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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주얼리에 대한 남다른 관점

FASHION

세계적 주얼리 컬렉터 카즈미 아리카와와 주얼리 칼럼니스트 윤성원이 만났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방대한 양의 독보적 주얼리 컬렉션이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소개된다.

전 세계 단 세 점만 존재하는 발레리오 벨리의 십자가 앞에 선 주얼리 컬렉터 카즈미 아리카와.

뷔르템베르크 왕실의 핑크 토파즈 파뤼르 세트.

뷔르템베르크 왕실의 핑크 토파즈 파뤼르 세트.

1935년경 까르띠에가 제작한 플래티넘 방도 티아라. 총 96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주얼리 칼럼니스트 윤성원.

보석의 기원은 인류 초기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물에 대한 탐구는 선사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는 다양한 문화와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은 가장 근원적 본능이다. 역사 속에서 동시대적 시각으로 재해석된 보석은 단순히 정치적 수단이나 부의 상징을 넘어 성물(聖物)로서 의미를 지니며, 예술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주얼리 컬렉터이자 알비온 아트 설립자 카즈미 아리카와(Kazumi Arikawa)가 40여 년 동안 빛나는 광물에 매혹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주얼리 컬렉터인 그가 롯데뮤지엄에서 3월 16일까지 열리는 [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 전시를 위해 내한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주얼리 컬렉션의 경제적 가치는 6600억 원에 달하며, 기원전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주얼리의 발자취를 장엄하고 경이롭게 담아낸다. 이해를 돕기 위해 주얼리 칼럼니스트 윤성원이 자문으로 참여했으며, 보석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과 가치를 탐미하는 두 주얼리 애호가가 마주 앉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윤성원 롯데뮤지엄에서 [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 전시를 진행합니다. 서울에서 컬렉션을 소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카즈미 아리카와 이번 전시에서는 5000년에 걸친 주얼리 역사를 소개합니다. 주얼리 역사를 다룬 사례는 많지만, 이렇게 방대한 시간을 시대별로 구분해 소개하는 방식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아직 시도된 적이 없고요. 한국과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불교 신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종교와 연결 짓게 되었습니다. 6세기, 약 1500년 전 백제 성왕을 일본에서는 성명왕이라 부릅니다. 그는 불상과 경전을 일본에 전해준 인물로, 일본은 과거 한국 역사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된 해석일 수 있지만, 아마도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윤성원 불교는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즈미 아리카와  제 전공은 경제학과 정치학이지만, 전공과 무관하게 스님을 만나 약 2년간 불교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제 마음속 깊은 어둠을 마주했고, 그로 인해 다음 단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부처님이 착용한 보석이나 그림 속 보석은 ‘진리의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서양 문화에서는 보석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힘을 부여하며 의식을 상징하는 특별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주얼리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숭고한 깨달음을 담은 조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의 오팔 아래로 장미꽃 다발을 늘어뜨린 펜던트로, 19세기 아르누보 양식으로 제작했다. © Albion Art Co., LTD

프랑스 아르데코 스타일의 보석 세팅과 에나멜 골드 및 플래티넘으로 제작한 탁상시계. © Albion Art Co., LTD

19세기 중반에 제작한 드미 파뤼르 세트. 바로크풍 리본 모양에 루비와 다이아몬드, 마노 카메오를 세팅했다. © Albion Art Co., LTD

화환 양식의 초커로, 금속을 최소화한 플래티넘 세팅에 900여 개 다이아몬드로 폭포처럼 흐르는 꽃 모티브를 구현했다. 벨 에포크 시대 여성의 지위를 상징하는 부쉐론의 네크리스. © Albion Art Co., LTD

다이아몬드 504개를 플래티넘에 장식한 리본 브로치.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한다. © Albion Art Co., LTD

전 세계 단 세 점만 존재하는 발레리오 벨리의 십자가. © Albion Art Co., LTD

 윤성원 주얼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을까요?  카즈미 아리카와  당시 가족이 운영하던 주얼리 사업의 일부를 경험하면서 주얼리 세계에 매료되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열정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죠. 하지만 당시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경영 공부를 하던 서른 살 무렵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했습니다. 파리 방돔 광장에서 잔마리아 부첼라티의 작품을 실물로 접했을 때,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주얼리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임을 깨달았죠. 또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V&A) 박물관에 전시된 주얼리 역시 제게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당시 일기에 “새로운 미래가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고 적은 기억이 납니다.
 윤성원  직업적으로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이네요. 카즈미 아리카와 이후 도쿄로 돌아가 누나와 상담한 뒤 앤티크 주얼리 가게 두 곳을 소개받았습니다. 그중 한 곳에서 플래티넘이 처음 사용된 벨 에포크 시대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앤티크 딜러에게 작품을 위탁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40년 전 환율로 135만 엔(약 1350만 원) 상당의 주얼리 네 점을 개인 고객에게 판매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주얼리를 사고파는 과정을 반복했죠.
 윤성원 딜러이자 수집가로서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군요.  카즈미 아리카와  세일즈맨으로 주얼리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파베르제 티아라를 접하면서 컬렉터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 티아라는 블루 에나멜과 다이아몬드가 사용된 작품이었죠. 당시 제가 보유한 자산의 50%를 투자해 그 작품을 소장했습니다. 그때부터 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꾸준히 모았고요. 이후 주얼리가 사치품이 아닌 예술 작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감동을 수집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윤성원 당신의 컬렉션에 대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카즈미 아리카와  예술 작품의 본질은 마음을 떨리게 하는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느꼈을 때 아름다운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역사적 작품이든, 현대적 작품이든 설렘이 느껴져야 하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 해도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지 못하면 소장하지 않습니다.
 윤성원 이번 전시는 시대별 주얼리 200여 점을 한자리에서 소개해 더욱 특별합니다.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작품 세 점만 추천해주세요.  카즈미 아리카와 단연 첫 번째로 꼽을 작품은 르네상스의 거장 발레리오 벨리가 16세기 초에 제작한 ‘Cross’입니다. 이 작품은 예술성과 종교적 의미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보석 십자가로, 르네상스 미학의 정수와 신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세 점 중 하나로, 십자가와 받침대 사이의 작은 십자가에는 그리스도의 성십자가라는 성유물이 모셔져 있습니다. 나머지 두 점은 각각 런던 V&A 박물관과 바티칸 사크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알비온의 학술 전문가 다섯 명이 1년에 걸친 조사를 통해 역사적 가치를 확정한 매우 중요한 주얼리입니다.

