈 없어!” 좌중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마당에는 그의 대표 글귀를 새긴 대리석이 박혀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의 진실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까지 껴안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의 아픔> 중) “창조적 삶이란 자연 그대로, 어떤 논리나 이론이 아닌 감성입니다. 창조는 순수한 감성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중)
한옥문화관에서 보낸 시간은 한옥과 자연, 차와 문학이 준 것으로 평온하고 풍성했다.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 하는 힘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기분. 다음 날 서울에 올라온 나는 오래 간직하던 프로젝트를 다시 꺼냈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씩씩하게 전화를 돌렸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이명수 글 정성갑(콘텐츠 & 토크 기획자, ‘클립’ 대표)
취재 협조 하동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