밀그레인 기법으로 제작한 티아라. 마름모 형태의 나이프 와이어 올드 컷 다이아몬드 링크로 구성되어 있고, 목걸이와 반지로 변형 가능하다.

7개의 타원형 카보숑 컷 사파이어를 세팅한 쇼메에서 제작한 주얼리. 네크리스와 헤드밴드로 활용할 수 있다.

1909년 필리포 키아페가 라지오-스피놀라 가문의 결혼식을 위해 제작한 티아라. 파리의 갈런드 스타일을 이탈리아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대표작이다.

 윤성원  다른 두 작품도 궁금합니다.  카즈미 아리카와  왁스 인장을 찍는 도구이자 프리드리히 3세의 초상이 새겨진 인장 반지로, 소유자의 신분을 상징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사파이어 엠퍼러 링입니다. 또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골드 이어링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 이어링은 원형 장식판에 야자수 문양으로 둘러싸인 로제트가 특징이며, 그 아래에는 한 쌍의 말이 장식된 배 모양 펜던트와 씨앗 모양 장식이 연결된 형태입니다. 굉장히 오래된 작품임에도 마치 어제 만든 것처럼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2300년 전에 만든 작품은 회화나 건축물 등 대부분이 산화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주얼리는 귀금속으로 만들어졌기에 보존이 가능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문화재 역할을 하며, 현재는 사라진 기술로 제작한 것이기에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윤성원  가장 확보하기 어려웠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카즈미 아리카와 뷔르템베르크 왕실의 핑크 토파즈 파뤼르입니다. 100여 개 토파즈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네크리스, 이어링, 브레이슬릿, 브로치로 구성된 완벽한 세트입니다. 열처리를 하지 않은 희귀한 핑크 토파즈로 만들었죠. 19세기 파뤼르가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된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독일제국의 주권 국가였던 뷔르템베르크는 엄격한 궁정 의식으로 유명했으며, 나폴레옹이 주선한 동생 제롬과 뷔르템베르크의 캐서린 공주의 결혼식에서 이 파뤼르가 선보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 작품을 직접 만나고, 재무적 준비를 하는 데만 꼬박 4년이 걸렸습니다.
 윤성원  왕실 주얼리를 선택할 때 역사적 중요성과 예술적 가치 중 어떤 부분에 더 중점을 두시나요?  카즈미 아리카와  아무래도 수준 높은 작품은 왕실과 연결된 경우가 많지만,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는 나폴레옹 카메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나폴레옹 카메오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죠. 나폴레옹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영국 상인 윌리엄 프레이저는 자신의 서재에 있던 책을 나폴레옹에게 배편으로 보냈으나, 배가 난파되면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나폴레옹이 카메오를 선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프레이저가 암살당하면서 이 작품은 캐나다 총독에게 넘어갔다가 이후 다시 영국으로 전해져 보존된 역사적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토록 역사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하기에, 모두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나폴레옹과 빅토리아 시대 전시관.

나폴레옹 초상 카메오.

 윤성원  전시 무대는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했습니다. 그는 균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고도의 세공 기술이 요구되는 주얼리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  카즈미 아리카와  사실 구마 겐고의 섭외는 롯데에서 진행했습니다. 별개로 20년 전, 한 강연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가 미술관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는 “미술관은 성스러운 장소지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연히 이번 전시를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의 참여 덕분에 전시가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윤성원 장갑을 끼지 않고 보석을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캐주얼한 방식을 고수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카즈미 아리카와  귀금속이나 보석은 수억 년 전에 형성된 것이기에 잘 변질되지 않습니다. 물론 보석이 산화되어 색이 옅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보석을 만지는 것은 사람이 직접 착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직접 만졌을 때 보석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13년 동안 도쿄 국립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업을 듣는 모든 이에게 보석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해왔습니다.
 윤성원 앞으로 주얼리 예술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시나요?  카즈미 아리카와  가장 큰 문제는 환경오염입니다. 지구가 점점 더러워지고 녹색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를 잃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주와 지구의 모태에서 탄생한 주얼리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술로서 가치는 말할 것도 없죠. 40여 년 전 제가 느낀 주얼리의 가치와 중요성이 이제야 비로소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성원  마지막으로 주얼리 컬렉터로서 비전도 궁금합니다.  카즈미 아리카와 최근에 출간한 책 를 통해 제 삶의 40% 정도 역할을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미(美)를 정착시키는 것, 그리고 제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관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요. 나머지 40%는 전시회를 구성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20%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교육자로서 제가 가진 지식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의 초상이 새겨진 인장 반지. 소유자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 왁스 인장을 찍는 도구로 사용됐다.

부쉐론에서 제작한 공작 깃털 장신구.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도록 고안해 신비감을 자아낸다.

 

에디터 최원희(wh@noblesse.com)
사진 롯데뮤지엄, 장기평